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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아이쿠 vs 웁스

킬크 2008. 6. 24. 13:10

요즘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영어조기교육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영어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남들만큼은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영어교육은 어느덧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저녁을 먹고 나선 동네마실길에 새로 생긴 건물에 영어 학원이 두개나 들어선 것을 목격했다. 하나는 기초를 다지는 학원이었고 하나는 나름 레벨이 있는 학원이었다.

어떤 초등학교에선 원어민 강사가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는데, 그렇지 못한 학교에선 학부모들이 나서서 아이들 영어교육에 열의를 쏟아붙고 있는 상황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태권도, 미술 음악, 피아노 같은 예체능 위주의 학원에서 어느순간부터 영어학원이 등장했다. 대체 저 어린 나이에 예체능에 이어 외국어를 이렇게 일찍 배워야 한다는 것이 정상일까 하는 생각은 가끔했다.

나도 남들처럼 우리 두 아이에게 영어교습을 시키고 있다. 큰 아이는 시험을 쳐서 들어갈 수 있는 영어학원에, 둘째 아이는 같은 아파트 주민으로부터 배우는 영어수업을 맡겼다.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서 보내긴 했지만 마뜩치는 않다.

그나마 영어교습 자체가 아이들의 흥미를 조금이라도 끌 수 있어서, 그리고 교습방법이 우리 시절에 비해 재밌기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다고들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집 아이는 실수를 할 때마다 어깨를 으쓱이며 '웁스(Oops)'하는 말과 행동을 한다. 그럴때마다 별신경을 쓰지않고 있었는데, 오늘 문득 예전 내가 어릴적에는 저런 상황이면 '아이쿠'라는 말을 했었다는 기억이 갑자기 떠 올랐다. 또한 저 또래때 나는 어떠했었나 생각해 봤다.

그 시절 영어공부는 중학교에 시작했었고, 1학년때 알파벳 쓰기와 필기체를 몇십번씩 써가는 숙제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배우면서 이 모든 것은 시험에 나온다는것 때문에 무조건 해야하는 과목으로만 생각했었다.

교육방송 라디오에 나오는 영어교육 다이얼로그에 귀를 기울이고, 참고서에 딸려나오는 테이프를 통해 외국인의 발음에 귀를 쫑긋하던 시절은 오로지 그것이 상위학교 입학시험에 나온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그나마 듣기는 영어공부에서 정말이지 어렵기도 하고 난해한 부분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와 실제 외국인의 발음이 다르게 들렸던 것도 얼마되지 않았고, 그것이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모르고 그냥 학창시절을 지냈다.

대학 들어가니 취직을 위해 토익 토플이라는 순위를 메기는 영어시험들이 있었고, 어학실이라는 곳에 가서 생활영어라고 하는 고리타분한 대화만 담긴 다이얼로그를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비교적 별로 쓸일 없었던 영어를 그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배우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다. 물론 실생활 활용보다는 시험이나 평가를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영어는 중요하게 우리 생활에 퍼져 있었다.

앞선 해외의 다양한 지식과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영어의 달인까지 될 필요는 없었다.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누군가가 다른 이들을 위해 우리의 국어로 번역해 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일본의 영어의 활용수준은 번역에서 돗보인다.

글로벌화를 이야기하면서 영어는 필수가 되었다. 길거리에서 쉽게 외국인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영어 한마디 정도는 상식처럼 알고 있어야 되는 것처럼 믿게 되었다. 영어로 된 콘텐츠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하다못해 케이블 TV 채널에도 미국드라마 같은 영어로 제작된 콘텐츠들이 속속 제공되고 있다.

우리는 자주, 영어가 학문이나 평가의 영역보다 '언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가끔은 영어라는 언어가 우리의 언어보다 뛰어나다는 착각을 하고 사는 것 같다.

하지만 한두번의 해외 여행을 위해, 그리고 드라마, 영화의 빠른 이해를 위해 영어에 미친듯이 메달린다는 것은 정말이지 모순된 행동이라는 생각마저 가지게 되었다.

언어라는 것은 모름지기 문화의 성격이 강하다.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사고와 함께 익숙해지지 않으면 배우는 것도 쉽지 않다. 영어를 단순히 시험을 위한 도구로 배우거나 단순히 학문적인 용도만으로 배운다면 반쪽짜리가 아닐까.

요즘 아이들은 영어를 통해 서양의 문화를 빠르게 익힌다고 한다. 할로윈데이와 파티문화에 대해 배우고, 그들의 예절을 배우며, 몸짓 발짓에서 그들의 모양새가 보이기 시작한다.

영어를 배운다는 것 자체는 문화를 배우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지만,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보다 생활에 더 깊이 파고드는 서양의 문화가 찜찜하기만 하다.

뭔가 불편하면서도 그럴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이해와 함께 작은 분노도 함께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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