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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여행을 가면 보통 홍콩섬과 카오룽(구룡반도)내에서만 왔다갔다 한다. 왜냐면 대부분 쇼핑과 관광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랜드를 가기 위해서는 공항에서 가까운 란타우섬으로 가야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은 홍콩섬과 카오룽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면된다.
홍콩은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도시인데 현지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하고 찾는다면 구룡반도의 동북쪽에 위치한 싸이쿵(西貢, Sai Kung)을 권한다. 싸이쿵은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에게 더 잘 알려진 지역이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보다는 현지인들이 즐기는 곳이 좀 더 낫지 않을까?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은 홍콩섬 동북쪽의 카오룽쪽인 레이위문(Lei Yue Mun)이 있지만, 이곳은 홍콩섬과 카오룽 시내 중심지에서 가깝고 관광객이 많이 찾아서 비싸거나 자칫 잘못하면 바가지를 쓸 수 있다.
싸이쿵 지역은 윈드서핑이나 다이빙 등 해양스포츠를 즐기거나 해산물을 즐길수 있는 지역으로 홍콩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지역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화도, 인천지역 서해안이나 소래포구 같은 지역이다.
싸이쿵을 가는 방법중에 가장 빠른 방법은 MTR 권통선(녹색라인)의 동쪽에 위치한 초이홍(彩虹 Choi Hong)역에서 내려 가는 방법이 제일 좋다. 몽콕역에서 권통(꾼통)방향으로 7번째인 초이홍역에 내려 C2 출구로 나가서 미니버스 1A를 타거나 92번 버스를 타면 된다. 미니버스의 종점이 싸이쿵이다. 초이홍역에서 약 20분 정도 가면 싸이쿵이 나온다.
여러명이 간다면 차라리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요금은 HK$ 150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싸이쿵 터미널이 종점이다. 녹색지붕을 한 미니버스들이 연신 들어오고 나간다. 그만큼 여러지역으로 운행을 다닌다고 보면된다. 내 경우는 시내가 아니라 싸이쿵의 남쪽 청수만 바닷가에 있는 홍콩과기대(HKUST, 포다이)에서 출발해서 왔는데 미니버스로 약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버스종점에서 바닷가쪽으로 걸어가면 우측으로 인도가 넓게 포장되어 있는 지역이 보인다. 종점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보면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보이고 상가와 주택이 형성되어 있는 사이쿵 구시가지다. 구시가지에서 바닷가 방향이 해산물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거리다.
걸어가다보면 바닷가에 정박해 있는 많은 배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평상시 낮엔 배와 관광객들 사이에 해산물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입구쪽보다는 항구 안쪽에서 활발하게 거래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해산물을 사서 근처 식당에서 요리를 해 먹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홍콩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배에서 직접 해산물을 구입하여 식당에서 요리를 부탁하기는 조금 힘들 것이다. 그냥 편하게 해산물 판매와 요리를 겸하는 식당을 찾는 것이 훨씬 낫다.
사진에서처럼 대형 어족관이나 가판대에 해산물을 전시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본격적인 해산물 식당들이 밀집한 곳은 우리나라 절의 일주문같이 생긴 문을 통과하면서 부터다. '해선가(海鮮街, 해산물 거리)'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미 종점에서부터 이곳으로 걸어들어오면 중간에 소위 말하는 호객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대부분 영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전단지 한장과 함께 광동어로 뭐라고 뭐라고 할 것이다. 요리 그림과 가격이 나와 있기 때문에 광동어로 얘기해도 통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외국인들에게도 호객행위를 한다.
우리 일행이 찾은 날은 평일(목요일)에 비가 내리고 있었고 약간 이른 시간 (6시 30분쯤)이어서 한산했다. 7시가 조금 넘자 현지인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싸이쿵 해산물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가게는 해산물 거리 제일 입구에 있는 첸키(全記, Chuen) 레스토랑이라는 곳이다. 첸키 레스토랑은 장사가 잘 되서 본점 외에 안쪽으로 분점도 가지고 있다. 첸키 레스토랑 본점에 가보면 유명 스타들이 이 레스토랑을 찾았다는 자랑을 하기 위해 스타들이 찍은 사진들을 늘어놨다.
우리는 더 안쪽에 있는 첸키 레스토랑의 분점을 찾았다.
레스토랑 안에는 이미 손님들이 많았고, 또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산물을 즐기고 싶어서 야외에 설치된 테이블에 앉았다. 자리를 잡고는 먹을 해산물을 골랐다.
우리나라 같으면 주로 생선 종류를 고른 뒤에 회를 만들어 달라고 하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생선이나 어류를 날것으로 먹지 않는다. 따라서 생선보다는 조개류나 바닷가재, 새우, 게 같은 갑각류 종류들이 더 많다.
