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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좀처럼 믿기 힘든 일이 하나 알려졌다. 교육당국이 학생들에게 나눠준 노트북 웹캠이 학생을 감시하는데 사용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펜실바니아의 Lower Merion School District(LMSD, 로어 메리온 지역 교육청)은 작년 9월부터 교육청 산하 두 개 고등학교에 1,800대의 교육용 노트북을 학생들에게 무상 지급(대여)했다. 노트북을 나눠준 이유는 학교 교육 시스템에 언제든 접속하여 학습을 위해 사용하라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해당 지역은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부유층이 밀집한 지역이라는 점도 무상으로 노트북을 대여해줄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LMSD는 미국내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노트북을 나눠준 것을 자랑으로 삼던 교육청이었다.

Apple Macbook, 화면 상단에 웹캠이 장착되어 있다


나눠준 노트북은 Apple의 MacBook으로 소유 자체는 교육청 자산으로 되어 있으며, 학생들은 교육목적으로 사용하는 것만 허락했다. 게임을 다운로드 받거나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것이나 악세서리를 부착하는 등의 행위도 금지시켰다.
 
뿐만 아니다. 학생이 접속한 웹사이트가 일반적으로 교육청에서 금지하는 사이트의 경우 접속을 차단하는 기능도 들어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접속한 사이트의 히스토리도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상 대여 노트북은 학습 이외의 목적으로는 사용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도난과 분실, 파손 등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별도로 보험을 들게 했고 이는 학생들이 부담하게 했다. 보험을 들지 않으면 학교밖으로 반출을 금지시켰다.

교육목적만을 위해 노트북 사용을 감시하기 위한 보안소프트웨어도 설치했다고 알려져 있다. 학기가 끝나면 학교에 반납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어 있다. 따라서 방학 때는 사용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 지급된 노트북 (출처 : LMSD 홈페이지)


그러나 무상으로 대여해준 노트북에 사생활침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소송으로 번지는 일이 벌어졌다. 나눠준 노트북에는 웹캠이 부착되어 있는데, 웹캠이 감시 카메라 역할을 하고 있었던 정황이 잡힌 것이다.

16일 화요일 LMSD 산하 Harriton(해리튼) 고등학교 학생인 Blake J. Robbins(블레이크 J. 로빈스)와 Lower Merion 학생들을 대리하여 Robbins의 부모들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 책임을 물어 LMSD 교육감과 이사회 임원들을 고소했다.

고소장에 의하면 Robbins씨는 작년 11월 11일, Harriton 고등학교 교감인 Lindy Matsco(린디 마츠코)가 자신의 아들에게 집에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꾸지람을 하면서, 그 증거로 자신의 아들 노트북 웹캠으로 찍은 사진을 내놨다고 한다. 즉, 학교가 허락받지 않고 임의로 학생의 행동을 감시했다는 증거를 교사 스스로 내놓은 것이었다.

Robbins는 학교가 나눠준 노트북을 통해 학생을 감시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학생이 노트북을 집에서 사용하면서 학교가 감시했다면 학생뿐만 아니라 가정 생활 전반이 감시대상이 될 수 있으며, 만일 조금이라도 민감한 부분이 노출이 되었다면 이것은 큰 사생활침해라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이는 법으로 금지한 도청이나 도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학교당국이 불법으로 학생을 감시했다는 문제점과 함께, 학생뿐만 아니라 학생의 가정과 가족이 감시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생활보호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미국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출처 : LMSD 홈페이지


이에 대해 LMSD는 현지시각으로 2월 18일 오후 5시경, 교육감인 Christopher McGinley 명의로 언론과 소송에 제기된 사생활 침해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학생들에게 나눠준 노트북(Apple MacBook)에는 도난과 분실을 대비하여 보안기능이 동작되고 있었는데, 이를 바로 중지시켰다고 했다. 일명 Remote Tracking Security라는 기능이다.

이 기능은 분실 또는 도난으로 의심될 때 이를 통제하는 센터(LMSD 보안기술팀)로 알려지며, 노트북에 장착된 웹캠을 통해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기능이 활성화된다. 기술 자체는 Apple이 구현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학교측은 이 기능을 이용하여 학생을 감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난 또는 분실 의심상황이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학생이 노트북을 통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면 웹캠으로 학생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으며, 주변 모습까지 촬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명서 마지막 부분에 현재 교육청측은 즉각 이 기능을 중지시켰고, 다시 이 기능이 재작동되지 않도록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사고가 터진 후의 조치에 불과했다.

교육청의 말대로라면 분실과 도난 의심 때에만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교사가 임의로 사용했다는 것이 문제일 수 있지만, 민감한 사생활 노출에 대한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교육청도 비난의 대상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기술과 사생활침해에 대한 부분이다. 보안을 목적으로 맹목적인 기술만을 앞세운다면 사생활침해 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이다.

분실과 도난 등의 걱정 때문에 웹캠이 스파이캠의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이를 원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 뿐만 아니라 서비스 제공 사업자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도덕심이 어느 곳보다 강조되는 교육계에서 사생활침해로 의심받을 수 있는 행동을 보였다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작은 소동으로 비쳐질 수 있는 문제이지만, 보안과 사생활침해라는 각도에서는 의미있는 이의제기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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