내 인생에서 있어서 최초의 해외 여행이자 가장 감명 깊었던 여행은 1999년 11월 12일에서 19일까지 일주일간의 미국 여행이었다. 그러고보니 벌써 7년전 이야기다.

여행은 회사에서 컴덱스쇼(COMDEX Show) 참관을 위한 명목으로 비용 일체를 지불해 주어서 떠난 여행이었다. 나와 회사 창립을 같이 한 동료 한 명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당시에 추계 컴덱스쇼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1년에 한번씩 열리는 IT 행사중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행사였다. 2004년부터는 행사가 중단되어 있는 상태지만 미국 소비자 가전쇼(CES)와 더불어 가장 크고 권위있는 IT 행사였다.

남자 단둘이 떠난 여행치고는 별로 준비를 하지 않고 떠났던 여행이었다. 흔적을 남길만한 카메라 하나 가지고 가지 않았고, 설레는 마음에 별로 준비한 것 없이 출발하였다. 준비한 것이라고는 동료가 준비한 일정표와 렌트카 예약 그리고 라스베가스 호텔 예약 뿐이었다.

그때는 인천공항이 개항하기 전이어서 김포공항에서 출발을 했다. 항공료를 아끼기 위해 싱가폴을 출발하여 서울을 경유하여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싱가폴항공'을 탔다.


서울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제트기류의 영향으로 10시간만에 도착할 수 있다. 시차로 인해 당일 오후에 출발하여 당일 낮에 도착하게 된다. 반대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로 올땐 하루를 시차로 인해 까먹는다. 또한 서울로 올때는 비행시간도 몇시간 더 걸린다.

싱가폴항공을 타보면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인도인들이 많이 타는데 동남아와 인도 사람들이 뿌리는 특유의 향수를 지겹도록 맡으며 갈 수 있다. 그래도 항공료가 싸고 서비스가 좋기에 인기있는 노선임에 분명했다.

처음 장거리 비행기를 타다보니 첨엔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또 편하게 잠을 잘 수 없는 이코노미석이라 잠은 처음에 포기했다. 기내 영화도 한참을 보다가(영어로만 나온다)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중간에 석식과 조식을 한번씩 먹은 것으로 기억한다. 말이 10시간이지 정말 지루한 시간이다.

(SFO 위성사진)

10시간이 지나 도착한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SFO)는 샌프란시스코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도착해서 렌터카를 찾기 위해 공항입구로 걸어 나오면 11월인데도 불구하고 햇살이 정말이지 따갑게 느껴질 정도로 볕이 강하다.

바로 이곳이 미국이구나! 드디어 미국땅을 밟게 되었다라는 감격이 밀려온다. 처음 느낌은 역시 낯선 풍경이었다. 한국과 달리 미국 샌프란시스코엔 아기자기한 산세를 볼 수 없었고 낮은 건물들과 원거리에 위치한 산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평야들이 펼쳐져 있었다.

같이 도착한 동료와 나는 서로에게 미국에 도착한 첫 느낌을 물었었고 공통된 대답은 '정말 넓고 큰 나라다'라는 소감이었다. 그냥 온 사방을 둘러보아도 그런 느낌만 있을 뿐이었고 다른 설명을 할 수 없었다.

환승버스를 타고 렌터카를 빌리러 갔다. Hertz 홈페이지를 통해 이미 한국에서 렌트를 신청해 놓은 상태였고 짧은 영어실력으로 차를 찾아서 드디어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렌트카의 차량기지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북쪽으로 10여분 거리에 있다. 차량을 빌리기 위해선 국제운전면허증이 필요한데, 국내에서 면허증을 가지고 있으면 발급받을 수 있는 곳에 가면 사진 한장만 있으면 바로 만들어 준다.

우리 둘이 가지고 있는 것은 샌프란시스코 지도와 렌터카 그리고 두려움과 호기심 뿐이었다.

첫 여행목표는 샌프란시스코 관광이었으나 이내 포기를 했다. 일단 정보가 너무 부족했고, 남은 일정이 라스베가스로 가는 것이었기에 101(One-O-One)번 고속도로를 타고 San Jose 방향으로 타고 내려가서 1박을 하기로 했다.

미국의 고속도로는 유료도로도 있지만 무료 고속도로도 많다. 대부분 개발 비용을 다 회수한 고속도로들인데, 국내에 비해 관리상태가 좋지 않았다.

좀 특이한 점은 국내처럼 감시카메라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가끔 도로 옆에 Radio Check라고 쓰여있는 간판이 있는데, 속도 감지 카메라 단속 구간 표시이다. 그러나 한번도 카메라를 본 적이 없었다. 카메라만큼이나 도로 경찰도 보기 힘들었다.

태평양을 바로 면하고 있는 도시가 샌프란시스코인데, 101번 고속도로를 타고가면 볼 수가 없고 대신 1번 국도는 해안을 따라 나 있기에 바다를 볼 수 있다. 그 바다가 바로 태평양이라니... 나중에 라스베가스를 돌아올때는 1번 국도를 타고 와 봤는데 정말 경치가 좋았었다.

