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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잊고 있었다.
잠시 라디오로 들은 소식만 아니었으면, 올해 6월 13일은 토고와의 월드컵 축구 경기날로만 기억 했을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당시 중학교 2학년 심미선양과 신효순양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에 환호하고 있던 어느날, 두 여학생의 죽음이 알려지지도 않았던 2002년이었다.
'대규모 촛불시위'라는 문화를 만든 계기가 되기도 한 그 사건은 4년이 지난 지금, 내 머리속에 지워져 있었다. 참으로 속이 울렁거린다.
아직 우린 이런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힘의 논리와 강한 자의 뻔뻔함으로 두 어린 소녀의 죽음을 덮어버리려 했던 기억이 2002년이었다.
두 소녀의 죽음에 정치적인 판단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비록 우리가 경제적인 풍요는 누리고 있지만, 내 이웃의 조카같은, 동생같은 소녀 둘이 길을 걷다가 차갑고 무거운 장갑차에 깔려 죽고도, 책임을 지는 놈이 없는 무서운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온국민이 즐거워하는 일보다 단 한명이라도 이 땅에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까까지 즐겁기만 하던 마음에 잠시 답답함이 느껴진다.
지금 이시간 광화문에서는 두 소녀의 죽음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잠시 라디오로 들은 소식만 아니었으면, 올해 6월 13일은 토고와의 월드컵 축구 경기날로만 기억 했을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당시 중학교 2학년 심미선양과 신효순양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에 환호하고 있던 어느날, 두 여학생의 죽음이 알려지지도 않았던 2002년이었다.
'대규모 촛불시위'라는 문화를 만든 계기가 되기도 한 그 사건은 4년이 지난 지금, 내 머리속에 지워져 있었다. 참으로 속이 울렁거린다.
아직 우린 이런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힘의 논리와 강한 자의 뻔뻔함으로 두 어린 소녀의 죽음을 덮어버리려 했던 기억이 2002년이었다.
두 소녀의 죽음에 정치적인 판단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비록 우리가 경제적인 풍요는 누리고 있지만, 내 이웃의 조카같은, 동생같은 소녀 둘이 길을 걷다가 차갑고 무거운 장갑차에 깔려 죽고도, 책임을 지는 놈이 없는 무서운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온국민이 즐거워하는 일보다 단 한명이라도 이 땅에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까까지 즐겁기만 하던 마음에 잠시 답답함이 느껴진다.
지금 이시간 광화문에서는 두 소녀의 죽음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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