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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개인 PC)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PC를 조립할 줄 아는 사람 수준이라면 하드웨어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미묘한 문제를 잡아내는 것은 전문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며칠 전 오래된 컴퓨터를 새로운 컴퓨터로 교체하는 일이 있었다. 이미 작년에 구입한 케이스와 파워, 하드디스크를 그대로 사용하기 위해 CPU와 메인보드, 메모리, 그래픽카드만 구입해서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학창시절부터 컴퓨터 조립을 해봤었고, 웬만한 것은 직접 구입해서 설치할 줄 알기 때문에 부품만 구입하여 조립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부품의 초기 불량만 없다면 금방 끝나는 일이 컴퓨터 조립이다.

남은 부품은 예전에 사용하던 케이스와 CPU, 메인보드, 그래픽카드 등이 있어서 한 대를 더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제까지 잘 사용해 오던 부품들이어서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보드가 약간 의심스러워 중고보드 구입과 파워를 구입하기 위해 토요일 오전에 대구 유통단지 전자관을 찾았다.

대구 종합 유통단지 전자관 전경


서울은 용산 전자상가가 컴퓨터 부품의 메카 역할을 하지만, 대구는 예전 중구 교동시장의 많은 업체들이 10여년 전부터 북구 검단동 유통단지의 전자관 건물로 옮겨왔다. 그래도 아직 교동에는 몇몇 업체들이 남아있다.

유통단지 전자관의 컴퓨터관련 매장은 주로 2, 3층에 나눠져 있는데, 조립품, 완성품, 부품 등을 다루는 전문점 외에도 중고품을 판매하는 곳들이 섞여있다. 많은 업체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예전처럼 그렇게 경기가 좋지는 않다.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면 최저가 또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낮게 구입할 수 있으며, 전국 어디라도 하루 또는 이틀이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처럼 발품 팔아서 부품을 싸게 구입하려는 알뜰족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 평소에는 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를 통해 최저가로 구입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은 직접 전자관에 방문하여 부품을 구입하기로 했다. 사실 최저가보다는 약간 비싸지만 중고 부품이나 당일 물건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나 매장을 찾는 일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자관에서 중고 메인보드와 파워를 구입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조립을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컴퓨터가 자꾸 에러를 내며 부팅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예 POST를 하지 못하고 시스템이 꺼지고 켜지기를 반복했다.

예전 보드도 그렇고, 새로 구입한 중고보드도 그랬다. 계속 문제가 발생하자 메인보드를 구입한 곳에 테스트 의뢰도 하고, 만일 드물긴 하지만 CPU 문제라면 저가의 CPU 구입도 할 생각을 했다.

전자관 내부 중심부에서 바라본 모습


중고 메인보드를 구입한 곳에 연락을 하니 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만 근무한다고 했다. 그래서 급하게 오후 5시에 집에서 전자관으로 향했다. 6시까지 근무한다던 매장은 5시 30분에 도착하니 이미 퇴근을 하고 영업을 종료한 상태였다.

당황스러웠다. 마침 토요일이었고 그날 남은 부품을 통해 완성시키고 싶은 생각에 인터넷 주문을 대신하여 매장 구입을 했는데,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혀 버린 것이다.

할 수 없이 조립된 본체와 새로이 구입한 메인보드와 박스를 들고 난감해 하면서 매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3층 매장 중간 통로를 걸으며 지나가고 있는데, 통로에 있던 어느 매장의 여자분이 날 불렀다.

어딜가도 소위 제품을 둘러보라는 호객행위는 정말 싫어하는 성격이고, 더군다나 힘들고 실망스러운 마음이었기에 짜증부터 났다. '찾는 거 없습니다'라고 하고 지나가려는데, 무거운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내가 좀 안쓰럽게 보였던 것 같다.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래서 잠시 매장안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탁자위에 놓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러 이러한데 도무지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고 알아볼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털어놨다. 나중에 알고봤더니 이 매장은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매장 사장은 내 컴퓨터를 차근 차근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내가 예상했던 문제점과 비슷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CPU도 바꿔 보았지만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메인보드도 바꿔 보았지만 정상적이지 않았다. 결국 내가 가져간 CPU, 메인보드 모두 문제가 없었던 것이었다.

