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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방보다 더위가 일찍 찾아오고 더 오래 있다가 가며, 여름 더위를 대표하는 곳이 되어 버린 대구는 요즘 한 낮이 그야말로 본격 더위가 시작되고 있다.

날은 덥고 입맛은 없다. 요즘 회사 사람들이랑 점심 먹을 때만 되면 뭘 먹을지 늘 고민한다. 늘 가던 음식점, 늘 먹던 음식에 더위까지 합쳐지니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 자체가 고역이 되고 있다.

그러던 중 회사의 미식가 친구가 싸고 맛있는 시장통의 보리밥을 먹으러 가자는 제의를 했다. 회사에서 가까운 재래시장은 북구 칠성동의 칠성시장이다. 행정구역상 북구지만 시청이 있는 중구와 바로 붙어있는 대구의 대형 재래시장의 하나가 바로 칠성시장이다.

칠성시장은 서문시장과 함께 대구를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다. 신천변에 있고, 청과, 채소, 어패류, 육류, 과자, 원예, 주방용품, 중고가전상이 몰려있는데, 대성시장, 사과시장, 경명시장, 북문시장, 청과시장, 칠성시장 등이 함께 몰려있고 이를 모두 칠성시장이라고 부른다.

그중에서 지하철역이 있는 칠성시장이 가장 대표격이다. 신천변으로 바로 옆에 청과시장이 있는데, 채소와 청과 등이 칠성시장의 주요 품목이다. 보리밥 뷔페 일명 보리밥집은 칠성청과시장쪽에 몰려있다.

보리밥 뷔페

칠성시장의 보리밥 뷔페 스타일은 대부분 비슷하다. 갖가지 채소를 담은 큰 그릇들이 시장통 좌판 위에 주욱 놓여져 있고, 손님들이 앉으면 자신이 원하는 채소를 보리밥 그릇에 담아 비벼먹는 스타일이다.

무나물, 콩나물 무침, 열무김치, 돌나물, 파무침, 호박나물, 미역줄기무침, 배추절임, 상추, 등등 제철 채소는 모조리 다 올라가 있다. 주방과 손님이 앉는 테이블이 마주보고 있고,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양은 그릇에 보리밥 한가득 담아준다.


손님은 이 그릇에 자신이 원하는 채소를 얹어 비벼 먹거나 그냥 얹어 먹거나 한다. 숭늉 한그릇과 강된장도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2천원을 받는다. 어디가서 밥이 나오는 점심 한끼에 2천원 짜리가 있단 말인가?

이런 기본 시스템에 생선조림 한가지, 콩나물국, 비지 한그릇 더 해서 3천원 받는 집들도 많이 있다. 이젠 2천원 짜리보다 3천원 짜리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사실 3천원 받아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다.

보리밥집에서 식사 중인 손님들


전현직 대통령이 다녀갔다고 유명해진 집부터, 오랫동안 내공 가지고 입소문만 타고서 손님이 끊이지 않는 집, 뭐가 부족한 것인지 여전히 손님이 없는 보리밥집 등 청과시장 안쪽 시장엔 보리밥집이 눈에 많이 띈다.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알고 왔는지, 장보러 오는 사람들만 찾는 것이 아니다. 보리밥집 주인에게 물어보니 관광코스로 버스 타고 오는 단체 손님들도 있다 한다. 그만큼 칠성시장 보리밥집이 나름 명소라는 뜻인데, 가까이 있으면서 이제야 알게 되었다.

몇 번 다녀오니 나이든 어르신들이 가장 많지만, 우리처럼 젊은 사람들도 많다. 특히 예쁘게 차려입은 아가씨부터 40대 초중반 아주머니들도 많이 찾고 있었다.

시장 밥인심은 원래부터 후한 것이어서 우리같은 장정들이 여러명 들이닥치면 그릇 가득히 보리밥 담아 준다. 모자라면 더 달라고 하라는데, 이것 저것 채소 가득히 넣고 비벼 먹으면 더 달라는 소리는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양이 대단하다.


보리밥집만 계속 들락거렸더니 이제 눈이 조금이 넓어졌다. 지나치다가 국수 하는 집, 냉면 하는 집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영천 보리밥, 포항, 할매 보리밥 등 나름 알려진 보리밥집들이 모여있는 3번과 4번 (신천강변 공영주차장 출입구 번호) 사이에 칼국수 손님이 붐비는 집을 발견했다.

채소를 파는 시장 통로쪽에 두 개의 가판대를 차지하고 있는 집이었는데, 보리밥도 하고 칼국수를 하고 있었다. '보문손칼국수'라는 상호가 눈에 들어온다.


가게 두 개 사이에는 칼국수 작업대로 보이는 곳에 홍두깨와 칼국수 반죽이 접혀져 있다. 저 상태 그대로 칼로 썰어 뜨거운 육수물에 넣으면 바로 칼국수가 되는 것이다. 만들어 놓은 칼국수면이 아니라 이렇게 직접 필요할 때마다 썰어 국수를 끓인다.


