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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강릉시 연곡면에 걸친 백두대간의 중심축에 있는 산이다. 오대산은 크게 진부면 지역의 오대산 지구와 연곡면의 소금강 지구로 나눈다.
오대산의 주봉은 최고봉인 비로봉(1,563m), 동대산, 두로봉, 상왕봉, 호령봉의 다섯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서 있으며, 동쪽의 노인봉 아래로 소금강이 펼쳐져 있다.
오대산이란 명칭은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중국의 오대산과 닮았다고 붙인 이름이며, 노인봉에서 동쪽으로 펼쳐진 기암들의 모습이 금강산을 닮았다고 소금강이라 이름 붙였다 한다.
오대산(五臺山)은 불교와 깊은 관계가 있는 곳으로 동대, 서대, 남대, 북대, 중대로 나뉘어진 오대(五臺)에 1만의 문수보살이 머무르는 산이라고 여겼다. 자장율사가 중대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지어 한국 문수신앙의 근원지가 되었다.
오대산 상원사는 월정사의 말사인데, 중대 적멸보궁 가까이에 세워진 절이다. 상원사를 가기 위해서는 진부IC를 내려서 오대산 방향으로 차를 몰아야 한다. 가다보면 주문진으로 향하는 진고개길과 월정사길로 나누어지는데 월정사를 거쳐야 갈 수 있다.
월정사입구에는 차량과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는데, 어른 1인당 2,500원과 승용차 주차비 5천원을 받는다. 아이들은 1천원으로 입장료가 책정되어 있었으나 매표소에서 거두지는 않고 있었다. 한번의 매표로 월정사뿐만 아니라 상원사와 비로봉으로 가는 등산로도 갈 수 있다.
매표소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주차장이 보이고 팔각구층석탑으로 유명한 큰 절 월정사가 나타난다. 월정사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남한강의 발원이 되는 오대천으로 근래 며칠간 내린 비로 수량이 풍부했다.
발원지를 계속 따라 올라가면 상원사입구까지 갈 수 있다. 상원사는 승용차 또는 공공버스를 타지 않으면 들어가기 힘들다. 월정사에서 상원사입구까지 약 9Km의 비포장 도로를 가야 하기 때문에 이십리가 조금 넘는 거리를 걸어서 가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승용차를 타더라도 월정사입구에서 상원사입구까지 비포장 도로는 힘든 코스다.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는 교행하는 차들과 비켜가면서 시속 20Km/h의 속도로 약 20~30여분간 달려야 한다.
상원사를 찾는 사람도 많긴 하지만 상원사에서 출발하는 등산코스때문에 단체 등산객들이 많다. 이들이 타고 오는 관광버스도 상원사입구까지 많이 오가기 때문에 도로 중간에서 버스들을 많이 만난다.
중간 중간 늘어난 계곡물과 바위들이 보이면 이내 바로 차를 멈추고 내려가 계곡물에 손발이라도 담그고 싶지만, 남한강의 발원지인 이곳은 국립공원지역이어서 행락행위(취사, 야영, 수영)를 금지하고 있다. 계곡에 내려가거나 하는 행동을 할 수 없으며, 중간에 차를 세워도 안된다고 써놨다.
한참을 달리면 상원사 가기 얼마전쯤에 '동피골야영장'이라는 곳이 있다. 야영장치고는 상당히 깊숙한 계곡에 위치해 있는데, 공기가 좋고 산세가 좋은 곳이어서 야영하기로도 좋은 장소로 보인다. 주차시설과 숙박시설, 야영장 자리가 보였다.
월정사에서 한참을 비포장 도로를 달리면 관대걸이 삼거리가 나온다. 탐방객방문소와 너른 주차장이 보이고 여기가 상원사라고 하는 큰 표지석이 보인다. 등산을 위해 도착한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이 상원사를 지나 중대를 지나 비로봉을 올라가는 코스의 시작이어서 그런지 주말에 전국에서 온 등산객들로 북적였다.
주차장은 소형차와 버스의 대형차 주차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토요일 낮시간에 속속 버스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소형차들은 비포장 도로 주행의 어려움 때문인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SUV 차량들이 많이 보였다.
관대걸이 삼거리 탐방객방문소 옆으로는 큰 전나무가 서있고, 관광객들이 주변에 앉아서 쉬도록 의자들이 놓여져 있다. 큰 나무 아래서 더위를 피할 수 있을뿐더러, 산속의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어서 시름을 놓고 쉬고 있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나무 그늘 주변엔 이곳 관대걸이의 사연을 적어놓은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관대걸이에 얽힌 사연들이 잘 설명되어 있으며, 상원사에 대한 이야기, 오대산 자연에 관한 이야기 등이 잘 설명되어 있다.