게는 서로에게 엉켜서 다치지 않도록 끈같은 것으로 다리를 묶어놨다. 아예 버둥거리지도 못하도록 해놨다. 그렇지만, 모두 살아있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해산물은 자연산이다.
전복도 아주 싱싱하다. 모두 자연산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저 정도 크기에 자연산 한마리라면 2만원 가까이 한다. 함께 간 우리 일행은 각자 한마리씩 골랐다.
조개류도 많았다. 아주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보통 요리로 많이 해먹는 것들 위주로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소라같은 것도 있고 작은 조개와 큰 조개들도 보인다.
큰 게와 랍스터도 보인다. 그리고 아래쪽엔 엄청나게 큰 랍스터도 보인다. 가장 위쪽 어항에 비로소 생선들이 보이는데, 먹는 물고기가 아니라 구경하는 수족관 물고기처럼 보였다. 저런 생선들은 대부분 찜을 해서 먹는다고 한다.
책에서 화석으로나 발견될법한 삼엽충 같은 어류도 있었는데, 가재라고 한다. 뒤집으면 가재처럼 다리가 달려있다. 도저히 이상하게 보여서 사지는 않았다.
저건 TV에서 본 적이 있는 곰치다. 역시 관상용 수족관에서나 볼 수 있던 물고기였는데 여기서는 즐겨 먹는 어류라고 한다.
이건 갯가재(라이리우하)라고 하는데, 소금과 후추를 뿌려 튀겨 먹는다고 한다. 작은 것이 더 맛있다고 한다. 역시 이상하게 생겨서 패스.
갑오징어도 판매하고 있었다. 처음엔 갑오징어인지도 모르고 계속 어떤 생선일까 궁금해 하다가 잠시후 짧게 나온 다리들을 보고서야 갑오징어라는 사실을 알았다.
키조개들은 세워서 묶어놨다. 한묶음식해서 파는 것으로 보였다. 물 위로 나온 키조개 살들이 아주 싱싱해 보인다.
한쪽켠에는 반마리씩 파는 해산물도 보였다. 가재와 갑오징어를 반으로 잘라 두었다. 반마리씩 파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거의 정확하게 반토막을 내놨다.
굴은 우리나라처럼 기다란 비닐봉지에 물과 함께 넣어 팔고 있었다. 흡사 생굴을 파는 우리나라 수산시장에서 가져온듯한 모습이었다. 홍콩사람들은 저렇게 된 것을 가져가도 삶아 먹거나 튀겨 먹을 것이 분명했다.
손님이 먹고 싶은 해산물을 고르면 종업원이 저렇게 골라내서 무게도 달아주고 가격도 알려준다. 몇 가지를 더 사면 조개류 같은 것을 서비스로 넣어주기도 한다. 혹시 모르니 가격을 흥정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손님이 고른 해산물들은 따로 골라낸 다음 비닐봉투에 넣어 잠시 한쪽에 놔둔다. 잠시 후에 손님이 요리 방법을 결정한 후에야 비로소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하게 된다.
자리에 앉으면 물수건과 차를 가지고 온다. 차주전자에는 자스민차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컵과 그릇들을 가져오고 안주용 땅콩과 양념인 것으로 보이는 종지가 같이 나왔다.
이렇게 생긴 그릇도 함께 나오는데, 이건 가져온 그릇들을 자스민차로 살짝 헹궈내고 그 물을 버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튀김 어류 등을 만지고 나서 살짝 손을 씻어도 되는 그릇이다.
멋 모르고 물을 부어서 마시면 현지인들의 웃음을 살 수 있다. 모르면 처음부터 물어보면 된다. 참고로 레스토랑에는 영어가 되는 종업원들이 있다.
야외 테이블엔 미리 세팅을 해놨다. 그래서 바닷바람에 날려서 먼지나 이물질이 그릇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위에 설명한 것처럼 물로 씻어내야 위생적이다.
테이블 세팅과 함께 종업원이 아까 고른 해산물의 요리 방법을 물으러 왔다. 손님이 원하는대로 요리를 해주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원하는 방법이 있으면 부탁하고 잘 모르겠으면 일반적으로 해달라고 하면 알아서 해준다.
한국인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한국인이라고 하면서 알아서 해달라고 하는 것도 괜찮다. 종업원은 옆에서 주문을 듣고는 종이 위에 요리당 한장씩 요리방법을 적는다. 그렇게 주문이 끝나면 아까 잠시 보관한 해산물과 요리 방법이 주방에 전달된다.
20여분 뒤에 요리가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의 경우 제일 먼저 나온 것이 새우튀김이었는데, 위에 올라가 있는 파란 채소가 향채다. 향채는 냄새가 강하므로 치우고 새우껍질을 까서 먹었다. 고소하고 짭짤한 맛과 함께 술안주로 딱이었다. 그래서 맥주를 주문했다.
