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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도심 종로에는 유난히 오래되고 맛있는 음식점들이 많이 몰려있다. 대구역과 반월당을 가로지르는 중앙로를 따라가면 길건너의 건물이 확연히 다른 동네가 나온다.

시청방향의 성내1동과 서문시장방향의 성내2동은 현대식과 전통식의 차이라고 느껴질만큼 건물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성내(城內)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도성(都城)내에 위치한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로의 동쪽은 대구백화점을 중심으로 동성로가 남북으로 놓여져 있어 젊은이의 거리가 펼쳐진다. 문화도 젊다. 극장들이 몰려있고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음식점 찻집, 술집, 옷집 등이 몰려있다. 당연히 모든 것이 현대식이다.

반면 서쪽인 성내2동쪽은 약령시장을 중심으로, 떡집골목, 돼지골목, 가구, 금고 등을 다루는 골목과 화교들이 모여사는 동네다. 동성로쪽에 비한다면 여기는 그런대로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지역들이다. 동성로의 시끌함이 이쪽에는 없다. 대신 상대적으로 나이든 사람들이 자주 찾는 지역이다.

이처럼 성내2동 혹은 종로쪽은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 옛 정취들과 옛 음식점들이 많이 남아있다. 여전히 예전 도성의 영광을 누리듯 전통있는 음식점들은 이곳에서 살아남아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약전횟집 또는 약전식당이라고 불리는 음식점도 그런 종로바닥에서 이름 꽤나 날리던 음식점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횟집 또는 식당이라는 꼬리표를 달지않고 '약전'이라는 상호만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아는 사람들은 아는 괜찮은 집으로 살아남았다.

이 집은 무침회로 유명한 집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횟집의 이미지와는 다른 무침회가 일품인 집이며, 고등어 정식을 또 다른 주력메뉴로 가지고 있는 집이기도 하다.

이름 날리던 시절의 약전횟집의 주인은 물러나고 그의 딸이 자리를 옮겨 옛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는 집인데, 특이하게도 80년이나 된 한옥집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길가에서 골목길로 들어가는 입구에 음식점 문이 보인다. '약전'이라는 간판만 덩그러니 있을뿐 무엇을 잘 하는 음식점인지, 행여나 이곳이 음식점이 맞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간판이 입구 양쪽에 있다.

한 글자가 빠진듯한 '모듬'이라는 간판위의 글자는 이미 이곳의 주종목을 알고 찾아간 사람이라면 쉽게 맞출 수 있다. 바로 '회'자가 빠진 것이다. 한때는  '모듬회'와 함께 '정식'이라는 대표 메뉴가 적혀 있었더란다.



음식점 입구처럼 생기지도 않았지만 들어서면 오래된 한옥집 마당이 그대로 나타난다. 마당에는 꽃들과 풀로 덥혀있다. 마치 한옥에 있는 정원처럼 옹기들과 꽃들, 호박덩쿨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옥 그대로를 고쳐 음식점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외형은 한옥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ㄷ'자 모양의 건축물 구조를 그대로 알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약전에는 메뉴판이 따로 없다. '모듬회'와 '돼지고기수육', 점심손님을 위한 '콩국수, 비빔국수, 고등어구이정식' 이렇게 구성되어 있으며, 모듬회와 돼지고기수육은 미리 예약을 해야지만 맛볼 수 있다.

'실내금연, 하루전 예약, 유료주차장 이용' 이런 문구를 보면서 음식점이 손님에게 요구하는 사항들이 그리 유쾌한 것들은 아닐지 모른다. 대체 얼마나 음식을 잘 하길래 이렇게 손님에게 강요하는가 하는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안방에 해당하는 방의 모습이다. 오래된 가구들과 책들이 참 많이 보인다. 주인이 워낙 책을 좋아하다보니 장식용이 아니라 실제 읽은 책들이라 한다. 여러개의 방을 이어놓은듯한 구조에 나무로된 탁자들이 식탁이다.

예약을 하고 간 우리 일행은 입구쪽의 사랑방같은 떨어진 방에 자리를 잡았다. 미리 시원하게 에어컨으로 방을 식혀두었고,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예약된 자리에 수저는 묵직한 은수저 세트가 놓여있었다. 돌솥밥에서 밥을 뜨는 그릇과 시래기 된장국을 담을 국그릇이 한세트씩 놓여져 있었다.


미리 예약해둔 음식들이 나왔다. 약전의 주력 음식은 선어회무침이다. 선어회는 숙성시킨 회로 활어와는 다르게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근래 들어서야 활어회를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예전에는 내륙지방인 이곳 대구에서는 바닷고기를 바로 활어회를 먹기 힘들어 이렇게 숙성시킨 회를 즐겼다고 한다.