진땀을 흘리기는 나나 매장 사장이나 동일했다. CPU, 그래픽카드, 메모리, 메인보드, 파워까지 모조리 바꾸어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의심을 한 것은 바로 케이스였다.

케이스를 새롭게 바꾸자 문제가 해결된 것이었다. 결론은 케이스와 보드 등의 부품과 쇼트가 난 것이었다. 닿지 않아야 할 어딘가가 케이스와 닿아 오동작을 한 것으로 결론났다. 원인을 찾을때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두 시간 정도였다.

무려 두 시간 동안 문제의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는 모습


두 시간 동안 매장 사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최대한 내가 가지고 있던 부품들을 활용하는 방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고맙고 인상적이었다. 또한 문제점을 알고 해결해 내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은 바로 신뢰로 이어졌다.

결국 이미 문제가 생겨 버린 메인보드는 버리고 새로 구입한 중고 메인보드는 환불을 받는 선으로 결정하고, 새롭게 보드와 케이스만을 구입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원래 예상치 않았던 추가 비용이 발생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저렴한 금액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컴퓨터를 손보는 사이 몇몇 손님들이 물건을 보러 다녀갔고, 어느 고객은 지난 번 컴퓨터 구입에 이어 이번엔 노트북을 구입하러 왔었다. 하지만 이곳 사장의 신경은 온통 내 컴퓨터에 가 있었다. 반드시 해결하고야 만다는 수준으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상황이 종료된 시간은 영업 마감 시간인 오후 8시였다. 그 사이 가게 사장 부부의 아이들 둘도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과연 고쳐질 수 있을까 하는 내가 오히려 더 안절부절했다. 나중에 매장 사장도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며 해결했다는데 대해 만족해 했다.

처음에 호객행위로 생각해서 지나치려 했었지만, 정말 우연하게도 말을 걸게 되면서 결국엔 문제점을 찾게 되었다. 자칫 혼자 풀려고 했더라면 고생만 하고 속만 썩였을 것이 분명했지만, 전문가의 도움으로 어렵게 해결하게 되었다.

정말 마지막엔 내가 부품값을 지불하면서도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매장을 운영하는 부부가 상당히 진심을 가지고 고객을 대한다는 것에 감동받았다. 물론 모든 업장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컴퓨터 때문에 속을 썩인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고마운 상황이었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어린 자녀도 있었고, 마감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다음에 또 들르겠다는 인사로 마무리했다. 다음에 부품을 구입할 일이 있으면 매장 사장의 말처럼 얼마나 싼지 직접 방문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부품가가 의외로 싸고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장들이 꽤 있다고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매장을 믿지 못하는 시선으로 바라만 봤던 내게 이번 일은 약간의 충격이었다. 조금의 가격차만 존재한다면 앞으로 인터넷이 아니라 다시 매장을 찾아 예전처럼 발품을 팔아볼 생각을 했다. 작은 일이지만 고객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매장에게는 호감이 간다. 고객들은 그것을 잘 안다. 본능적으로 느낀다.

* 혹 대구 유통단지 전자관에서 컴퓨터 조립 상담이나 부품을 구입할 분이 계시다면 이곳을 추천해 드리고 싶다.

* 월요일 중고 메인보드를 반품하기 위해 아침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반가운 마음에 매장을 다시 찾았더니, 아직 업무를 시작하지 않아서 매장 앞 사진만 한장 찍고 돌아왔다.

* 이번 일과 관련되어 매장으로부터 어떠한 특혜를 받은 사실이 없음을 미리 알린다. 정해진 부품값은 일반 고객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모두 지불했으며, 특혜라면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매장 안주인과 나눈 아이들 교육 이야기가 전부였다. 

* Cube System(Cube 2), 유통단지 전자관 3층 83호, 053-604-5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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