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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구룡포로 가는 길은 예전에 비하면 더욱 좋아졌다. 포항시내를 통과하지 않고 자동차 전용도로를 통해 구룡포로 바로 갈 수 있다. 대구포항간 고속도로에서 내리자마자 구룡포 감포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통하면 대구에서 구룡포까지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포항국도대체우회도로'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 도로는 작년 12월 23일 개통되어 중간에 막힘없이 구룡포 방향이나 포항IC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예전같았으면 포항시내와 POSCO를 건너는 31번 국도를 타고 갔어야 했다.
숙소에서 바라본 구룡포항
2월 맑은 날의 구룡포항은 나폴리랑 부럽지 않은 미항(美港)이 되어 있었다. 검푸른 바다와 항구에 정박중인 하얀 고기배들, 그리고 항구의 마스코트 갈매기들은 완벽한 겨울항구의 모습을 연출했다.
점심 식사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해결하면서 집에서 출발한지 두 시간의 자동차 여행을 한 아이들은 피곤해 했다. 미리 예약해둔 항구 중간에 우뚝 선 숙소인 자작나무호텔에는 도착하자 마자 짐부터 풀고 침대위에 누웠다. 3년 전 그때도 이곳 자작나무호텔에 묵었었다.
2009/03/29 - 구룡포로 떠난 여행 그리고 자작나무호텔
이름은 자작나무호텔이지만 일반 모텔과 비슷하다. 다만 시설이 조금 더 낫고, 지은지 얼마 안되는 현대식 건물에 위치해 있다는 점,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묵을 수 있는 큰 방이 있다는 점이 여느 일반 모텔과 다른 점이다.
이틀 전 예약 당시에는 바다가 보이는 방향이 아닐거라 했었지만, 일찍 도착한 덕분인지 바닷가가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을 내줬다. 아이 둘과 어른 한 명이 묵기에는 무난한 방이었지만, 4명의 식구는 들어가기 힘든 방이었다.
실내 인테리어에 자작나무를 사용해서 자작자무호텔이라는 이름을 붙였겠지만, 시설은 그리 썩 좋은 상태로 관리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많은 손님들을 거치면서 손봐야할 곳들이 많아 보였는데 그런 노력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물론 잠시 여행을 와서 기분 망칠 수준은 아니었고, 이용에는 문제가 없었다. 조금 더 신경 써서 관리해 주었더라면 감동을 줄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아이들과 함께 한 숙소여서 모텔 특유의 음침함이 없다는 점이 좋았다.
깔끔한 침대(전동 침대)와 간이 탁자, 큰 TV, 인터넷 연결 PC와 냉장고, 전자레인지와 컵소독기가 방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다. IPTV인 QOOK TV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다소 의외였다.
이런 숙박 시설의 PC들은 늘 그렇지만 관리를 위해 모든 설정이 켜질 때마다 원상태로 바뀌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가져온 노트북에 랜케이블을 아예 꽂아서 사용했다. 속도는 좀 느린 편이지만 웹페이지를 보는데는 이상이 없었다. Skype 음성통화가 어려운 수준의 속도가 제공되었다. 실제 통화를 해봤는데 영상통화는 불가능 하고 음성도 중간 중간에 단절되었다.
7층 바다가 전망이 보이는 객실만의 특권은 바로 야외 테라스다. 이렇게 맑고 청명한 하늘이 보이는 날이라면 이곳 테라스는 정말 유용한 곳이 된다. 구룡포 항구가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더욱 멋진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만 우리가 찾았을 때는 겨울 바람이 차가워 테라스에 오래 나가 있지 못했다.
여행을 왔으니 마냥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깝다. 약간 쌀쌀해진 날씨였지만 맑은 날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항구 방파제로 놀러 나가기로 했다. 항구와 도로쪽 사이에는 주차공간이 있었는데, 공원처럼 꾸며졌다. 3년 전에는 못보던 시설이었다.
과메기 문화거리라 이름 붙은 이곳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볼 수 있던 가우디의 유명한 건출물인 구엘공원 타일디자인을 볼 수 있었다. 공원 중간 쯤에는 배의 앞 부분을 떼어낸 상징물도 조성되어 있었다. 어부가 그물을 끌어 올리는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포항 과메기가 유명해 지면서 덩달아 구룡포에도 과메기도 인기를 끌고 있다. 과메기는 오래 전부터 이곳의 명물이었다. 또한 울진대게, 영덕대게처럼 구룡포대게도 유명하기에 이곳 구룡포는 항구 앞쪽 도로에 대게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우리가 구룡포를 방문한 2월 16일은 마침 '구룡포 수산물 한마당잔치'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이 행사는 5월 중순까지 3개월간 열린다고 하는데, 주로 대게와 오징어, 문어, 과메기 등의 이곳 명물들을 주제로 한다고 되어 있다.
방파제쪽으로 이어진 큰 공터에는 천막시설이 들어서 있었고, 대게를 직접 쪄주는 간이 식당과 둥근 수족관에 오징어를 넣어두었고, 그 옆으로는 포항 돌문어, 과메기, 마른 건어물 판매상 등이 손님 맞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3개월 간의 긴 기간 때문인지 활기는 별로 없어 보였다. 아마도 주말이 되면 이곳에 손님들이 넘치고 장분위기가 날 것 같았다.
방파제쪽에서 바라본 자작나무호텔 건물의 모습이다. 9층 건물의 7, 8, 9층만 호텔로 사용되고 나머지는 일반 상가가 들어서 있다. 호텔건물 앞쪽은 수협공판장과 대게유통센타가 들어서 있다. 구룡포항의 제일 중심지다.