상원사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이처럼 큰 바윗덩어리에 '오대산 상원사'라는 글씨와 '적멸보궁, 문수성지'라는 직인형태의 황금색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재밌는 사실은 이 표지석에 얽힌 이야기다. 이 바위는 절근처의 하천정비 공사중에 발견된 자연석으로 절입구에 두었다가 한차례 도난을 당한 적이 있으며, 되찾은 후에 이렇게 표지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표지석 글씨의 주인공은 노무현 대통령 비석 글자를 새긴, 성공회대학 석좌교수인 신영복 교수다. 그는 소주 상표 '처음처럼'의 글자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오대산 상원사라는 글자만을 새겨넣기엔 너무나 큰 표지석이어서 적멸보궁이 있는 상원사이며, 문수도량이라는 표시의 문수성지를 넣어 달라는 스님들의 요청에 글자색이 검은색과 황금색으로 구분했으며, 모든 글자를 넣기 위해 인장형태의 글씨가 들어갔다는 사연이다.
표지석 반대편 절의 입구에는 관대걸이라는 것이 서있다. 관대걸이는 조선 7대 세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세조가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서 옷을 걸어둔 사연이 있어서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세조는 피부병인 욕창을 앓고 있었는데, 이곳 오대산의 상원사 앞에서 목욕을 하고서 나았다는 설이 있다. 이곳은 세조의 등을 씻어준 문수동자와의 인연으로 유명한데, 목욕중에 지나가던 동자를 불러 등을 씻어달라고 요청한 뒤에 '어디가서 왕의 옥체를 보았다는 소리를 하지 말거라'라고 부탁하자, 문수동자가 '어디가서 문수동자를 친견하였다고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뒤에 욕창이 씻은듯이 낫자 세조는 문수동자상을 그리도록 했고, 세조의 딸인 의숙공주는 세조가 보았다는 문수동자상을 조각하여 절에 봉안했다고 한다. 문수동자상은 지금도 상원사 법당에 모셔져 있다.
상원사는 6.25 전쟁중에도 피해를 입지 않은 절로 유명하다. 원래 절이름이 상원사가 아니었고 신라성덕왕때 지어진 '진여원'이라는 이름이었다가 고려말에 절이 없어지고, 진여원 위에 지었다고 상원사라 이름붙여졌다고 한다. 진여원이 있던 자리는 입구에 올라가다보면 한쪽에 보이는 부도탑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바로 위쪽에 상원사가 들어서 있다.
그러나 절은 영산각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이 1946년 화재로 인해 전소되었다가 1947년에 다시 중창된 것이 지금의 상원사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사찰의 원래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상원사는 현재 누각과 사천왕문 사이의 도로와 가람 공사가 진행중이다. 따라서 원래 입구가 아닌 사찰 왼쪽의 돌계단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서 오른쪽 누각 아래를 통과하면 절마당을 만날 수 있다.
가람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 건물은 문수전으로 문수동자상과 불상을 모신 건물이다. 근처 중대 적멸보궁이 있기에 대웅전이 따로 없다는 것도 상원사의 특징이다. 대웅전에 해당하는 건물이 바로 문수전이다.
마침 도착했을때 문수전에서는 스님의 설법강의가 있었다. 마이크를 통해 울려퍼지는 스님의 말씀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법당에서 이를 경청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자뭇 진지해 보였다.
불상에 대해 카메라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서 문수전안의 문수동자상과 불상은 촬영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문밖 멀리서도 건물안의 문수동자상은 보였다.
문수전앞에는 사연이 있는 조각상이 있는데, 계단 왼쪽에 한쌍의 고양이로 보이는 석상이 그것이다. 원래 가람 입구 양쪽에 있던 것인데 한곳에 모셔놨다고 한다. 즉, 같은 고양이 한마리다.
고양이 석상과 관련된 전해 내려져 오는 상원사만의 이야기가 있다. 세조가 자신의 욕창을 나은 사연으로 그 이듬해에 상원사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예불을 드리려고 문수전을 들어가려는 순간 고양이 한마리가 세조의 곤룡포 자락을 물고 법당안으로 못들어가게 했다는 것이다. 이를 이상히 여긴 세조는 병사들을 풀어 법당안을 조사하게 했더니 불상밑에 있던 자객 셋이 발각되어 화를 면하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고양이는 사라진 뒤였다.
