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시작이었지만, 스토리의 시작은 아니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주인공 윤영(박해일)과 송현(문소리)이 군산 관광안내도 앞에 서있는 씬이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화 '경주'의 감독 장률의 새로운 작품이다. 나는 장률 감독이 만든 작품이전에 '군산'이라는 지명에 먼저 주목했다. 작년 겨울 처음으로 가 본 도시.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뜨는 도시였기에. 

물론 이런 감성적인 접근말고 GM 군산공장 폐쇄 문제로 사회적인 이슈도 커진 도시이기도 하다. 

감독 인터뷰를 보니 군산이라는 제목을 붙인 건 영화사란다. '이리', '경주'라는 국내 지명을 타이틀로 제작한 영화가 있어서인지 '군산'도 괜찮은 영화제목 작명이었다는 이야기. 제목은 영화를 다 찍고 고민하며 만든 것이라고...

초반부 두 주인공의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이 연인도 아니고, 미혼남과 유부녀라는 묘한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자는 확실히 여자에게 호감이 있으며, 여자 또한 호감이 있다는 정도는 눈치챌 수 있다. 

그냥 불륜, 아니 연애가 주제인 영화인가 하는 선입견을 가질만한... 그래서 장률감독의 영화가 그리고 풀어가는 모습이 홍상수식 그것과 닮아있는지 모른다. 관객 스스로가 주인공인양 몰입해야 재미를 더 할 수 있는...

군산에 도착한 두사람은 간단한 아침식사와 가게주인 덕분에 반주까지 마시게 되고,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피곤해 하며, 민박집을 찾는다. 알듯모를듯한 식당주인의 추천으로 찾아간 민박집. 사람가려 받는다는...

민박집 주인(이사장, 정재영)은 자폐증을 가진 딸(박소담)과 함께 민박집을 운영 중이다. 주인 외엔 아무도 손님이 없는 한적한 민박집에 두사람은 묵게 된다. 윤영은 방과 거실에 걸린 흑백사진들을 보게 되고, 그 사진들 속엔 아침을 먹었던 식당과 어디선가 본듯한 낯설지 않은 주택집안 풍경도 걸려있다. 대나무숲, 철길, 거위사진도.

윤동주 시인을 좋아한다는 송현. 군산의 풍경이 일본같다며 좋아하는 그녀에게 윤영은 일본에 죽은 윤동주 시인을 이야기하며 비난한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라며 응수하는 송현의 모습. 그리고 이어지는 민박집 주인에 대해 호감을 보이는 송현의 모습에 윤영은 기분이 좋지 않다.  

송현은 그런 윤영의 모습을 잘 안다. 어떤 생각으로 군산에 같이 가자고 한 것도 다 알 것 같은. 그러나, 송현이 생각하는 윤영과의 관계는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다. 아니, 아닌척일수도 있다.

잠깐 피식하게 웃게 만드는 에피소드지만 아무런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조선족 여자가 송현을 아는척하며 달려드는 장면. 갑자기 '왜'라는 질문이 들지만, 영화 후반부로 가면 그로 착각한 사람이 윤영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송현의 반응은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지만. 연변말투를 흉내내는 그녀의 사연은 뒤에 나온다. 이중적인 그녀의 모습?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민박집으로 돌아온 두사람은 방을 하나 더 달라고 해서 따로 숙박한다. 민박 주인의 암실에서 호감을 표현하는 송현. 어리고 아이같은 윤영보다 옛날사람 민박주인이 더 끌린다. 왜일까? 아마도 이성에 대한 호감을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어서일까?

윤영은 민박집으로 가던 길에 봤던 문닫힌 그 집을 찾아간다. 폐가인 그 집 담을 넘는 윤영. 잡초 무성한 뒷마당. 바람소리만 들리고. 민박집 주인이 찍어서 걸어놨던 그 장면으로 들어간다.

주인딸(주은)은 송현에게 외면당한(?) 윤영에게 관심을 보인다. 낯선사람을 피하는 그녀지만, 윤영에게는 관심을 보인다. 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서일까? 윤영이 자신이 보살펴야할 사람으로 비쳐지는 것일까? 돌아가신 윤영의 어머니인가?

