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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들어 두 번째 3일 연휴를 그냥 집에서만 보낼 수 없어서, 토요일 저녁, 내일은 어딘가로 떠나자고 다짐했다. 이때쯤 강원도 철 지난 바닷가를 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동해는 멀고, 안 그래도 강원도 방향 영동선 사정이 어떤지 눈으로 보고 왔기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도에서 가까운 서해안부터 살펴보았다. 강화도는 가볼 만큼 자주 갔었고, 지난달엔 대부도도 다녀왔던 터라, 마땅치 않았는데, 그 중간 딱 눈에 띄는 곳이 무의도였다. 내 기억에 무의도는 섬이었는데, 지도엔 다리에 놓여 있었다. 찾아보니 2019년 4월에 개통되었으며, 낚시와 나들이 장소로 인기 있다는 정보들을 접했다.

광명시에서 무의도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린다는 네비의 안내와 낮시간에는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일찍 나서는 것이 좋다는 정보들을 접하고는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인 오전 7시 반에 집을 나섰다. 유료도로를 최대한 타면 10여분 더 빨리 갈 수는 있으나, 굳이 그럴 필요 없어서, 영종도를 거쳐가야 하니 어찌 됐던 공항고속도로는 타야 했다.

비가 내릴듯한 흐린 날이었지만, 오전 10시 넘어 비가 온다는 예보만을 믿고 무의도로 갔다. 더 정확하게는 트래킹이 목적이어서 무의도 아래 소무의도 한 바퀴 도는 여정으로 출발했다. 전날 무의도에 대해 알아봤을 때, 핫스폿 몇 곳이 있었는데, 영화의 소재로 사용된 실미도와 드라마 촬영장이 있었던 하나개해수욕장 그리고 소무의도였다.

자가용 없어도 공항철도에서 인천공항자기부상철도를 타고 용유역에 내리면 무의도로 갈 수 있다. 물론 걸어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버스를 타고 무의도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한다. 무의도 들어가면서 실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었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공항이 들어서면서 육지가 된 용유도에서, 무의도를 가기 위한 조그만 섬인 잠진도를 지나면 무의대교를 지날 수 있다. 이때만 해도 무의도를 들어가는 차량은 많지 않았는데, 점심때쯤 섬을 빠져나오려 할 때는 무의도로 들어오는 차가 아주 많았다. 미리 알아보고 들어가길 잘했다는 생각. 넓지 않은 도로에 무의도로 향하는 긴 차량행렬은 보기만 해도 답답했다.

일단 무의도로 들어서면, 어딜 가도 15~20분이면 충분한데, 차량 정체로 막히지 않았을 때 이야기다. 그만큼 도로는 단순하고, 방문 스폿은 정해져 있다. 실미도, 하나개해수욕장, 광명항(소무의도) 세 곳이 전부다. 당초 목적지였던 광명항으로 달렸다. 도로는 큰 차(트럭, 버스 같은) 두 대가 교행이 어려울 것 같은 지점들도 있었으나 대체로 무난하게 교행이 가능한 수준의 도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호룡곡산과 국사봉 트래킹도 많이들 추천했다. 높지 않으면서도 오르면 서해와 주변 육지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장소라고 한다.

소무의도로 가기 위해서는 광명항에서 주차해야 한다. 광명항 주변에는 포구를 따라 무료 주차장이 있지만, 이곳은 주민들과 일찍 나온 낚시객들의 차지라 사실상 주차가 어렵다. 우리도 처음엔 일찍 왔으니 주차공간 1~2개 면은 있으리라 생각하고 항구 가까이로 가봤으나, 이미 만석. 우리처럼 작은 바람으로 찾아온 손님들 모두 광명항 포구 쪽에서 차를 돌려야 했다. 주차난이 있다 보니, 주민 자치회에서 교통 및 주차관리를 하고 있었다.

무료 공영주차장

웬만큼 일찍 가는 분들 아니라면 광명항 들어가기 전 언덕 아래쪽 넓은 공영주차장 이용을 권장한다. 우리도 차를 돌려 공영주차장으로 향했는데, 이미 많은 차들이 주차된 것으로 보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른 시간에 이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원래 만들어진 공영주차장 외에 바로 아래쪽에 임시 주차장을 더 지어놨으니, 주차공간이 크게 부족하지는 않다.

다만, 주차장에서 광명항으로 가려면 약 500미터가량을 걸어가야 하는데, 평지가 아니라 언덕을 넘어가야 한다. 주차장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같은 평지에 위치해 있고, 주도로로 가기 위해 언덕길을 올라야 하며, 다시 바다가 보이는 좁은 언덕길을 넘어야 한다. 사진에도 나와있지만, 큰 버스 한 대가 지나가면 교행이 어려운 도로 폭이다. 아예 언덕 입구에 버스는 들어오지 말라고 쓰여있다.

언덕만 넘으면 탁 트인 바다가 보이며, 왼쪽으로 소무의도가 보인다. 광명항과 소무의도 사이에는 연륙교인 '소무의인도교'가 있다. 차량통행은 안 되고, 자전거와 도보로 소무의도로 갈 수 있는 다리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소무의도로 들어갈 수 있다. 

자전거길이 만들어져 있지만, 소무의도에서 자전거로 둘레길을 갈 수는 없으니 그냥, 소무의도까지 왔다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소무의도로 들어가도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은 볼 수 없었으며, 대부분 둘레길 걷거나 낚시하러 들어온 사람들만 보였다.

연륙교 남쪽에서 바라본 광명항포구
소무의도 떼무리항

다리를 건너면 작은 항구가 보이는데, '떼무리항'이라고 한다.

인도교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포토존이다. 이곳의 상징으로 새우가 있는 걸 보니 아마도 지역 수산물 대표가 새우가 아닐지. 