바닷가 방파제에는 예전처럼 바다낚시를 하는 분들이 보였다. 테트라 포트 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썩 잘 잡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낚시대와 함께 갈매기들이 잡히는 물고기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항구의 왼쪽에서 접근하면 붉은색 등대를 만날 수 있다. 항포구에는 붉은색을 칠한 등대와 흰색의 등대를 볼 수 있는데, 배의 입장에서 보면 붉은색 등대는 우현을 흰색 등대는 좌현을 뜻하는 것이다. 밤에 붉은색 등대는 붉은색 불빛을 흰색 등대는 녹색 불빛을 깜빡인다.
방파제를 둘러 본 다음에는 항구쪽 음식점들을 지나 북쪽에 위치한 일본인가옥거리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 구룡포에 일본식 건물을 지어 살았는데, 그 건물들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이곳을 '구룡포 근대문화 역사거리'라고 명명하고 오래된 일본인 가옥들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있다. 수십년동안 방치되어 오던 일본식 건물들이 새롭게 조명을 받으면서 관광자원화 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온통 건물수리로 어지럽다.
길가에서 보면 일본식 건물이 보이지 않지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건축양식의 일본식 가옥들이 보인다. 구룡포 우체국이 있는 사이 골목에서부터 일본인 가옥들이 모여있다.
포항시에 따르면 2013년을 목표로 이곳 일본인 가옥들을 정비하여 내국인들뿐만 아니라 일본인 관광객도 유치할 것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무관심속에 방치되어 있었으며, 일본인들이 떠난 자리에 이곳 주민들이 살던 건물을 관광상품화 하겠다는 것이다.
대구시 중구의 근대문화역사 골목길처럼 이곳도 일제강점기의 유산이 관광상품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보존의 가치도 느끼지 못해 방치된 것이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볼거리를 만드려고 하는 것이다.
방파제를 빠져 나와서는 구룡포항의 바로 북쪽에 위치한 구룡포해수욕장으로 놀러갔다. 차로 움직이면 2~3분 거리에 있는 해수욕장은 아이들이 모래장난을 하기엔 안성마춤인 곳이다.
시간이 좀 더 있다면 호미곶도 좋다. 구룡포항에서 호미곶 가는 길이 새롭게 포장되어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왕복 8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호미곶과 구룡포를 연결해 준다.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 배가 고파진다. 해도 늬엇늬엇 지고 있었기에 아이들과 나는 숙소로 돌아가 잠시 쉬었다. 본격적으로 어둠이 몰려올 즈음 아이들과 나는 숙소에서 추천해준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3년 전 자작나무호텔을 찾았을 때는 1층 횟집을 권했지만, 지금 그 자리엔 슈퍼마켓이 들어서 있었다. 아마도 문을 닫은 것 같았는데, 3년 전 방문 때에도 별 장점을 가지지 못한 식당으로 기억된다.
메뉴판을 보니 관광지임을 실감하게 된다. 회가격은 산지라지만 너무 비쌌다. 동네 횟집의 양식회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가격들이었다. 역시 관광지 물가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대게철이어서 대게를 먹지 않을 수 없었는데, 박달대게 가장 작은 한마리가 7만원이나 나갔다. 작은 게 여러 마리보다 낫다는 이야기에 아이 둘 어른 하나에 박달 대게 한 마리와 숭어회 조금을 시켜 10만원에 합의를 봤다.
이곳 식당들 모두 과메기는 모두 공짜로 제공된다. 과메기 산지에서 먹는 과메기는 어떤 맛일까? 정말 하나도 비리지 않다. 나중에는 김과 파, 고추 없이도 그냥 먹었다. 저렇게 김에 싸서 먹고 소주 한잔 입으로 털어 넣으면 그 맛과 느낌이 정말 좋다. 원래 비린 생선을 잘 못먹는 나지만 이번엔 잘 먹었다.
박달대게 한 마리는 선택된 후 손질을 거쳐 찌고 다시 먹기 좋도록 손질하는데는 대략 20여 분의 시간이 흘렀다. 그나마 손님이 한적한 목요일 밤이었기에 빨리 나온 것 같았다.
한마리 손질 한 후에 정리해 놓은 접시는 초라해 보인다. 저게 7만원? 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저렇게 보이는 대게도 양이 만만치 않다. 대게살 먹다보면 느끼해서 많이 못 먹는다.
절대 눈으로 보이는 양을 보고 서운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게는 먹어보고 모자라면 다시 주문하면 그만이니 처음엔 절대 많은 양을 한꺼번에 시키지 않아야 한다.
밀가루 반죽이 들어간 맛살이라고 생각하면 순수 대게살은 완전히 다르다. 구수하고 오묘한 맛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다리살과 집게살을 먹다보면 배가 불러옴을 느낀다. 몸통은 의외로 살이 많다. 아이들이 마지막엔 다 먹지 못하고 남겨서 숙소로 가져와서 먹었다.
대게 메뉴의 마지막은 게뚜껑밥이다. 녹색의 저 밥이 얼마나 느끼한지 먹어본 사람만 안다. 고소하고 맛있긴 하지만 절대 많이 먹지는 못하는 것이 게뚜껑밥이다. 내장과 함께 비빈 것이어서 절대 많이 못먹는다. 김과 함께 먹어야 그나마 제대로 먹을 수 있다.
아침부터 자동차 여행에 바닷가 도보 여행에 이어 대게와 회까지 배부르게 먹고 나니 아이들은 즐겁기도 하고 피곤해 한다. 두번 째 구룡포 여행은 이렇게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