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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오랫만에 LP판을 보았다. 부모님댁 오디오장안에 보관중인 LP판을 보게 되었다. 부모님댁에 있는 LP판은 모두 내가 모아둔 것들이었다. 본격적으로 LP판을 구입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3년전이다.
어릴적부터 조부모님과 삼촌과 함께 살면서 LP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흔히 그 당시에는 '전축'이라고 부르며 검은색 원반을 돌아가는 테이블 위에 놓으면 음악이 나오던 신기한 물건이었다.
삼촌이 LP판을 소중하게 다루는 것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늘 LP판은 중요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씩 전축 바늘이 고장나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도, LP판이 튀어 의도하지 않은 상태로 구간반복이 되는 것도 알고 있었다.
LP판이 Long Playing에서 유래한 것은 고등학교 때 처음 알게 되었다. 일명 도너츠판이라고도 불렸던 LP판엔 굵은 선(실은 홈)으로 음반의 트랙구분이라는 것. 그 위로 빙상선수가 묘기를 부리듯 전축바늘이 일정한 속도로 홈과 마찰하면서 소리가 나는 마법상자였다.
중학생때 친한 친구집에 멋진 전축이 하나 있었다. 이 친구는 어른들이나 가질 수 있었던 전축을 자신의 것으로 가진 친구였다. 친구집에 놀러가면 자신이 용돈을 모아서 산 LP판을 보여주며 노래를 들려주던 것이 참으로 부러웠다.
LP판에서 당시 유행이던 카세트테이프로 녹음을 해서 편집 아닌 편집 테이프를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더블데크가 있는 집이면 카세트에서 카세트로 복사를 했고, LP판이 있으면 카세트로 바로 녹음이 가능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당시 즐겨듣던 노래를 부른 가수들의 음반구입에 관심이 많아졌다. 이상하게도 카세트테이프보다는 LP판이 더 고상하게 보였던 내게 LP판은 용돈을 모으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이선희, 이문세, 유재하, 유열 같은 국내 가수부터 Wham, Beatles, Simon & Garfunkel 등 유명 팝가수의 음반까지 사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LP 한장에 3,000원 정도했다. 1987년, 1988년에는 큰 돈이었다.
LP를 전축에 올릴 때에는 부드러운 흰장갑을 끼고 다루었던 기억이 난다. 행여나 스크레치가 날까 조심스럽게 앨범자켓과 보호비닐에서 빼서 전축에 얹었었다. 먼지라도 묻을까 흰장갑으로 닦아내기도 했다. 작은 티끌에도 바늘이 튀기 때문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던 시절부터 나는 전축으로부터 멀어졌다. LP 레코드 플레이어가 크기도 해서 아무데서나 음악을 들을 수 없었고, 또 당시엔 카세트 테이프가 대유행이었다. 소니의 워크맨이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국내의 삼성전자와 금성사(LG전자)의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가 지금의 MP3P처럼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LP보다 음질이 뛰어나고 곡의 보관도 용이하던 카세트의 시절로 접어들면서 LP판을 구입하는 일은 중단되었다. 레코드 가게에 가도 LP판 보다는 카세트 테이프를 구입했고, CD 음반이라는 디지털 음반이 눈에 띄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대학을 마치고 사회로 나왔을때부터는 예전에 즐겨듣던 음악들이 거의 CD 판매가 주류가 되고 있었다. 카세트 테이프가 LP판처럼 홀대를 받는 시절이었다.
LP판은 내가 태어나기전부터 개인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중요한 미디어였다. 다방에서 DJ가 음반을 고르던 바로 그 미디어가 LP판이었다. 긴 세월동안 사랑받았던 LP는 카세트 테이프와 CD의 등장으로 급속히 몰락했고, 카세트 테이프와 CD 역시 MP3의 등장에 몰락을 거듭했다. 불과 20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먼지쌓인 LP판을 보며 문득 떠 올랐던 옛추억들은 모두 음악과 함께 있었던것 같다. 고등학생때의 풋풋한 추억들이 LP판과 함께 했다면, 이제는 iPod에 담긴 MP3가 그 옛추억의 노래들을 대신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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