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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작품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딱 10년전 작품이자, 곧 개봉을 기다리는 '해변의 연인'이 10번째 그의 작품이다.

영화의 원작은 따로 있다. 구효서의 '낯선 여름'을 5명이 각색한 영화이며, 현대인의 무기력하고 답답한 일상을 그려낸 비극적인 결말의 영화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보고나면 가슴이 답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쩌면 영화로 인해 희망과 용기를 전달하려는 기존의 영화에 반기라도 드는 듯이 말이다. 그 답답함은 바로 우리의 일상이기에 그의 영화는 평범하기 그지없고 가끔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듯 하여 괴롭기까지 하다.

김효섭(김의성)은 흔히 볼 수 있는 삼류 소설가이다. 첫 장면이 옥탑방 자신의 집을 나서면서 건너편 집에서 키우고 있는 귤을 따먹는 그런 모습부터 보여주면서 이 남자의 단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후배의 출판사로 찾아간 그는 아직도 읽혀지지 않고 내버려져 있는 원고를 다시 돌려받는다. 그 정도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삼류 소설가이다.

그의 주변엔 그를 좋아하고 따르는 24살의 민재(조은숙)라는 아가씨가 있다. 효섭은 민재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 보이지만 민재는 다르다. 그와 만난 날이 언제인지 그의 생일이 몇 일인지까지 꼼꼼하게 기억하는 여자다. 그런 민재를 그냥 이용만 하는 효섭.

이 남자의 행동은 지루하다 못해 짜증난다. 화분에서 길을 찾고 있는 벌레를 괴롭힌다. 마치 자신이 화분속의 벌레라는 사실을 알지못한 듯이...

지갑을 깜빡하고 가지고 오지 않았다며 민재에게 돈까지 받는다. 효섭은 그런 남자다. 별 볼일 없고, 이기적인 그런 남자다.

효섭에게는 유부녀 보경(이응경)이라는 내연녀가 있다. 보경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냥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민재에게 꾼 돈으로 보경과 여관이나 드나드는 한심하고 뻔뻔한 남자다.
효섭의 원고를 맡기러간 출판사, 우연하게 그 출판사를 방문한 생수판매 관리사원인 동우(박진성)은 아이러니하게도 보경의 남편이다. 세상은 바로 이런 곳이다. 우연히 마주쳤을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 내 아내의 내연남인 것이다. 이미 이런 대목에서도 사람들은 이 영화가 불편해 진다.

효섭과 미술관에서 헤어진후 나선 보경. 택시안의 그녀의 모습이란... 자신의 결혼 반지를 만지작 거린다. 무슨 의미일까? 진정 이렇게 사는 것이 자신의 모습일까?

문인들의 모임에 참석한 효석, 후배 여자 작가에게 계속해서 술을 권한다. 집요하게 술을 권하는 그의 모습에서 '꼬장'이라는 단어가 생갈날 정도로 짜증스럽다. 그렇게 같이한 술자리에서 벌어진 종업원의 실수와 이로 인해 싸움이 일어나고, 선배와 말다툼까지 한다. 효섭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를 싫어한다. 극단적인 행동으로 즉결심판까지 이어지고, 자신을 변론을 펼치는 효섭. 그러나 판사는 구류 5일을 선고한다. 한번도 반사회적인 행동을 한적이 없다고 강변하는 효섭. 그러나 자신의 말을 보증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바른 사람인가?

한편 보경의 남편 동우는 깔끔을 유난히 떤다. 전주로 출장가는 차 안에서 멀미를 하는 옆자리 손님 때문에 휴게실에서 옷과 양말을 정리하다가 차를 놓친다. 다음 차로 도착한 전주의 백화점. 그러나 만나기로한 백화점 전무는 계속해서 약속을 어긴다. 전주에 있는 후배집을 찾은 동우. 알고보니 동우와 보경사이에 아이가 있었고, 아이는 죽었다. 그들에겐 슬픈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하루밤 전주에서 지내게 된 동우. 여관에서 소란이 있었다. 소란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백화점 전무와 어떤 여자...
마음이 심란한 동우는 여관 맞은편에 보이는 다방에 커피 배달을 시킨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동우는 결국 다방 아가씨와 관계를 가지게 된다. 관계가 끝나고 콘돔이 찢어진 사실을 알고는 몹시 당황해 한다. 곧바로 비뇨기과로 가서 검사를 받고 주사를 맞는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과 자신에 대한 무기력하고 자신없음이 바로 동우 자신의 모습이다.
극장에서 티켓 판매원인 민재는 돈을 벌기 위해 아침마다 모닝콜 아르바이트도 하고 오락실 기계 녹음 등의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효섭의 신발과 생일 케익을 사는 민재. 그런 민재를 짝사랑하는 극장 직원 민수(손민석)

잠시 피식하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민재가 효섭의 신발을 사러간 가게에서 주인이 전에 온 적이 있냐고 묻자 처음 온다고 말하는 민재. 그리고는 전에 찾던 신발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말하자 주인이 민재의 뒤에서 손찌검을 하는 흉내를 내는 장면이 있다.

효섭의 생일 케익과 선물을 사가지고 찾아간 효섭의 옥탑방엔 보경이 있었다. 보경은 방을 나오고 효섭은 그녀를 따라 간다. 민재는 실망스런 그녀의 심정을 털어놓지만 효섭은 오히려 화를 낸다. 그런 뒷모습을 바라보는 민수... 민수와 실랑이는 벌이다가 민수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자신의 몸을 허락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상봉터미널에서 효섭을 기다리는 보경. 둘은 함께 도망치기로 약속을 하고 상봉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효섭. 그를 기다리다가 소매치기를 당해서 택시비도 못내는 수모를 당한다. 효섭의 옥탑방을 찾아 왔지만 거기엔 효섭은 없다. 연락도 되지 않는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만나러 가는 보경. 우연히 남편의 뒤를 미행하는데, 알고보니 비뇨기과로 향한다.
병원을 찾아 다짜고짜 남편의 검사명과 병명을 알려달라는 보경. 그러나...
남편의 그런 모습에 기운이 빠지고, 효섭은 연락도 되지 않고... 난곡에 있는 그의 친구 약사를 찾아간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는데 보경의 영정 사진과 문상을 받는 그의 남편의 모습...
잠시후 효섭과 민재가 문상을 온다. 그러나 효섭은 보경이 누워 있는 방으로 향한다. 그러나 좀 이상하다. 보경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건 꿈이었다. 그러나... 이건 복선... 이미 효섭과 민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에서 깬 보경은 급히 효석의 집으로 향한다. 창문을 통해 방안을 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방안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는 효섭과 민재 그리고 멍하니 앉아 있는 민수...
집으로 돌아온 보경은 잠시 남편이 담배를 사러간 사이에 효섭의 삐삐에 음성을 남긴다...
'나한테 미안해 하지 마요. 정말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거실에서 신문을 읽다가 물끄러미 베란다 밖을 쳐다보는 보경... 보던 신문을 한장 한장씩 바닥에 깐다.그리고는 베란다 창문을 연다.
여기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 처음부터 흘러나오던 음산하고 기분 나쁜 음악만 머리에 남는다...

영화를 보고나서 받을 수 있는 느낌은...
'기분 더럽다'
아마도 홍상수 감독은 이런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이런 물음이 떠나질 않는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무슨 뜻일까?
돼지는 효섭, 보경, 민재, 동우일까? 아니면 바로 우리들의 모습?

그렇다면 우물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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