또 하나의 피식 포인트. 옥상에서 거친 남자의 숨소리와 송현의 목소리가 들려 올라갔더니... 송현이 주인에게 108배를 가르치고 있다. '여:아직 53배 남았어요. 내려갑니다. 남:헉헉헉... 같이 나가보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밖 카페에서 다시 만난 윤영과 송현. 옷이 또 바꼈다고 이야기 하는 윤영. 여자의 옷은 바뀐 그녀의 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 남자의 시각으로 보면 호감가는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여자의 마음을 읽어 불편한거다. 음료값은 여자가 낼 거라고 나가버리는 윤영. 소심한 복수.

장률감독은 우리가 잔잔하게 웃을 수 있는 장치들을 여러 곳에 심어 두었다. 카페를 나서 길가다 점집을 들른 송현. 이어지는 무속인과 송현의 모습이 나란한 모습. 누가 손님이고 누가 무속인인가? 점괘를 보자고 들어간게 아니라 점쟁이 간을 보러 들어간 것이었다. '개업을 해... 그렇게 많이 알면...'

민박집 앞에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 그러나, 민박집 주인은 빈 방이 없다고 돌려보낸다. 재일교포인 주인은 왜 일본인 손님을 받지 않는 것일까? 손님은 오로지 이 두 남녀뿐인데. 그 이유는 아마도 자폐를 앓는 자신의 딸을 보호하기 위한 것 아닐까?

윤영은 옆집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구경하고, 민박집 주인과 송현은 바닷가 출사를 나간다. 자신을 찍어 달라는 송현의 요청에도 피사체는 사람이 아닌 풍경에 촛점을 맞춘다. 그리고 듣게 되는 이사장의 사연. 그러나 일본말로 설명한다. 재일교포는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 라는 의문이 문득.

칼국수집 사장 백화는 일본어로 민박집딸 주은과도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왜 그녀는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있을까? 손님은 보이지도 않는 칼국수 가게에서...

바닷가 출사를 다녀온 민박집 주인과 송현. 암실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모든 것을 이야기해도 될 것 같은 어두운 암실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는 여자에게 상처만을 주는 존재라 믿는 그녀. 당신은 상처주지 않을 사람 같다는 그 말은 무슨 뜻일까? 위로받고 싶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그는 마음을 열지 않는다. 왜일까? 또 다시 여자로 인해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 아닐까.

원숭이권법(후권). 소변. 공터에서의 에피소드는 그 남자의 승리다. '참을 수 있겠어요?' 그거면 충분한 답이다. 다시 돌아온 민박집. 그리고 암실을 나오는 송현. 윤영은 송현 때문에 송현은 민박집 이사장에 상처받고 잠자리로 돌아선다.

불당의 피아노 소리.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영화씬을 연상케 하나, 실제 불당에서 연주하는 피아노소리다. 108배에 정진 중인 송현이 모습과 그녀를 따라 온 윤영. 이 불당은 군산에서도 유명한 동국사다. 일본식 사찰로 유명하다.

주인공 4명이 한번에 다 나오는 씬. 주은이 윤영 앞에서 첫 날 송현과 민박집에 왔을 때 방안에서 두 사람이 했던 행동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 모습을 본 송현. 그리고 황급히 뛰어 들어가는 주은. 민박집 주인은 그 모습에 또 다시 뛰어 나온다.

'너는 되고, 나는 안돼?'

민박집을 나서는 윤영의 뒤로 주은도 따라 나선다. 그리고 배를 타고 섬으로... 그 섬으로 간다. 마치 꿈에 나왔던 그 장면 그대로. 민박집 주인이 사진을 찍었던 그 위치 그대로 섬이 보이는 그 장면. 

두사람이 사라지고, 다시 민박집. 필름이 없어졌다고 송현에게 말하는 주인. 그리고는 다시 칼국수집으로 발길을 옮기는 송현. 낮부터 국수와 함께 술을 마시는 송현의 모습. 주인 백화와 잔을 부딪힌다.

