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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학창시절 내게 컴퓨터라는 용어는 아주 낯설었다. 80년대 초반 초등학생(당시 국민학교) 때에는 컴퓨터라는 것은 연구소 같은 곳에만 있으며 크기도 크고 아주 비싸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만화영화속에 나오는 컴퓨터는 거대한 화면과 비행기 조종실에 있는 버튼같은 것들이 나열되어 있으며, 조종간 같은 것이 달려있는 그런 장치라고 생각했다. 실제 컴퓨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상상속에서만 그려지던 모습이 전부였다. 사실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기억하기론 당시엔 '컴퓨터'라고 하지도 않고, '콤퓨타'라고 불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촌스러운 이름이었지만, 어쨋든 컴퓨터는 빠른 계산을 위해 사용한다는 정도로만 인지되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에 동네 친구 한 명이 집에 컴퓨터 게임기가 생겼다고 자랑했었다. 그 유명한 MSX라는 컴퓨터였는데, 카세트테이프로 데이터를 읽고 쓰는 방식의 개인용 컴퓨터였다.
생긴 모습이 마치 전동타자기처럼 생긴 키보드와 본체가 함께 구성되어 있는 것이었다. 별도의 저장장치인 테이프를 읽고 쓰는 전용데크를 연결해서 썼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않지만 대우에서 나온 기종이었다.(찾아보니 IQ 시리즈 모델인 것으로 기억된다)
키보드가 내장된 본체에 TV를 연결하여 모니터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는데, 동작시키면 TV 화면에 그림과 글자가 뜨는 컴퓨터였다. 그 컴퓨터를 가진 친구가 마법같은 영어 몇단어를 치자 그림도 그려져 나오고 게임같은 것이 실행되었다. 당시 내게는 상당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BASIC이라는 인터프리터 언어로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친구는 내게 MSX 컴퓨터로 게임을 만들 수도 있다고 자랑을 했다. 그래서 컴퓨터 언어를 공부하고 있노라고 이야기 했는데, 친구가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나중에 그 친구는 성인이 되어서도 컴퓨터와 관련되어 아주 Geek한 생활을 했었다. CD-ROM 드라이브를 알게 된 것도 그 친구를 통해서였다. 각종 게임을 만들기도 했고, 프로그램으로 매장 업무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판매도 했었다.
여튼 고등학생 시절엔 컴퓨터라는 것이 아주 비싸고, 대단한 기계이지만 게임을 만들고 즐길 수 있는 기계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아직도 당시의 MSX는 게임기로만 기억이 된다.
그렇게 알게 된 컴퓨터의 세계는 고3이 되면서 큰 변화가 있었다. 대학입시를 한창 준비하던 시절이었는데, x86 계열 개인용 컴퓨터가 막 선을 보였던 시기였다. 지금은 XT라고 하면 알 수 있는 개인용 IBM 퍼스널 컴퓨터가 막 일반인들에게 판매가 되던 시절이었다.
당시에 비로소 컴퓨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고, 컴퓨터를 통해 여러가지를 할 수 있으며, 공학도라면 반드시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대학 진학하면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그런 관심속에 부모님께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면 컴퓨터를 사달라는 약속을 어렵게 받아냈다. 철없던 학창시절에 고집을 부려서 비싼 컴퓨터를 사달라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는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내가 철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때 PC를 사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과의 약속은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대학 합격소식과 함께 부모님께서 컴퓨터를 사주기로 했었다. 당시에 삼성전자와 금성사(現 LG전자)에서 보급형 XT 컴퓨터가 생산되고 있었다. 여러 조건들을 알아보다가 결국 금성사의 PC를 선택했다.
합격한 학과가 전자공학이다보니 전산과 깊은 관계가 있었고, 반드시 배워야할 기술로서 컴퓨터 사용법이 알려지던 시기여서 넉넉치 않던 집안형편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컴퓨터를 사주셨다.
'금성 마이티 88(GMC-6510)' 이라는 IBM PC였다.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만 2개가 달린 보급형 컴퓨터였다. 당시 하드디스크 달린 컴퓨터는 아주 비싸서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금도 그 컴퓨터의 가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10만원이었다. 1989년에 110만원이었으니...
당시 PC를 구입할때 함께 딸려온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MS-DOS가 설치되어 있었고, 별도의 응용 프로그램으로 GW-BASIC이 포함되어 있었다. 두꺼운 매뉴얼 바인더 2권과 플로피 디스크 몇 장이 전부였다.
부팅 디스켓을 A드라이브에 넣고 전원을 켜면 드라이브 헤드가 고유의 디스크 읽는 소리를 내며 잠시 후에 'A:\>'라는 프람프터가 떴다. 모니터는 지금은 병원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녹색글자의 모노크롬 모니터였다.
부팅 디스켓을 A드라이브에 넣고 전원을 켜면 드라이브 헤드가 고유의 디스크 읽는 소리를 내며 잠시 후에 'A:\>'라는 프람프터가 떴다. 모니터는 지금은 병원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녹색글자의 모노크롬 모니터였다.