세조는 이를 기려 고양이를 위해 제사지내라고 강릉에서 가장 기름진 논 5백 섬지기를 절에 하사하였다고 한다. '공양미'라는 말도 '고양미', 즉 '고양이를 위해 바치는 쌀'의 뜻이 바뀐 것이라는 설도 이 이야기때문에 나온 것이다. 고양이 논, 고양이 밭이라는 뜻의 묘전, 묘답이 이때 생긴 말이라고 한다. 고양이가 영물이므로 죽이지 말라는 것도 이때부터 내려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조가 직접 명을 내려 아무도 고양이를 죽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상원사에는 두 개의 유명한 국보가 있는데,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세조와의 인연이 있는 문수동자좌상이고, 나머지 하나는 현존하는 제일 오래된 범종인 국보 제36호 상원사동종이다. 한눈에봐도 상당히 오래된 동종임을 알 수 있는데, 가까이서 신라시대 고유의 비천상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경주의 성덕대왕신종보다 더 오래된 종이다.
문수전 오른쪽 뒷편엔 1946년 화재 때도 불길을 모면한 영산전이라는 건물이 있다. 영산전에는 석가 삼존상과 심육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영산전이라고 부른다.
영산전앞에는 기원을 알 수 없는 다층석탑이 하나 있다. 이 탑은 탑신 전체에 여러가지 무늬와 불상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아름다운 탑이다. 그러나 탑 자체가 많이 훼손되어 언제 만들어졌으며 몇 층인지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공사로 인해 옮겨놨던 것을 다시 옮긴 것인데, 탑 사이사이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끼워둔 동전이 수북하다.
상원사에는 흔히 우리가 절밥이라고 하는 공양을 할 수 있는 공양실이 있다. 아마도 비로봉을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 있는 사찰이어서 허기진 등산객들을 위한 배려차원에서 쉽게 접근하여 공양(식사)을 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 같다.
식당안에는 여러개의 식탁이 놓여져 있고, 밥과 국, 간단한 반찬을 담을 수 있도록 해놨다. 그릇은 바루 대신에 식판이 한쪽에 정리되어 있다. 상원사를 찾은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밥과 국을 떠서 공양하고는 한쪽에서 설겆이까지 할 수 있도록 해놨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1시가 가까이 된 시간이었는데, 밥과 반찬은 있었지만 국이 없어서 공양을 포기했다. 마지막 방문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식판을 씻고 있었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쪽에는 인절미로 보이는 떡이 있었는데 오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 것으로 보였다.
식당밖에는 산을 오르기전에 시원을 물을 마실 수 있는 일원각이 있다.
등산객들이 많이 들러서 그런지 일원각 옆에는 찻집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건물도 들어서 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상원사를 찾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보려했던 적멸보궁은 결국 가지 못했다. 상원사에서 중대쪽으로 조금 더 가야 하는데, 단체 등산객들이 많았고, 시간이 촉박하여 들르지 못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국내엔 다섯군데 밖에 없다. 적멸보궁은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어서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약 30분만에 상원사 전체를 둘러보았다. 저 아래에 월정사라는 더 큰 절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위해 도착하는 곳이 상원사 입구다. 상원사는 신도나 절을 찾으러 온 관광객이 아닌 등산객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예전 학교 다닐때 상원사에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 이야기중에 6.25 전쟁때 상원사가 불탈뻔한 일화를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 국군이 산중의 사찰이 북한군의 은신처가 될 것을 우려하여 오대산에 있는 절들을 모두 태우고 있던 중이었는데, 국군이 월정사를 태우고 상원사를 태우러 왔었다. 이때 주지스님이 법당에 앉아 부처님을 지켜야 하니 자신과 함께 태우라고 하자, 이에 감동받고 불태우지 않았다고 한다.
세조와 얽힌 이야기, 전쟁중 이야기, 그리고 입구 표지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오대산 상원사는 등산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찾아가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가람이다.
월정사로 편안하게 차로 이동했다가 비포장 도로를 30여분 달려서 가야 한다는 말에 차를 돌려야 하고, 한겨울에는 차로 들어가기 힘들다 하니 앞으로 내가 살면서 다시 상원사에 갈 수 있는 날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연 많은 곳들이 많이 있겠지만 오대산 상원사처럼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는 곳은 드문 것 같다. 상원사의 본사인 월정사 마당에 덩그러니 서있는 팔각구층석탑은 원본은 따로 보관하고 있고 현재 서있는 탑이 진짜탑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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