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을 2시간여 남긴 지난 목요일 오후에 가슴 아픈 소식을 접했다. 갑작스럽게 둘째 작은 어머니의 소천소식을 접했다.

평소 당뇨를 앓고 계셨지만 이럽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올해로 49세... 나이로만 두고보면 작은 어머니는 아주 젊은 분이다. 큰 딸(사촌 여동생)이 이제 25살이고, 막내가 14살 밖에 되지 않았다.

작년 가을 추석 명절에 뵌 것이 내겐 마지막이 되어 버렸다. 올해 설명절에 찾아오시지 않았을 때만해도 작은 아버지와 사촌 동생들만 얼굴을 비쳐서 그냥 약간 서운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작은 어머니는 수요일 밤에 큰딸인 사촌 여동생과 한방에 주무시고는 다음날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셨다. 평소 당뇨를 심하게 앓고 계셔서 항상 피곤하고 초췌해 보였기에 목요일 그날도 그냥 피곤하셔서 계속 주무시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도 일어나지 않아서 여동생이 흔들어 깨우려고 하니 이미 돌아가신 후라고 한다.

나는 목요일 장례식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어떻게 돌아가신지 전혀 몰랐다. 부고 소식을 듣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지만, 아버지, 어머니도 갑자기 접한 비보에 병원으로 향하고 계신 중이었다.

맏상주인 사촌 남동생이 어려서 상주는 나와 동생 그리고 사촌 남동생이 맡았다. 기독교인이셨던 작은 어머니의 빈소는 국화와 영정사진이 놓여있었고, 큰절도 하지 못하게 했다. 작은 아버지와 큰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이 지켰다. 둘째 여동생은 일본 유학중인데 소식을 접하고 귀국일정을 급하게 잡고 있다고 했다.

너무 급하게 돌아가셔서 가족 모두들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미리미리 작별인사나 해두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이야기했지만 그러기엔 이미 늦었다. 우리 친척 가족들이 그런데 작은 아버지 가족은 오죽했을까.

작은 아버지와 나는 11살 차이가 난다.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났고, 내가 일찍 태어나서 나는 삼촌을 기억하는 시간이 많았다. 삼촌이 전자공고에 다닐 때 할머니댁에서 같이 자랐기 때문에 작은 삼촌에 대한 기억이 많다. 삼촌의 영향으로 나도 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선택하게 되어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
 
내가 중학생 시절이었던 당시 삼촌은 사내연애를 통해 작은 어머니와 결혼하셨다. 첫째 작은 어머니에 이어 젊고 예쁜 둘째 작은 어머니가 가족이 되었을때, 경상도와는 억양이 다른 충북 영동이 고향인 작은 어머니의 말투는 정말 신기했었다. 사춘기였던 그때 둘째 작은 어머니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었다. 그렇게 참한 분이었다.

첫째 사촌동생을 낳고, 둘째도 딸을 낳고는 아들을 낳고 싶어하셨던 작은 어머니는 한번의 유산으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셨고, 결국 13년 전에는 막내인 사촌 남동생을 낳았다.

작은 어머니는 시어머니인 우리 할머니를 유난히 잘 따르던 분이었다. 고모가 두 분이나 계시지만, 할머니는 막내 아들 며느리인 둘째 작은 어머니를 딸처럼 귀여워 하셨다. 가끔 식구가 모이면 둘째 작은 어머니가 할머니 친딸인것처럼 다정하게 지내셨다.

할머니는 아직 살아계신다. 가족들이 모두 작은 어머니의 소천으로 슬퍼할때 한편으로 모두들 할머니를 걱정했다. 당신이 먼저 가야하는데 며느리를 먼저 보냈다고 할머니는 이틀동안 음식도 드시지 않고 누워계셨다.

장례 이틀째 되는날 오후가 되서야 입관이 끝난 상태에서 엄마 얼굴도 못 본 둘째 사촌 여동생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입관이 끝났으니 돌아가신 엄마 얼굴도 한번 못보고 영원한 이별을 맞이해야 했기에 여동생은 많이 슬퍼했다.

어차피 가시는 길이었으면 일찍 찾아온 봄날의 노란 개나리와 하얀 벚꽃길을 작은 아버지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이별을 맞았더라면 좋았을텐데...

발인하고 화장장을 찾았을때 근처에 핀 개나리들을 보니 먼저 가신 것이 참으로 슬펐다. 1시간 30분이 넘는 화장시간동안 우리 가족들은 밖에서 빨리 찾아온 봄날 햇살아래서 작은 어머니를 기억했다.

타향에 시집살이와서 친형제들과 지아비, 자식들, 친척 가족들과 제대로 인사도 못나누고 세상을 떠나야했으니 당신도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토요일 오후, 작은 어머니는 한줌의 재가 되어서 유골함에 담겨서 납골당으로 모셔졌다. 납골당의 수많은 사연의 망자들과 함께 낙동강물이 굽이치는 모습을 내려다 보면서 영면을 취하게 되셨다.

준비 안된 이별을 지켜보는 우리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숙연해졌다. 더 사랑하며, 서로 아끼며 살자며 서로를 다독거렸다. 작은 어머니가 남긴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사촌동생들도 엄마가 없더라도 더 열심히 살고 행복하게 살아야 작은 어머니께서 좋아하실 것이다. 작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바라보니 공허함이 크게 느껴졌다.

납골당이 있는 산중에 찾아온 봄은 따뜻하면서 슬프게 느껴졌다. 개나리가 너무 노랗게 잘 피어서 더욱 슬펐다. 작은 어머니,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가족들을 지켜주세요.

Posted by 까칠한 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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