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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박태준 작곡, 이은상 작사의 가곡 '동무생각'의 가사다. 학창시절 배운 가곡으로 기억되는 유명한 곡이다. 그러나 이 가곡의 무대인 청라(靑羅) 1언덕이 어딘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소개와 2008년부터 시작된 대구 도심 문화탐방 골목투어로 인해 알려지기 전까지는 동산병원 남쪽 언덕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동무생각'은 경남 마산 출신의 시조시인이었던 이은상 선생과 작곡가 박태준 선생이 경남 창원의 한 한교에서 같이 교사로 재직하다가 이은상 시인이 박태준 선생의 학창시절 연애사를 듣고 즉석해서 가사를 만들었던 곡이다.
계성학원 출신의 박태준 선생은 학창시절 당시 신명여학교(현 신명고) 여학생을 사모하던 기억을 곡으로 만든 것이다. 동무생각은 노랫말의 아름다움과 봄의 서정을 실어 우리 중학생들이 필수로 배우는 가곡으로 남았다. 봄 꽃이 피어나는 학교 교정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가곡이다.
의료원 언덕 동쪽에서 바라본 매일신문사와 계산성당 동산의료원과 의료선교박물관
가곡에 나오는 청라언덕은 신명고가 바로 인접해 있는 동산의료원 언덕이다. 바로 가까운 곳에 서문시장과 계성학원의 법인 학교인 계성 초등학교, 계성 중학교, 계성 고등학교가 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남쪽 방향에 계명대학교 대명동 캠퍼스(옛 계명대학교 캠퍼스)가 있으며, 동쪽으로 계산성당과 약령시가 위치해 있다.
동산의료원은 1899년 미국 개신교 선교사 재단이 설립한 병원이다. 의료 선교로 생긴 병원이며 점점 커져서 오늘의 종합병원으로 이르렀다. 1980년에 계명기독대학(현 계명대학교)와 동산기독병원이 합병하여 오늘의 동산의료원이 되었다.
동산의료원 남쪽은 낮은 구릉형태로 되어있다. 병원이 들어선 바로 뒤쪽에 경북지역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 '제일교회'가 있고 언덕 아래 쪽으로 영남 지역 최초의 고딕 양식 성당인 계산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재밌게도 제일교회 뒤에 중문쪽에 세워진 교회 이름은 '제이교회'다. 이 교회의 역사도 1910년에 시작된 오래된 기독교 교회다. 남문 입구로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 언덕이 청라언덕이며, 옛 선교사들이 살던 서양식 건물 몇 채가 보이는 곳이다.
동산의료원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픈 사람이거나 이들의 가족 혹은 병문안 오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곳에 대해 알고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의료원 남쪽 언덕에 낯선 서양식 주택이 있다는 것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구시가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의지를 밝혀도 그냥 동네 언덕에 있는 주택으로 생각하고 지나칠 뿐이다.
선교사 주택이 있는 동산언덕(청라언덕)은 대구시 중구청에서 만든 골목투어 제 2코스의 출발점으로 근대 문화의 발자취를 찾는 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두 번 해설사와 함께 무료로 제공된다. 관심있는 사람은 대구시 중구청의 골목탐사 프로그램을 찾아보면 된다.
의료선교 박물관과 제일교회, 동산맨션 아파트 사이로 난 90계단이나 신명고 방향의 통로는 학생들이 즐겨 다니는 통학길이다. 이곳을 지나 3.1 운동로라 지정된 구름다리 밑을 지나면 서문시장으로 향하거나 서문시장 지하철역으로 통하는 길이 나온다.
1919년 3.1 운동이 시작된 일주일 후인 3월 8일 대구에서도 계성학원과 신명여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큰장(서문시장)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었다. 신명여학교 학생들이 큰장으로 향하던 솔밭길을 3.1 운동길로 지정해놨다. 지금의 90계단에서 동산의료원 남문 구름다리 아래로 통하는 길이다.
제일교회와 의료선교박물관 사이길 동산맨션 옆으로 난 90계단길
청라언덕엔 세 채의 선교사 집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이들은 먼 고향을 떠나 선교를 위해 부산에 도착했다가 다시 옮겨와 대구에 정착했고, 대구 중심지의 언덕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 동산동 청라언덕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리고 그들 선교사들은 죽어서도 이곳 동산언덕에 묻혔는데, 선교사들의 묘지는 언덕 중심부에 있다.
