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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휴가는 정말이지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9박 10일... 이미 출발하기 며칠전부터 마음은 설레이고 심지어 얼차려를 받아도 기분은 들떠 있었다.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을 뵙고 거수경례를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모님께 거수 경례후 다시 큰 절을 올리면, 이미 가족들이 잔치라도 벌일듯 모여 들어 있었다.

군복을 입고, 전보다 건강해진 얼굴로 친구들을 만나보면, 다들 군대가 사람을 바꾸어 놓았다는 농담들을 한다. 사실, 신체가 건강해지는 것은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다. 그도 그럴것이 정해진 시간에 식사와 운동, 적당한 긴장, 또한 군대라는 자연적인 환경조건(대부분 외진 곳이나 산속에 있으니까)까지 사람이 건강해지는 것은 정말이지 군대의 장점 중의 장점이다.

짧게만 느껴지는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오르는 길에는 고참들을 위한 사제 담배와 특별 주문(?)을 받은 고참들의 선물을 사간다. 뭔지는 상상하는 대로다. ^^

군대는 공식적인 음주는 없다. 다만 군대도 회식을 하는데, 원래는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어 있으나, 하사관들이나 장교가 참석하는 가운데서 그들의 재량으로 술을 마시게 한다. 술이라 해봤자 전부 소주였다. 복귀를 하는 사병들에게 가장 많이 시키는 것이 술심부름이다. 이렇게 반입한 술은 고참들이 한밤중에 몇몇 고참들을 모아 반합에 김치 안주로 마시곤 했었다. 물론 들키면 완전군장에 연병장 뺑뺑이 감이다. 대부분의 하사관들은 이를 알아도 모른척 봐주곤 했었다.

일병을 달고 상병을 달면 군생활은 점점 더 재미 있어진다. 아래로는 많은 후임병과 위로는 능글능글한 고참들 사이를 잘 조절하는 그야말로 가장 힘있고, 날아다니는 계급이 상병이다. 이 시기에 애인이 있는 경우 고무신 거꾸로 신는 경우가 많다. 그땐 민간인 생활의 거의 잊기 때문이다. 애인에게도 신경을 많이 쓰지 않게 된다. 상병은 군대 '짭밥'의 위력이 나오는 계급이다. 훈련을 나가도 상병들이 없으면 꾸려나가질 못한다. 중대나 소대내의 군기 잡는 군번이 바로 상병들이다. 이등병, 일병들의 잘못은 대부분 상병들이 책임을 져야했다. 이때 상병들이 리더쉽을 많이 배우게 된다. 제대로 된 리더쉽과 막무가내 리더쉽이 이때 차이가 난다. 사실 나도 개인적으로 상병 때의 기억이 많이 있고, 또 재밌던 시기였다. 이때가 군생활의 가장 황금기이다.

말년이라고 말하는 병장 후반기가 되면 거의 모든 군생활에서 게으름이 박히는 시절이다. 이때 마무리를 잘 해야 사회 나가도 변치 않는다. ^^ 열외도 자주 하고, 가끔은 그 무지한 짭밥도 거르고 PX에 목숨을 거는 시기도 이때다. 집에다가 돈부쳐 달라고 하는 때도 병장때이다. '고추장', '닭발' 없으면 식사를 거의 안하는 시절이다.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면 제대 날짜가 온다. '국방부 시계'는 언제나 돌아간다. 달력에 카운트다운도 하고 신병에게 외우게도 하는 그런 날이 온다. 허용은 되지 않았지만, '제대 앨범'도 만든다. 대부분 아래 후임병들이 만들어 주지만, 내가 제대할 때는 그런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 그래도 난 개인적으로 사진들을 모아 앨범을 만들었다. 지금 이 글도 예전 군앨범 사진들을 보다가 기억으로 쓰게 된 것이다.


사실 오늘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아침에 '노컷 뉴스'를 통해 본 '유승준'기사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군생활만큼 힘들고 괴로운 시기는 없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군생활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저런 살아가는 여러가지 방법도 배웠고, 단체생활을 통해 얻는 지식과 경험도 컸다. 2년반이라는 시간이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은 제대를 하고 난 후에 느꼈다. 군대에 있을땐 하루 하루 시간만 지나가기를 바랬지만, 그래도 지나고 나서는 뿌듯함과 뭔가를 해냈다는 마음이 지배적이다.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 있었던 때에 완수를 하고 돌아온 승자의 기분이 바로 전역을 하게 되면 느낄 수 있다. 전역 신고를 하러 갈때 그 기분은... 그리고 그때 입소를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 빨리 잘 다녀왔다는 생각을 가졌다.

난 어쩔 수 없이 군에 간 경우였다. 사실 빠질만한 이유나 방법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군생활의 시작은 비록 피동적이긴 했어도, 복무기간동안은 자신의 몫이자 자신의 시간이었다. 이왕 갈 군대라면 계획을 세우고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요즘 군대는 정말 편해진 것으로 보인다. 내가 군복무할 때에도 시간을 내서 공부하는 전우들을 봤었다. 지금은 더 시간을 많이 준다고 들었다. 환경도 좋아서 건강에도 좋다. 규칙적인 생활도 건강에 많은 도움을 준다. 음주를 줄이게 해주며, 계급생활로 사회 생활의 축소판도 경험할 수 있다.

사실 처음엔 '의무'라는 병역이 싫었던 기억이 많았다. 제대후에도 꿈에서 제일 무서운 꿈은 군생활 꿈이었다. 아직도 제대를 못하고 있다는 설정은 정말이지 제일 무서운 악몽이었다. 그 정도로 남자들에게 심적인 부담을 주는 곳은 맞다. 그러나 이 땅에 태어났고, 내가 아니면 내 옆에 친구 누군가라도 그 의무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나 하나로 인해 내 부모 형제, 애인이 잠을 푹 잘 수 있다는 말이 구호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진정한 용기는 바로 실천하는데 있다.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길줄 하는 이 땅의 수많은 남자들이 있다. 그가 연예인이라 하여, 그가 축구 선수라하여 예외적인 경우를 두는 것에는 난 반대한다. 누구나 자신의 미래에 있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서 국민으로서 '병역의무'라는 것은 어쩌면 절실한 우리의 현실이다.

이젠 사회도 관대해져서, 특기가 있는 사병은 특기를 살릴 수 있는 혜택도 준다고 알고 있다. '스티브 승준 유'이든 '유승준'이든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살고자 하고 이 땅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도 부정하지는 말아야겠다.

'병역의무'와 맞바꾼 것이 '국적'이라는 사실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미국 시민권자 '스티브 승준 유'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 말을 하고 생김새가 한국인이라고 모두 한국 사람이 아니다.

아직도 휴전 중인 이 나라를 위해 2년 동안 사회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 뭐가 그리 부담이 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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