포토존 바로 왼쪽으로 난 계단길이 '무의바다누리길'이라 불리는 트래킹 코스다. 안내판에는 친절하게도 8구간으로 나눠서 시계방향으로 안내를 하고 있으나, 몸의 습관인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섬의 둘레를 걷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그건 여행자 마음이니까.

어쨌든, 소무의도 트래킹길 첫 구간은 계단으로 이어진 오르막으로 시작했다. 다른 산에 비해 그리 높지는 않으나 트래킹 첫 구간부터 목을 들어 하늘만 바라보며 걸어야 하니 처음부터 진이 빠질 수는 있다. 물론 시계방향으로 걸어온다고 해서 오르막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희망을 가지고 걸으면 된다.

소무의도 정상엔 '하도정'이라는 조그만 정자가 지어져 있어 시원한 바닷바람과 서해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잠시 땀을 식히고 가까운 해녀섬과 낚싯배 구경하는 것도 괜찮다. 아 참! 소무의도의 공중화장실은 떼무리항 근처와 반대편 몽여해수욕장 부근에 있으니, 광명항에서 일부러 화장실을 들러올 필요 없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인도교를 바라보면 광명항이 또 멀어 보인다. 길이 400m가 조금 넘는 인도교엔 사람들이 바다 풍광을 즐기는 것이 보인다.

소무의도 정상에 올라보면 남쪽으로 작은 섬이 하나 보이는데, '해녀도'다. 가까워 보여도 약 1km 정도 떨어진 무인도다. 해녀들이 물질하다가 잠시 쉬는 곳이라 해녀도라 부른다고. 아직 이곳에도 해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리막길엔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진다. 구름에 가려진 파란 하늘이 조금 보이고, 햇살도 새어 나와 검은 바다 한가운데를 스포트라이트 비추듯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반대로 걸어왔더라면 뒤돌아봐야 할 풍경이지만,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바다는 낭만적이다.

해녀도가 보이고 그 사이에 낚싯배들이 보인다. 그리고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남쪽으로 희미하게 다른 섬이 보이는데, 영흥도다. 소무의도에서 직선거리로 약 10km 정도 되니, 정말 가까운 거리에 있다. 동쪽의 인천항 연안 여객터미널이 15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영흥도가 훨씬 가깝다.

섬의 제일 남쪽에는 숨어 있는 해변이 하나 있는데, '명사의해변'이다. 안내판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여름 휴양을 즐겼던 해변이라 소개되어 있는데, 이유는 잘 모르지만 '박정희'라는 글자는 원래 만들어진 글자를 지우고 덧쓰여져 있다. 여기서 '명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말하는 것으로 읽힌다. 해변에는 떠내려온 어구와 쓰레기로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 더 가면 나오는 몽여해변이 진짜 해수욕장 같다. 이곳에는 바닷가 전망이 좋아서인지, 카페와 펜션이 모여있으며, 해수욕장다운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중간에 있는 건물은 섬이야기 박물관이라는 건물인데, 폐관되어 을씨년스럽다. 아마도 코로나19 상황으로 문을 닫은 것 같지만, 섬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은 현대식 건물이다. 내가 보기엔 그냥 흉물이다.

섬의 동북쪽에는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냈던 곳인 부처깨미가 있는데, 안내판에 따르면 소를 잡아 풍어제를 지냈다고 한다. 풍어제를 지냈다면 신성한 곳일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풍광 좋은 장소로만 보인다.

이렇게 걷다 보니 약 40분 정도만에 소무의도 한 바퀴를 완전히 돌아 나왔다. 천천히 걷고, 쉬면서 걸었다면 아마도 1시간 거리였을 것 같으나, 비가 막 쏟아질 것 같아서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걸었던 이유도 있을 거 같다. 마침 다시 떼무리항으로 돌아왔을 때 비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다시 잦아들긴 했지만...

떼무리항은 작고 조용했다. 근처 유어장(관광용 어장)이 있어 낚시객들이 조금 보였고, 트래킹을 마친 사람들이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담소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소무의도는 무의도가 용유도와 무의대교로 이어지면서 함께 육지가 된 곳이다. 아직 관광지로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곳은 아니지만, 곳곳에 들어선 깔끔하고 세련된 카페들이 자리 잡는 것으로 봐서 머지않아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은 예감이다. 물론 도로 상황이나 주차 등 다른 편의시설이 아직은 부족해 보이지만 서해 바닷가를 배경으로 차 소리 사람 소리 들리지 않는 트래킹을 원한다면 아직까지는 추천할만한 곳이다.

앞서서 이야기했지만, 무의도는 소무의도 외에 하나개해수욕장과 실미도가 유명한데, 하나개해수욕장은 워낙 알려져 있는 곳이어서 그다지 감흥이 없었고, 실미도는 사유지여서 입구에서부터 입장료와 주차비를 징수하는 것에 반감이 느껴져서 바로 차를 돌렸다. 물론, 좋은 것을 누리려면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친절하지 못한 안내와 주변 시설에 실망했다. 언제 다음에 다시 꼼꼼히 살펴보고 갈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그리 끌리지 않았다.

실미도 쪽에서 다시 용유도로 나서는 길, 반대편 차선의 차들을 보며 어서 여기를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점심때인 정오가 가까워졌지만, 눈에 띄는 가게는 몇 개 없었고, 그나마 큰 가게들은 차량들로 빼곡했다. 지도 앱으로 메뉴와 가격을 보다가, 칼국수 1,2인분이 아닌 소(小)자 가격이 39,000원, 49,000원이라는 가격에 놀라 그냥 급하게 무의도를 빠져나왔다. 섬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렇게 돈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일요일 오전 서해안 바람맞으며 바닷가 둘레길을 걷고 왔다는 것으로 만족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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