그들은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지내면서 대구시민들과 함께 이곳을 지켰다. 종교를 전파하는데도 목적이 있었지만, 이들의 앞선 의료 기술은 오늘날 지역 의료사의 기반이 되는데도 몫을 했으며, 그들의 의술은 이제 우리들에 의해 동산의료원에서 베풀어지고 있다. 현재 대구시는 의료관광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선교박물관 옆에는 오래된 사과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초대 병원장이었던 우드브리지 존슨 박사가 심은 사과나무 여러 그루 중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대구가 사과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 나무는 더욱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대구는 일부 지역 2을 제외하고는 사과를 생산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대도시화 되면서 공해로 인하여 전반적인 지역의 기온이 올라간 탓도 있고,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사과 재배 지역이 북쪽으로 이동한 탓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동산의료원의 담장이 사라졌는데, 이는 담장 허물기 행사로 인하여 철거한 것이라고 한다. 이때 정문과 중문에 있던 담장을 옮겨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갖다 두었다고 한다. 개척 선교를 알리는 교회종과 함께 이곳에 전시되고 있다.
선교박물관과 의료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주택의 지붕 모양은 서로 다른데, 선교박물관 건물인 선교사 스위즈 주택은 한옥 기와로 되어 있다. 이는 건물 본체가 서양식 구조인데도 불구하고 기와로 꾸민 것은 지역민들과의 위화감을 해소하기 위한 방책이었다고 한다. 선교사 챔니스 주택인 의료박물관과 선교사 블레어 주택인 교육역사박물관의 지붕은 서양식으로 되어 있다.
이곳 세 박물관은 평일에 일반에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언제든 찾아가면 된다. 또 이곳 청라언덕은 웨딩촬영 장소로도 애용되고 있는데, 이곳 시설에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의료선교박물관에 미리 알려야 한다.
청라언덕 중심부인 챔니스 주택과 블레어 주택 사이에는 동산의료원 옛 현관을 옮겨놨다. 현재 동산의료원 정문 앞 서문시장로 길은 대구지하철 3호선 구간 공사로 인하여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따라서 현관 건물을 떼어 이곳 청라언덕으로 옮겨 놨다고 한다.
청라언덕은 시내 중심부에서 약령시장방향이나 서문시장 방향에서 접근하면 좋다. 굳이 차를 가지고 찾지 말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와서 동산병원으로 걸어들어가면 된다. 선교사 주택이 모여있는 동산언덕에서 산책을 하는 것도 기분 좋은 추억이 된다.
대구에는 유난히 근대사의 흔적을 간직한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중구 일대에는 한때 영남의 중심 도시로서 존재한 대구의 옛 모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산의료원의 의료선교박물관도 그 중의 하나다.
10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대도시 중심부에서 특별한 훼손없이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이 지역의 보수성과도 관계 있겠지만 무엇보다 대구 중심부 지역에 특별히 발전시키거나 개발될 호재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구읍성이 허물어지고 남은 성의 흔적은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경상감영이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근처에 대구 종로가 있고 동성로, 서성로, 북성로, 남성로 등 성을 따라 생긴 길들이 이곳이 한 때 번성하던 읍성이었음을 알려줄 뿐이다.
그리고 옛 읍성의 성안쪽에 있던 오래된 건물들은 나름의 역사를 간직하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약령시와 진골목이 대표적이고 터만 남은 경상감영공원, 서쪽엔 달성공원, 동쪽으로는 2.28 국채보상공원 등이 있다. 성의 동남쪽은 옛 백화점 이름을 딴 반월당이 있고, 북성쪽에는 대구역이 자리잡고 있다.
읍성의 중심에 중구가 있고, 서쪽 달성공원쪽으로는 서구, 반월당 남문쪽으로 남구가, 대구역쪽으로는 북구가 있다. 원래 동구라 지칭해야 하는 남동쪽 방향으로는 수성구가 위치해 있고, 북동쪽 팔공산 방향의 먼 동쪽에 동구가 있다.
대구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대구 읍성을 중심으로 하는 중구 지역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고, 또 그 중의 하나인 동산동의 청라언덕을 빼놓을 수 없다. 따뜻한 봄날이 오면 동무생각의 무대였던 동산의료원 청라언덕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