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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에 관심은 있었지만, 캠핑 자체보단 캠핑용품 구입과 관리가 걱정되었고, 선천적 게으름과 야외 생활에 대한 걱정이 많아서 그저 남의 취미생활로만 여기고 살고 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부모님 댁에 아버지께서 거실에서 사용할 마땅한 의자가 없어서 찾던 중 리클라이닝 기능이 있는 캠핑의자를 하나 발견하고 구입하게 되었다.
22년 가을경으로 기억하는데, 쇼핑사이트에서 해외 직구 캠핑의자를 저렴한 가격에 특가판매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중국의 캠핑용품 제조사로 유명한 네이처하이크(Naturehike)에서 만든 3단 리클라이닝 캠핑의자다. 모델명은 TY03으로 검정과 베이지색(천 색상 기준)이 있는데, 베이지색이 정가의 절반 수준으로 풀려 2개를 구입했다.
네이처하이크는 국내 캠퍼들에게도 유명한 브랜드인 것 같은데, 이름 때문인지(NH) '농협'이라고 애칭이 붙어 있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찾아보니 텐트 제품이 유명한 것 같다. 구입한 TY03 모델 의자는 3단 리클라이닝 제품으로 95, 105, 125도 각도로 젖혀지며, 완전히 접어 보관 가능한 폴딩 기능을 가지고 있다. 차에 싣고 다니기에도 편리한 의자다.
그런데, 거실에 두고 종종 아버지께서 사용하셨는데, 한쪽 팔걸이가 부러진 것이다. 지병을 앓고 계신 탓에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는 의자에 앉고 일어서실 때 팔걸이 한쪽을 쥐고 일어서는 동작을 하시는 것이 반복되었는데, 사진에서처럼 부러진 것이다.
팔걸이는 고무나무 재질로 가공된 것인데, 자세히 보면 나무의 썩은 부분 결로 부러졌다. 즉, 이 부분이 약한 곳이었는데, 결국은 여러차례 하중이 몰리면서 부러진 것이었다. 나무접착제, 철사 등을 이용해 고정해 보았지만 모양도 이쁘지 않을뿐더러, 팔걸이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계속 부러진 부분이 힘을 받지 못하고 분리되었다.
한동안 내가 사용하던 물건이 아니라, 아버지도 의자를 사용하지 않으셨고, 그냥 접어서 치워둔 상태로 거의 1년이 지나도록 방치되었다.
부러진 당시에는 팔걸이 부품을 따로 구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제조사의 홈페이지도 들락거리고 메일도 보냈으나 답변이 오지 않았다. 한국에 별도의 한국독립법인이 있으나, 이런 일이 잦은 지 해외직구 제품의 보증 및 수리는 불가하다는 안내가 있었다.
그냥 그렇게 잊고 살다, 작년 말 부모님댁 집정리 하다가 의자를 제대로 사용해 보자는 마음에 팔걸이 수리를 마음먹었다. 우선 부러진 팔걸이만 분리하여 집으로 가져왔고, 집 근처 중심으로 목공 관련 업체들을 알아봤다. 동일한 크기로 만들어 교체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간단한 가공이어서, 취미 생활로 목재를 다루는 목공방 위주로 먼저 찾아봤으나, 전화 상담한 결과 한 곳은 부품 만드는 것을 못한다고 했으며, 한 곳에는 직접 찾아갔으나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만들어주는 비용이 아마도 의자 가격만 할 것이라고... 몇 차례 비슷한 이유로 찾아온 손님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해줬더니 불만을 가져서 이런 작업은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또한 가볍고 튼튼한 재질로 알려진 고무나무이지만, 목재소에서 유통하는 재로도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 두께도 20T(20mm)인데, 국내 각목 기준으로 20T는 없고 18T, 22T 목재만 유통되고 있는 사실도 확인했다. 차라리 일반 목공소에 잔목(작업 후 남은 나무 재료)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해줄 수도 있을 것이란 답을 받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도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혹시나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광명에 살고 있어서 가까운 구로나 부천쪽까지는 가능한 업체를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던 중 인천에 목공예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https://www.michuhol.go.kr/main/content.do?sq=323
인천 미추홀구 도원동에 있는 '숭의목공예마을'이라는 곳이다. 인천 1호선 제물포역과 도원역 사이 거리에 목공소, 공예사 가게가 모여있는 거리가 있다. 이곳이라면 저렴하게 만들 수 있겠다 싶어 바로 달려갔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것처럼 공예사와 목공소 등이 밀집되어 있었으며, 오래된 노토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거리 중간쯤엔 목공예센터도 있어서 동네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중 한 가게(오래된 노포)에 부러진 팔걸이를 보여주며 만들어줄 수 있겠느냐 물었는데, 무뚝뚝한 사장님(할아버지)은 아무 말 없이 가게 내에 돌아다니는 비슷한 크기의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가져온 팔걸이 재료 치수를 재고 이리저리 보시더니, 똑같은 나무는 없고, 보통 미송(미국산 소나무)이 가장 많으니 미송으로 만들어줘도 되냐 물으셨고, 바로 만들어 달라 부탁드렸다.
사실 이 가게에 들른 것은 가게 오른쪽에 '캠핑카 제작'이라는 광고를 보고 들어간 곳이었다.
국내 유통 목재의 크기가, 내가 가져온 팔걸이와 2mm 차이가 난다는 설명도 해줬고, 조금 두꺼워도 되겠냐는 질문에 동일한 것으로 2개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드렸다. 제작에 걸린 시간은 의외로 좀 걸렸다. 간단한 공정처럼 보였으나, 길이를 맞추고, 나사구멍(타공) 만들고, 팔걸이에 맞도록 부드러운 기계 사포질은 꽤나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엔 간단하게 방수를 위한 니스칠까지 마무리하고 끝냈다. 니스는 마를 때까지 계속 기다릴 수 없어서 대충 마른 후 포장박스지에 감아서 들고 왔다. 재료 선정에서 니스칠까지 대략 1시간 정도 걸렸다.
처음부터 가격흥정을 하지 않았는데, 대략 생각한 금액이 개당 1만 원 수준이었는데, 어찌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사장님은 개당 1만 원, 2개 2만 원을 부르셨다. 흔쾌히 지불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거의 못쓰게 된 캠핑의자 하나 살렸다는 기쁨이 2만 원의 지출보다 훨씬 컸다.
자 이제 조립! 새롭게 만들어온 팔걸이는 원래 조립되어 있던 나사와 딱 맞았다. 목공소 장인이 만든 작품의 정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기존 팔걸이와 큰 이질감은 없었으나, 멀쩡한 팔걸이도 새로이 맞춰온 팔걸이로 함께 교체했다.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고, 좀 더 야생의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아마도 목재 재료 그대로가 노출되어 그런 것 같다. 니스칠을 좀 더 했어야 하나 고민도 있었지만, 이대로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팔걸이가 부러진 캠핑의자는 원래 구입한 비용보다 하자가 발생했다는 찜찜함이 더 문제였는데, 팔걸이 세트를 바꾸고 나면서 새롭게 태어났다. 재질의 강도는 그냥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정도로 충분하다는 설명을 들어서 더 믿음이 간다. 다시 아버지께서 사용하실 수 있도록 거실에 내놨다.
하마터면 팔걸이 하나 하자 때문에 버릴뻔한 의자를 살려서 그런지 기분이 매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