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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거미줄

킬크 2008. 10. 2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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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건물엔 주차타워가 있다. 10여대가 들어가는 로터리방식 주차타워인데, 차를 입고하거나 출고할 때 주차선반으로 직접 들어가서 주차하거나 출차해야 한다.

아침마다 8시쯤에 출근하는 나는 거의 매일 주차선반에 차를 얹어두고 나오면서 빈 주차선반기로 위치를 맞추기 위해 콘트롤박스를 조작하게 된다. 8시쯤이면 주차기를 사용하는 첫 사용자가 바로 내가 된다.

한동안 매일 아침마다 겪는 일인데, 아침만 되면 주차기 콘트롤박스쪽에 거미줄이 만들어져 있다. 어떨 땐 입고를 시키고 내리면서 타워기 밖으로 나올때 머리에 끈적한 거미줄이 붙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거미줄이 머리나 목 등에 감기면 기분이 찜찜하다. 그래서 잘 보이지도 않는 거미줄을 없애느라 연신 팔을 휘휘 저어본다. 가느다란 거미줄이지만 접착력이 있어서 옷에 묻어서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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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마디로 귀찮아진다.

심술이 난 나는 콘트롤박스쪽에 있는 거미줄은 볼 때마다 자른다. 그러면 중앙에 있던 거미는 진동을 알아차리고 긴급히 한쪽으로 도망간다. 아마도 밤새 애써 만든 먹이줄을 내가 끊어놓으니 녀석도 불편할 것이다.

거의 매일 아침에 거미줄이 보이면 바로 바로 끊어버린다. 가장자리만 툭툭 끊어주면 스파이더맨이 악당들을 잡을때 쓰는 거미줄 형태 그대로 휙 하고 날아가 버린다. 당황해하는 거미를 보며 살짝 썩소를 보내고는 이내 사무실로 들어가 버린다.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콘트롤박스에 거미줄이 보이면 무작정 끊어놓고 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와보면 녀석(다른 녀석이겠지만)은 또 자기 밥줄을 쳐놨다. 어떤 날에는 먹이인 곤충이 걸려 있거나 나방이 걸린 날도 있는데, 대부분은 빈 거물만 걸려있다.

녀석에게도 뇌는 있는 것일까? 매일 매일 거미줄을 끊어놔도 마치 나랑 신경전을 벌이는 것처럼 매번 새로 만들어 놓는다. 거미줄을 쳐놓는 것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혹시 본능일까? 매일 매일 끊어지는 밥줄을 보며 다른 곳으로 옮길만도 한데 늘 같은 자리에 거미줄이 쳐져 있다. 먹잇감이 잘 잡히는 곳인가 보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거미줄은 거의 보기 힘들었다. 거미줄하면 사람 왕래가 적은 후미진 곳에 쳐지는 것만 보았지만 대도시 빌딩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대구로 이사오고 나서는 너무나 많은 곳에서 거미와 거미줄을 보았다. 거미뿐만 아니라 벌같은 곤충들도 많이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왜 여긴 이렇게 거미줄이 많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역시나 서울보다 이곳의 환경이 좋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거미는 육식성이다. 파리, 나방, 잠자리 같은 곤충을 거미줄로 잡아서 먹는 절지동물에 속한다. 거미류와 곤충은 다르다. 같은 절지동물이지만 거미는 다리가 4쌍이며, 곤충은 3쌍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거미가 많이 서식하는 곳은 그들의 먹이인 곤충들이 있다는 것이며, 얘들도 먹고 살기 힘들면 서식을 하지 못한다. 결국 곤충이 많은 곳에 거미가 있다는 뜻이며, 곤충이 많다는 것은 결국 자연환경이 그런대로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곤충이 살기 힘든 곳은 다른 동물들도 살기 힘든 곳일 것이라는 추측은 바로 나온다. 적어도 서울보다 대구가 곤충이나 동물들이 살기에는 좋은 곳이라는 결론을 내려보았다. 곤충이 잘 살 수 있는 곳이라면 인간에게도 유리한 환경일 것이다.

예전에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거미는 죽이면 안된다고 했다. 아마도 해로운 곤충을 잡아먹기만 하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미는 생긴것만 흉칙할 뿐 실제로는 사람에게 이로운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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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툴라 거미, 출처 : EnCyber)

이 블로그의 파비콘(favicon)도 거미인데, 타란툴라라는 독거미이다. 타란툴라는 거미줄을 쳐서 먹이를 잡지않고 직접 먹이를 사냥하는 거미다.

거미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가끔 녀석들이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내게는 혐오스러운 동물이다.

인간이 거미와 동거를 한다는 것은, 적어도 사람많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내게는 나름 축복받은 것은 분명하다. 곤충들도 살 수 없는 인간들만의 도시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훨씬 자연에 가깝다는 증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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