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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MP3P 제조사를 운영하는 선배를 만나,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시제품을 보여주고 의견을 들을 일이 있었다.

회사 차원에서 완성된 제품은 디지털 방송 수신기 모듈이었다. 타사 제품에 비해 이미지 처리가 우수하여 부드러운 화질을 제공하고 모듈 크기가 작은 편에 속하며, 그 외 여러 가지 차별적인 요소를 가진 제품이다.

그런 모듈로 만든 하나의 시제품(구현이 되어 동작하는 수준)을 가지고 선배를 찾았다. 이미 그 선배는 국내 내수를 벗어나 해외를 주력 시장으로 생각하고 수출에 주력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든 DMB 모듈을 이용한 시제품을 보여 주었을 때, 선배가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모듈의 원가였다. 물론 원가를 그대로 밝힐 수는 없었지만, 대략의 가격을 이야기 했었다. 그러자 그 선배의 반응은 그 가격이면 경쟁력이 없다는 결론부터 이야기 했다.

그 선배의 요지는 이렇다. 비슷 비슷한 성능(구매자의 입장에서 본)이라면 가격이 구매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설명이 구매자가 인식할 정도의 큰 차이가 아니라면 관건은 가격이다는 내용이다.

그 선배는 오랫동안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반응은 다소 의외로 생각 되었다.

보통 기술에 촛점을 맞추게 되면 시장의 소리를 놓칠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엔지니어들은 자신의 기술에 대한 애착이 남들보다 강하며, 시장보다 앞선다. 즉, 소비자들이 기술에 대해 몰라준다는 섭섭함이 앞서고, 제품을 내 놓을 때, 경쟁사에 비해 기술적인 우위를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엔지니어적인 마인드'라고 깎아내리기조차 한다.

우리 제품에 대한 충고를 해 준 선배는 우리가 만든 제품이 시장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함을 지적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사업가이기에 원가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후배 사이지만, 만일 거래가 이루어질 경우 좋은 가격의 협상을 이끌기 위한 하나의 전술이 아닐까라는 다소 비약적인 상상도 들었다.

그 선배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많은 부분 수긍이 갔다. 그 만남이 있고 이틀동안 그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다소 다른 결론을 생각해 냈다.

어떤 회사이든 제품을 만들어낼 때, 그 제품의 경쟁력을 따지게 된다. 이 제품은 시장에서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고민하여 만들게 된다. 차별성이 바로 가치(Value)가 되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가격적인 차별과 기능(기술)적인 차별이 존재한다.

소비자는 결국 이 두가지의 큰 요소에 의해 제품을 구매하게 되는데, 가격에 민감한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으로 구분하여 제품을 구매하게 된다.

동일한 기능을 가진 제품을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때 가격에 민감하게 된다. 그 기능의 차이가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이 들어있는 상태라면 구매의 기준의 가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가격에 대한 민감도가 기능에 비해 떨어진다면, 즉, 소비자는 어떤 기능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면 가격은 그 다음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기업이 전자가 아닌 후자를 생각하여 제품을 만들어 낸다. 가격보다는 기능과 성능의 차이로 소비자에게 어필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시장은 기술지향적인 마케팅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험난한 과정을 거치는 구조가 된다.

마케팅에 있어서 가격 경쟁력을 가지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다. 원가를 낮추는 데 집중을 하면 된다. 이는 원자재 구매에 대한 경쟁력과 제조과정에서의 원가 경쟁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런 방법의 마케팅 전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마케팅의 단점은 부가가치가 낮고, 리스크가 크다는 점이다. 방법 자체가 쉽기 때문에 경쟁자에 의해 추월당하기 쉽다.

반면, 기술적인 차별성을 추구하는 제품 생산업체는 가격보다는 기능과 성능 등의 가치(Value)지향적인 마케팅을 벌이게 된다. 가격지향적인 방법에 비하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일은 가격보다 훨씬 어렵다. 그러나 일단 그 가치가 고객에게 전달되었을 때는 부가가치는 가격지향적인 상품에 비해 훨씬 높다. 우리는 이런 마케팅을 '브랜드'라고 하는 것에서 많이 보게 된다. 그래서 기업들은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가격지향적 마케팅과 기술(기능)지향적 마케팅이 있다면 어느 쪽이 유리할까? 우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가격일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기술지향적인 것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리고 이 두가지 방법은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초기 시장을 만들어 나갈 때는 기술지향적인 가치 창출에 주력해야 하며, 시장이 성숙하였을 때는 원자재나 제조 원가를 낮추는 가격지향적인 마케팅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시장에 뛰어들어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지향적인 방법은 힘들 것이다. 물론 불가능 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기업은 이미 성숙한 시장은 가격을 경쟁력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런 시장은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즉, 시장을 끌어나가는 방법의 제품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2년 전에 읽었던 '블루오션 전략'이 떠오른다. 또 세스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의 Remarkable도 생각난다. 차별성을 강조하는 마케팅 서적들이지만, 결국 그 요소는 시장을 만들어가는 요소이지 시장을 따라가는 요소가 아니었다.

시장을 만들어 갈 때, 가치도 같이 만들어지며, 그때는 가격에 둔감한 상품이 나오기 마련이다. 소비자가 가격에 대해 민감해지기 전에 제품을 팔 수 있는 때가 바로 시장 형성기이다. 그런 시기에는 기술지향적인 제품 드라이브가 필요하며, 후발 경쟁자들이 뛰어들어 시장을 벗어날때 가격지향적인 드라이브를 취하면 좋을 것이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심혈을 기울인 제품이 가격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은 상당히 크다. 그러나, 시장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가격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 방법이다. 제품을 만드는 단계에서 시장을 잘 리드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생각하고 그 시장을 끌어가야지만, 원하는 가격대에 소비자가 필요한 가치를 공급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제품에 대한 노력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진행해야 한다. 그 방법만이 우리가 만든 제품이 시장에서 가격 민감도를 떨어뜨릴 것이다.

저가(低價)가 아닌 적당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제품은 시장을 만드는 방법 외엔 없다. 시장을 따라 가기만 한다면 우리 제품은 가격에 너무나 민감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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