가장 기대가 컸던 전복찜 요리였다. 자연산 전복을 이렇게 쪄서 먹어본 적도 처음이지만 찐 전복이 어떻게 나올까 무척 궁금했었다. 찐 전복과 아래 약간의 국물이 딸린 양념이 나왔는데, 찍어먹으면 맛있다고 해서 찍어 먹어보았다.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다.
너무나도 감동적이어서 접사를 찍지 않을 수 없었다. 구수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났다. 같이 나온 접시의 양념을 살짝 찍어 먹으니 우리 입맛에 딱 맞았다.
가리비찜도 아주 맛있었다. 가리비살을 썰고 마늘을 갈아 얹어 간장과 기름을 넣어 찐 요리다. 당면과 약간의 썰어 넣은 채소와 함께 먹었다. 같이 나온 간장 국물을 가리비에 부어 먹으라고 했다. 정말 맛있었다.
맛을 기억하기 위해 또 접사를 시도했다. 접시의 간장 국물을 떠서 부었다. 마늘 다진 것과 파를 썰어넣은 것 같은 채소, 그리고 당면과 함께 가리비살이 숨어 있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조개 볶음 요리가 나왔다. 약간 달짝 지근하면서도 조개의 맛이 잘 우러났다. 역시 간장과 채소가 함께 들어가 있어서 먹기가 좋았다.
마지막 메인 요리가 나왔다. 바로 '푸젠 게' 라는 것인데 내장이 아주 맛있어서 현지인들도 즐겨찾는 요리라고 한다. 다리도 실해서 게살이 두툼하네 나왔다. 삶아먹어는 봤지만, 이렇게 튀겨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비록 게살은 많지 않았지만, 맛있었다. 아래 떨어진 튀김가루는 얼마나 바싹 튀겼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온통 기름이다. 이러니 차를 안마실 수가 없다.
우리로 말하면 김치같은 것인데, 청경채를 아예 기름으로 범벅을 했다. 청경채의 깔끔한 맛은 나지만 기름이 어우러져서 왠지 그렇게 손이 가지는 않았다. 다만 튀김요리와 함께 먹을 때 조금 도움이 되었다.
식사는 순서를 맞춰서 주문한 것들을 계속 가져온다. 그리고, 음료수나 술이 있을 경우 잔이 조금만 비워지면 종업원이 와서 따른다. 그게 이쪽 지방 예의라고 한다. 아예 쉴틈을 주지 않고 계속 술잔이 조금이라도 비면 가득 채워준다. 덕분에 칭따오 맥주를 두 병씩이나 다 마셨다.
종업원을 부를 땐 이 한마디만 하면 된다. '음고이~~~', 성조가 있기 때문에 '음'을 높이고 '고이~~~'는 낮추면서 부르면 종업원이 온다. 우리나라로 치면 '여기요~~~'라며 종업원을 부르는 말이다.
약 40여분간 이야기도 나누고 요리도 즐기면서 재밌고 맛있는 시간을 보냈다. 배부를 정도로 실컷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돈으로 약 15만원 정도가 계산되었다.
환율이 오르기 전이었으면 12만원 정도였을 것인데, 오른 환율이 원망스러웠다. 3명이 가서 먹었으니 대략 인당 5만원 정도인데, 아깝지 않았다. 먼 곳을 방문했다고 친한 친구가 사준 것이어서 감사히 먹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정류장 가까이에 첸키 레스토랑 본점이 있다. 해산물 골목 제일 첫 집이 바로 유명한 첸키 레스토랑 본점이다. 1층이 레스토랑이고 2층부터는 주거용으로 보였다. 환한 불빛 아래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근처 홍기(홍키) 레스토랑도 자매점이라고 한다. 결국 첸키는 이 동네 유명한 해산물 체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해는 이미 저물어, 이곳 저곳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다양한 방면으로 출발하는 미니버스들도 많이 보였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홍콩현지인들과 섞여서 12번 미니버스를 타고 홍콩과기대로 돌아갔다.
만일 홍콩에 여행가서 해산물 요리가 먹고 싶다면 레이유문도 괜찮겠지만, 싸이쿵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아무래도 관광지 느낌이 덜 나고 홍콩인들을 좀 더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으며, 값싸고 신선한 해산물을 바로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알려진 첸키 레스토랑의 경우 바가지 쓸 일은 없다는 큰 장점도 있다.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동일한 요금으로 해산물을 제공하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맥주도 한 잔 했다면 종점에서 택시를 타고 초이홍역이나 카오룽 중심부로 가도 요금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몇 명이 함께 간다면 택시가 훨씬 나을 것이다. 시내 중심부까지 HK$ 150이면 충분할 것이다.
홍콩 갈 일이 있으면 싸이쿵 해산물거리는 한 번쯤 찾아볼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