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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로만 음악을 들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LP라는 축음기로 음악을 듣던 시절도 있었으며, 나중에 카세트테이프라는 것으로 음악을 듣던 시절도 있었다. 또 한 시절이 지나서 CD라는 깨끗한 음질의 미디어 열화없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절이 있었으며, 지금까지 업계에서는 음반 발매수량을 기준으로 음악사업의 성공여부를 따지고 있다.
90년대를 정점으로 CD의 음반매출은 줄어들고 있으며, 밀리언셀러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음반매출과 반비례하여 음악을 즐기게 되고 음악의 질과 양은 더 풍성해 졌다.
음반산업이 죽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음악산업계는 카세트테이프에서 CD로의 전환이 주는 교훈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음악산업 자체는 커지고 있다. 다만 제작자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고, 한 두개의 음반이 시장을 이끌어 가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전반적으로 제작자 각각에게는 불황으로 느껴질 뿐이다.
지금은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몇몇 밀리언셀러가 이끌어가는 시장이 아니다. 그런 방식에서 수익은 몇몇 제작자들에게만 집중이 되는 상황만 존재한다. 언제까지 그런 방식으로 음악산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믿어야 하나?
밀리언셀러 등의 베스트셀러 음반이 줄어든 것이 결코 음악산업의 축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파이는 커졌는데, 파이를 나눠가져야할 주체들이 많아진 것이다.
불법복제의 심각성은 카세트테이프와 CD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때는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지금보더 더 어려웠기 때문인데, 카세트 테이프 복제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쉬운 방법은 아니었다. 소위 리어카에서 구매한 카세트테이프가 음질은 비록 떨어지고 테이프의 내구성은 떨어지더라도, 카세트에 넣었을때 정품과 음질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가 없었다.
디지털방식의 CD로 전환은 이런 차이를 더더욱 없애는 계기가 되었다. 음악을 담아 판매하는 물리적인 미디어의 차이만 존재할 뿐, 그 위에 실린 디지털 신호의 차이는 없다.
사람들은 복제의 어려움을 털어버린 기기들의 등장에 환호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원래 음질에 비해 1/10의 퀄러티는 떨어지지만 참고 들을만한 음악의 등장에, 수첩만한 CD 플레이어 대신에 라이터만한 MP3 플레이어의 보급에, 쉽게 복사할 수 있고 지울 수 있으며, 보관방법도 간단하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없애는 음악에 환호하고 있다.
CD를 통한(음악을 CD에 담은) 음악 판매가 줄어들어 결국 없어질 것이라고 믿는 나는, LP와 테이프가 CD에 밀려나고 있다가 결정적으로 MP3의 등장으로 이들 LP와 테이프가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바뀌지 않는 것은 그런 미디어들이 담고 있었던 음악이다. 음악이라는 가치를 경험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런 미디어의 변화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즐기고 있었다. 다만, 그런 미디어를 플레이할 수 있는 기기들의 업그레이드만 있을 뿐이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작자의 제작여건을 넘어선 시대에 살고 있다. 소비자는 제작자의 사정에 따라 음악 소비 패턴을 바꿀 의향이 없다. 더 좋은 여건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으면 더 좋은 음악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돈주고 구입하는 것보다는 복제해서 그냥 즐기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이 소비자이다. 다만, 떳떳하고 떳떳하지 못한 양심의 차이만 남아 있을 뿐이다.
어제 DRM문제로 시끄러웠던 것은 어쩌면 이제는 음악산업의 패러다임이 제작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넘어온 것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스티브 잡스의 의도는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소비자의 요구를 업계에 던진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 오해한 것일까? 내 입장에서 어제 잡스의 글은, 이젠 그래야만 하는 시대라는 화두를 음반업계에 던진 것으로 본다.
DRM이 없는 음악의 복제는 사적인 권한이다. 즉, 구매하여 복제를 원한다면 그건 개인의 사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다. 간섭하지 않아야할 문제이다. 간섭은 자신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몇몇 개인에게 국한되어야 한다. 과도한 사적 복제 권한을 행사하는 개인들을 단속하는 것은 업계의 생존본능이다.
돈 주고 남의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한 관념이 당연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상식이다. 음원제작자들이 DRM을 원한다는 것은 당연한 요구다. 그들은 사용자들의 사적인 권한을 통제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LP와 카세트테이프, CD를 생각해 보자. LP는 복제라는 개념이 불필요했고, 카세트테이프는 기술이 복제를 도왔다. CD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수고를 하는 비용과 직접 정품을 구매하는 비용의 차이가 적었기 때문에 정품 구매가 이루어졌다.
음악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요즘 젊은이들에게 음악을 빼버리면 뭐가 있는가? 한곡에 500원씩하는 음악을 한달에 100여곡씩 구매한다면 5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야 한다. 100곡의 가치를 5만원의 화폐가치에 바꾸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다. 그만큼 아직까지 음악 한곡의 가치가 비싸다는 평가를 한다. (단,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이 음악은 MP3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정액제 무제한 다운로드가 가능성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여곡씩 묶어 파는 음반이 있어야 음악의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음악산업계에서는 이야기 한다. 그러나 상품에서 판매자보다 소비자의 권리가 우선시 되는 것은 시장의 논리다. 왜냐면, 소비자의 선택은 제작자의 선택보다 더 다양하기 때문이며, 그 선택권은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1곡을 듣기 위해 9곡의 돈을 더 지불하고 듣는 것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길인가? 1곡을 소비하다가 다른 나머지 곡이 듣고 싶어 산다면 그게 더 현명한 소비가 아닌가? 수익을 우선시 하니까, 다양성을 핑게로 드는 것이다.
요즘 음악이 상업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예술 창작이기도 하지만 돈을 내고 소비하는 상품이다. 소비의 선택권이 소비자에게 주어져야 함은 그렇기 때문이다. 예술로서 소비자가 판단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면 예술 창작이 되겠지만, 소비 기호품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을 누가 어떤 논리로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지금 음악산업계가 고민해야할 일은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꾸려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디지털음악산업이 음반(미디어 머티리얼) 시장을 넘어서고 있다. 점점 더 격차는 커질 것이고 마침내 머티리얼을 통한 음악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음악소비도 늘고 있지만, 그만큼 제작도 늘고 있다는 사실과 사용자들의 불편함을 무기로 음악을 판매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유료음악을 구입했더니 특정장치에서만 작동이 된다면, 작동기기의 문제로 인해 구입한 음악을 같이 잃게 된다면, 또 다시 같은 금액으로 구입해야 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사적인 복제권한에 대한 제어에만 신경쓰지 말고, 쉽게 음악을 소비하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비용을 내게 만드는 구조만이 음악산업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감히 주장해 본다.
상품을 쉽게 판매하는 방법 중에 하나로 판매자의 독점으로 인하여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도 있지만, 소비가 급격히 늘고 있을 때는, 수익을 낮추어 더 많은 소비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그것을 '박리다매'라고 한다.
구매과정에서 가격의 갈등이 생기면 박리다매는 실패한다. 심리적인 갈등의 벽을 부수는 방법이 필요하다. 더 큰 시장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 통제로 인해 독점을 꿈꾸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통하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