회가 나오기전에 회를 무쳐먹을 싱싱한 채소 접시가 나온다. 파와 쑥갓, 깻잎, 양배추, 무가 각각 비벼먹기 좋도록 나온다. 이 채소들은 얼마든 리필이 가능하다. 회맛도 그렇지만 초장과 함께 먹는 채소의 맛도 좋다는 평가들이다.


약전 무침회의 비결인 과일초장이다. 언뜻보기에 된장같기도 하지만 과일을 갈아 넣어 만든 것인데 달콤하기도 하고 맵기도 한 맛이 정말 예술이다. 무침회를 맛있게 만드는 일등공신이 바로 이 초장이다.


회가 나왔다. 이렇게 접시에 3종류의 선어회가 나왔다. 이렇게 한접시에 3만원을 받는다면 평소 회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실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맛을 보면 일단 비싸다는 얘기는 쑥 들어간다.

회는 자세히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숭어와 전어 그리고 광어로 보였다. 회로만 썰어서 숙성시켜서인지 양은 많아 보이지 않지만 3명이 먹을 정도의 양은 된다.



먼저 차려둔 채소를 아래에 깔고 그 위에 회을 올린다음 초장을 얹어 무치면 된다. 먹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채소와 초장을 적절히 조절하여 한 입 넣어보면 왜 이 집의 무침회를 찾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반찬으로 나온 명이나물에 싸서 먹어도 맛있고, 여기에 소주 한잔이 곁들여지면 더할 나위가 없다. 달달한 맛도 나고 약간 매콤한 맛도 나면서 선어회의 쫄깃한 맛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직접 음식을 가져다주는 주인은 종가집 며느리처럼 한복에 쪽머리를 한 분이었다. 중간 중간 재치있게 말솜씨가 빛나는 것을 보니 참 단아한 분처럼 느껴졌다. 책을 많이 읽고 박식한 분이라는 느낌이 와닿는다.

사실 이 음식점을 찾기전에 미리 알아보니 음식연구도 많이 하시고 재료들 자체가 상당히 신선하고, 음식을 깔끔하게 만든다는 평가들이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음식을 내놓기 힘든 것은 나름대로 최상의 음식을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돼지고기수육은 이제까지 먹어본 것중에 최고가 아니었나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구수했다. 잡냄새는 물론이고 살이 아닌 비계부분도 정말 맛 있었다. 다 먹고나서 추가 주문을 하려니 주문한 양만큼만 해놓은 것이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주인이 이런 사람이다.



밑반찬은 그리 많지도, 화려하지 않으면서 소박했다. 집에서 해먹는 것처럼 깔끔하고 담백하다는 평가가 옳을 것이다. 특이하게 내륙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울릉도 특산물인 명이나물이 함께 나온다.


회를 주문하면 마지막엔 시래기된장국과 고등어구이와 함께 돌솥밥이 나온다. 회로 시장기를 모두 달랠 수 없다면 돌솥밥과 숭늉으로 충분히 배부름을 느낄 수 있다.

시래기된장국도 일품이다. 여느 된장국처럼 뻑뻑하지도 않고, 청량고추가 들어있어 칼칼한 맛을 낸다. 오래되지 않은 배추 시래기가 들어있어서 돌솥밥 반찬으로 잘 어울린다.


진짜 돌솥밥이다. 돌솥의 열기는 가게를 나설때까지 유지될 정도로 밥을 따뜻하게 만들고 맛있는 숭늉까지 만들어낸다. 쌀과 잡곡이 섞여 있는데 돌솥때문인지 구수한 맛이 더했다. 정성이 들어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식사를 하다보니 밖에 비오는 것 같아서 문을 열어보았다. 대청마루가 시원하게 보이고 하늘에서는 한두방울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운치도 있고 시원한 느낌도 들었다. 음식점이 아닌 어느 한옥집에 초대받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전은 경신정보과학고 바로 뒤 골목에 있다. 중앙로역에서 내린다면 1번 출구에서 나오면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골목을 따라 주욱 내려오면 센츄럴 관광호텔이 있는 첫번째 사거리를 지나 중간쯤 오른쪽에 간판이 보인다. 길가에 나와 있지 않아서 찾기가 애매할 수도 있으나 바로 옆에 큰 주차장이 있어서 그곳을 찾으면 바로 옆에 있다.

근처에 만두로 유명한 영생덕도 있고, 할배짬뽕으로 유명한 경미반점도 있다. 약전삼계탕도 근처에 있어서 이 동네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경륜있고 맛있는 음식점들로 소문난 곳들이다.

차를 가지고 간다면 노상주차장(30분에 1천원)이나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해야한다. 점심시간에는 1천원만 내면 무리없이 식사를 하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선어회무침이나 돼지고기수육은 반드시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약전은 80년된 한옥집에서 선어회무침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대구도심 중간에 있는 전통을 가진 음식점중의 하나이다. 주인의 깔끔한 음식솜씨를 느낄 수 있으며, 도심에 있지만 답답한 회색빛 콘크리트를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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