기다리는 손님들 사이에 긴 나무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 한 15분을 기다리니 국수가 나왔다. 먹어 보지 않아도 걸쭉한 국물이라는 느낌이 한번에 온다. 삶은 호박, 부추, 배추, 들깨가 고명으로 얹어져 나오는데 면발이 쫄깃하다. 금방 해서 바로 차려주니 면이 부는 일은 없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집 나름대로 유명한 손칼국수집이었다. 주인인 할머니가 40년 넘게 칼국수 하나를 고집하고 손님을 맞고 계신 가게였다. 지역 신문사의 맛집 담당 기자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니 나름 고집스럽고 정성이 담긴 음식 장사를 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다.

칠성시장 보리밥집들이 몰려있는 청과시장쪽에 손칼국수를 만드는 집은 보문손칼국수 뿐이란다. 현재는 며느리 둘과 함께 많은 손님들에게 칼국수와 잔치국수, 보리밥을 대접하고 있다.


우리 일행이 처음 갔을 때 시원한 잔치국수가 먹고 싶어서 주 메뉴인 손칼국수는 다음으로 미뤘었다. 주인 할머니의 둘째 며느리쯤으로 보이는 또 다른 주인은 허기에 진 우리에게 시원한 국수를 내놨다.

국수가 만만한 음식처럼 보이지만 사실 육수에서 맛이 결정된다. 그 육수라는 것이 멸치를 이용해서 소위 '다시(육수)'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정성스러운 음식이다보니 아무나 쉽게 맛있는 국수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항상 끓고 있는 물에 면발을 익혀, 미리 준비한 육수에 김과 간장 고명을 얹어 준다. 바로 삶은 국수 면발이 쫄깃하고 비린 맛이 나지 않는다. 목말라 육수부터 들이켜 보는데 정말 맛있다. 멸치를 많이 넣어 육수를 만들면 멸치 비린내가 나는데, 전혀 그런 비린내가 느껴지지 않는다. 멸치 자체가 고급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대형 그릇 한쪽은 늘 끓이고 있다. 요즘 같이 더울 때는 손칼국수도 육수를 시원하게 해서 주기도 하며, 원래대로 따뜻한 육수를 달라는 손님도 있어 주문하면 미리 물어본다.

손칼국수 역시 육수에서 맛이 판가름 난다. 주인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감자 삶은 물이 핵심이라고 하는데, 더는 알려주지 않으려 하셨다. 아마도 예전에 그 순박한 심성으로 아무에게나 알려줬다가 낭패를 보신 일이 있나보다 생각했다.

감자 삶은 물에 멸치, 다시마 등이 들어가 시원하면서도 깔끔한 맛을 내는 것이 보문손칼국수 맛의 비결이다. 주인 할머니는 '이 집 칼국수가 왜 맛있어요?' 라는 질문에 웃으시면서 '손칼국수라 맛있어요'라고 대답한다.


보문손칼국수도 보리밥을 한다. 보리밥 가격은 2천원. 손칼국수와 잔치국수는 500원 더 받아서 2,500원이다. 칼국수가 맛있고, 잔치국수도 수준급이다. 양이 모자라면 더 준다. 국수도 예외는 아니다.

어릴 적 할머니집에서 자랄 때 손칼국수 하는 할머니 모습을 유심히 살펴 봤었다.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밀가루 반죽을 하실 때 굵은 소금도 넣어 찬물에 반죽했고, 다시 반죽을 만들 때 콩가루를 넣었다. 밀가루 냄새도 나지 않게 만들고, 면발이 잘 나오도록 하는 역할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만든 반죽을 홍두깨로 잘 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은 집에서 손칼국수를 만들어 먹는 사람도 거의 없을 뿐더러 아예 홍두깨같은 도구도 사라진지 오래다. 칼국수집에서 손칼국수 재료를 직접 보면서 먹는 다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 보이는 주방과 칼국수를 직접 썰어 끓는 물에 넣는 모습까지 다 볼 수 있으니 새록새록 어릴 적 기억과 향수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보리밥집, 보문손칼국수 찾아가는 방법

신천공영주차장


칠성시장 지하철역에서 내린다면 1번 출구에서 나와서 청과시장 안으로 들어가서 찾으면 되고, 차를 가지고 간다면 신천대로 고가교 아래 있는 신천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된다. 1시간에 1천원 정도 수준으로 나오며, 30분 기본에 10분당 250원 단위로 계산된다.

주차장쪽 방향에서 보면 출입구 번호가 쓰여 있는데, 3번과 4번 출입구 사이에 보리밥집들과 보문손칼국수가 위치해 있다. 채소나 청과물 파는 점포들 사이를 지나가면 가게들을 바로 찾을 수 있다.

참고로 칠성시장은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은 휴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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