속상한 송현은 왜 그럴까? 민박집 주인에 대한 호감이 거절을 당해서? 후배 윤영때문에? 자신도 남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일까?

주은이 다쳐서 병원에 있고, 윤영은 범인으로 몰려있다. 그리고 오해는 풀리고, 다시 서울로 향하는 윤영. 집으로 돌아오니 조선족 파출부 순희는 아버지가 치매가 의심된다고 알린다. 거위를 보고 '영아, 영아하고 부르기도 하고 끌어안고 울기도 한다'고...

윤영은 아버지께 수박과 참외를 사서 갖다 드리고, 다시 길을 나선다. 모금방송을 하는 사내. 그리고 약국. 치과...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이렇게 듬성듬성하다. 대체 뜬금없이 이건 무슨 상황일까? 하는...

이렇게 흘러가다 스토리는 끝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타이틀 '咏鵝(영아)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뜬다. 

어?

그리고 새로운 씬이 시작된다. 스토리의 시작점이다. 앞의 '왜?'라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마치 던져주듯 후반부에 몰입하게 된다. 영화는 정확하게 여기서부터 끝까지 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이해가 쉽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사실을 찍는 것이 아니고, 기억을 찍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기억이란 것은 사실의 순서가 아니다'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냥 영화적 장치일뿐이다. 

다시 편집해서 시간의 흐름으로 영화를 만들었더라면, 집중도는 떨어졌을 것 같다. 영화의 후반부에 관객들이 집중하게 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우리들은 '왜'라는 호기심을 끝내 뿌리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윤영이 선배의 부인 송현을 만나게 되었는지, 돈없이 약국에 들렀던 일과 송현의 사촌언니 치과에 간 일. 조선족인척 하는 송현의 모습. 조선족 파출부를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런 모습이 싫어 길 가다 만난 아버지의 지인에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거짓말 하는 모습. 

송현의 전남편이 운영하는 카페에 가서 행패를 부리는 일. 송현과 다니다 아버지를 만나는 씬. 그리고 다시 중화요리집에서 만나는 송현과 전남편인 선배. 다시 송현과 윤영이 만나 노래방으로 간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군산으로 가자는 윤영의 제안에 버스에 오르는 두 사람.

그리하여 두 사람이 군산에 가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 감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반드시 찾아야 속이 시원하고, 실제 그렇게 하기 위해 영화를 보겠지만, 군산은 그냥 대사 한마디, 장면 하나씩에서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윤영 : '누나는 낮에 하는 게 좋아요, 밤에 하는 게 좋아요?'

송현 : '변태새끼'

이런 질문에는 남자의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주작이지만, 결코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너와 나, 우리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질문으로 느껴진다.

한국과 일본, 한국인과 조선족, 남과 여,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 남편과 아내, 손님과 주인 같은 각각의 상대를 마주하고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에 대해 깊은 이해와 배려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감독이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조선족의 권리를 찾는 일을 돕는 송현이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오해한 조선족 여자를 대하는 모습, 파출부가 윤동주 시인의 친척이라는 걸 알게 된 윤영의 행동, 측은한 마음에 아버지께 과일을 사들고 간 윤영이지만, 이해안되는 꼴통같은 생각과 부끄러운 행동을 한 아버지를 무시하려고 돌아가셨다는 거짓말을 하는 그의 모습. 민박집 주인의 일본인을 대하는 모습 등 우리 주변엔 모순적인 행동과 이중적인 자세가 역력하다.

그런 모습들은 영화속에 몇 번이나 나온 '거울'이라는 소품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거울에 비쳐지는 나의 모습은 어떤가? 거울속의 나는 다른 사람인가?

영화는 장률감독과 함께 출연진을 봐도 호감이 간다. 주인공 박해일, 문소리와 정재영, 박소담, 명계남(동방우), 김희정, 문숙, 이미숙, 한예리, 윤제문, 정은채 그리고 백현진. 이들의 진지하지만 사실적인 연기가 영화의 맛을 더 살렸다.

장률감독의 영화는 그냥 빠져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2014/08/17 - '경주', 잔잔한 풍경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


Posted by 까칠한 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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