미국땅을 처음 밟은 우리들은 끝없이 난 도로를 따라 San Jose로 떠났다. 지도에는 가까워 보였지만 실제 3시간 가량 걸렸다. 가는 중간에 Mountine View, Palo Alto나 Sunnyvale같은 실리콘 밸리 지역을 지나갔다. 먼발치였지만 Stanford 대학도 지나갔다.

캘리포니아는 히스패닉계 인종이 많다. 즉, 멕시코와 남미계통의 인구가 백인들보다 훨씬 많다. 하기야 원래 이 땅은 그들의 땅이었다. 지명 앞에 붙은 San이나 Los 등은 모두 그들의 언어(스페인어)이다. 어디서나 쉽게 히스패닉계를 만날 수 있고 멕시코 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타코(Taco)라는 음식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으로 먹어보았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종사자들이 히스패닉계였다. 백인들은 대부분 이런 일에 종사하지 않은듯 보였다.

미국에서 운전을 처음한 우리들은 미리 몇가지를 교육받았는데, 차선을 잘 지키라는 것이었으며, 사거리를 만나면 무조건 정지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운전할 때와는 달리 여기 샌프란시스코에는 신호등이 그리 많지 않으며 있더라도 좌회선등이 따로 있는 신호가 아니라 알아서 좌회전을 해야하는 신호등이 많았다.

차선을 잘 지키라는 뒷 배경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농담일 것이라 생각이 되지만 전혀 안 믿어지는 것도 아니다. 미국인들의 총기소지는 신고제이긴 하지만 자유롭다. 그래서 총기를 휴대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개인주의가 만연한 나라이기 때문에 불쾌하거나 감정적인 모욕을 당했을때 총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차선 등의 문제로 국내처럼 다투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냥 총을 쓰윽 내밀고 쏴 버리는 식이라고 들었다.(^.^) 물론 그렇게 쉽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생활방식이라고 믿었기에,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차선을 아주 착실히 지켰다.

물론 제도 역시 이를 뒷받침하는데, 사거리엔 어디든 정지차선이 있다. 없는 곳에서는 상관이 없지만 있는 곳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서지 않으면 법규 위반이다. 그래서 실제 미국에서 운전을 하면 흰색의 정지선앞에서 서지 않는 차는 아예 보지를 못했다. 그리고 정지선에서 차들이 서 있을때 대부분 서로에게 양보를 했다. 어떨땐 답답할 정도로 서로 양보를 해서 한참뒤에야 교차하는 풍경도 자주 목격된다.

자동차의 경적소리 역시 거의 들을 수 없다. 뉴욕같은 대도시에서나 그런 일이 있겠지만 대부분 소도시에서는 경적소리를 들을 일이 없다. 아마도 땅이 넓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시민들이 조급하지 않은 성격을 소유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도착해서 느낀 몇가지 중에, 아주 넓은 나라라는 인식과 함께 느긋한 그들의 생활이 참 부러웠다. 항상 여유가 있었다. 조급하지 않다보니 우리 한국사람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때가 참 많았다. 또한 공산품의 왕국답게 웬만한 상점에 들어가면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상품들이 많았다.

기름값이 상상이상으로 저렴했으며, 주유원이 없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었다. 대부분 셀프 주유다. 방식도 바로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넣는 방식과 계산원에게 계산하고 넣는 방식 등 방법도 여러가지다. 품질도 상중하로 구분되어 있어 품질에 따라 주유할 수 있었다. 물론 렌트카는 제일 싼 기름으로만 주유를 했다.

코스트코에 가서 맥주를 샀는데, 한국에서 보던 외산 맥주(주로 버드와이저나 코로나 같은 맥주)가 아주 쌌다. 한박스를 사도 2만원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가끔 한국 여행객들이 실수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주류를 좌석에 놔두는 것인데 위험한 행동이다. 경찰들이 차량 좌석에 술병을 보면 음주운전으로 의심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술은 사면 바로 트렁크에 감추어야 한다.

쓰다보니 의외로 길게 이야기가 나온다. 7년전 기억이라 생생하지는 않지만 또 기억나는 것도 많다. 언제 또 시간되면 미국 여행기를 남겨야 겠다. 기억이 지워지기 전에 남겨야 할 것 같다.

컴덱스를 빌미삼아 떠났던 1999년 11월의 미국 여행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인식의 전환의 시기였다. 그 후로 더 열심히 일하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사람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답답하고 힘들고 변화가 필요할때 멀리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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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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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cansmile.tistory.com BlogIcon cansmile 2006.11.06 0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국에 다녀온 사람들의 기억들을 듣는 시간들마다 느끼는 거지만, 차선을 징그럽게 지킨다는 점이 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점이라는걸 씁쓸하게 느낍니다.. 흠...
    사고가 잔뜩 나는 것보다 조금 지겨운 것도 괜찮을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