제일 먼저 배운 명령어는 'dir'이었다. 'directory'라는 뜻의 이 명령어는 그 이후로 엄청나게 사용한 명령어였다. QWERTY 자판을 처음 만진 때가 바로 그때였고, 현재의 내가 있도록 만든 계기가 바로 그 컴퓨터였다.
최초로 배운 컴퓨터 언어(랭귀지)가 GW-BASIC이었다. 당시 시내에 있던 학원을 다니며 배웠는데, 수강생이 한 반에 5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로 PC는 도입초기였던 시절이다.
학원을 다니면서 DOS용 프로그램들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학원생과 강사들이 서로 PC통신을 통해 구한 프로그램들을 복사해서 사용했다. 게임이 가장 일반적이었고, 보석글이라는 삼보에서 만든 워드프로세서를 처음 만났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임이 하나 있다. CGA모드를 위해 SimCGA 프로그램을 돌린 후에 실행했던 'Leisure Suit Larry'라는 시에라의 어드벤처 게임이었는데, 플로피를 바꾸어 가면서 스테이지를 공략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임이 하나 있다. CGA모드를 위해 SimCGA 프로그램을 돌린 후에 실행했던 'Leisure Suit Larry'라는 시에라의 어드벤처 게임이었는데, 플로피를 바꾸어 가면서 스테이지를 공략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엔 타자기가 널리 사용되던 시절이었다. 보석글 덕분에 EPSON에서 만든 LX-80이라는 리본카트리지를 사용하는 도트프린터도 구입했었다. 보석글을 만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아래한글 0.9 베타버전을 PC통신을 통해 받으면서 내 프린터는 인기가 높아졌다. 친구들의 레포트까지 출력해주는 대단한 서비스를 했기 때문이다. 80칼럼 프린터용지를 들고 내게 찾아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1989년 당시는 IBM PC를 통해 하루하루 놀라운 세계를 접하던 시기였다. PC를 가지고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이 전화 모뎀으로 연결하던 PC 통신이었다. HITEL의 전신인 KETEL을 그때 알게 되었다.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던 당시 나는 PC를 가지고 있었고,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아서 컴퓨터 동아리에도 가입했었다. 인터넷을 알게 된 것도 복학후 동아리 후배를 통해서였으니까 여러가지로 당시 구입했던 XT PC의 덕이 컸다.
대학 축제때는 기숙사 친구와 함께 컴퓨터 사주를 봐주고 이를 출력해 주는 서비스도 했었는데,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외에도 학교 수업에서 배운 언어를 익히는 용도로도 사용했었다. 포트란(FORTAN)이라는 과학수식용 언어였는데, 1학년때 이후로는 더이상 배우지도 사용하지도 않았다.
학교 기숙사에 있던 덕분에 공대 전산실습실을 자주 애용했었다. 수업을 마치고 딱히 할 일도 없었고, 레포트도 많지 않아서 PC를 가지고 여러가지 뭔가를 하는 것이 재밌던 시절이었다. 전산실습실에서 알게 된 것이 컴퓨터 바이러스였다.
주말에는 모아둔 프로그램을 가지고 시내 교동상가의 컴퓨터 가게들을 돌아 다닌 적도 많았다. 새로운 주변기기도 구경하고, 디스켓도 구입하고, 프로그램 교환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엔 컴퓨터 가게 주인들은 대학생들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가져오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프로그램 사용법 같은 노하우도 전수하는 일도 많았다. 또 가끔씩 컴퓨터 동아리의 행사 협찬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컴퓨터를 접하면서 흔하게 접하는 프로그래밍을 심도있게 배우지 않았다. 지금도 크게 후회는 하지 않지만, 당시에 제대로 컴퓨터 언어를 배워두었더라면 하는 생각은 가졌다.
대신 OS(DOS나 UNIX)에 대한 공부와 일부 컴퓨터 언어를 배우는 수준에서 만족해야했다. 복학후에 Turbo C라는 컴파일러 프로그램으로 C언어를 배우긴 했지만, 어쩐지 프로그래밍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져서 더 깊이 공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컴퓨터의 구조나 하드웨어 등에 관심이 많았고, 응용프로그램의 실생활 사용 등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나중에 인터넷을 알면서 통신과 네트워크, 웹 등으로 관심이 바뀌었지만, 이상하게도 언어를 배워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옛날 기억을 더듬어 그때를 생각해보니 참 오래된 얘기들이다. 잘 모르는 단어들을 구글링해서 찾으면서 그때의 기억들을 떠 올려봤다. 이젠 인터넷으로도 그때의 장비 사진들을 찾기도 힘들어졌다.
몇년전 집을 정리하다가 버린 당시 GW-BASIC 교재(컴퓨터 구입 당시 받은 책)도 생각이 났고,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도 생각이 났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내게 컴퓨터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이젠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린 컴퓨터다. 컴퓨터를 알고 인터넷을 알게 되면서 내 인생에 많은 변화가 왔던 것은 분명하다.
* 다음엔 인터넷을 만난 그때를 기억해서 정리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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