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 금요일은 전국적으로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귀하다는 대구에도 대중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눈이 왔으니 어지간한 동네엔 눈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요일 오후, 늦은 아침 식사 후에 집에 가만히 앉아 있기 답답하다는 아내의 푸념에 갑자기 떠나기로 결심했다. 목적지는 충북 보은 법주사다. 대구에서 거리는 거의 대전만큼 멀지만 잘 만들어진 고속도로로는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문제는 눈이다. 고속도라야 차가 많이 다니고, 또 차가운 날씨지만 햇볕에 노출되어 있으니 녹아서 없어졌지만, 산 속에 있는 사찰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응달진 곳이나 절을 찾아가는 여정에는 눈이 녹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속리산 휴게소 3D입체벽화공원

늦은 아침 덕분에 오후 1시에 출발하여 거의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한 청원 상주간 고속도로 상행선 속리산 휴게소는 간단한 식사를 위해 들렀지만 바깥 풍경 덕분에 기분이 좋았던 곳이다. 눈 내린 야외엔 트릭 아트 전시장에 있을 법한 3D 입체 벽화들이 있어서 사진 촬영 명소로 안성맞춤이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모두 하나같이 하얀 가루를 뒤짚어 쓴 듯 같은 색상으로 솟아있다. 파란 하늘이 더욱 파랗게 보이는 것은 눈의 위력이기도 하다. 가까이 있는 산은 그나마 푸른 침엽수들 덕분에 푸른색을 간직하고 있었다.

 

속리산 휴게소에서 바라본 보은 위성 기지국

 

청원 상주간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속리산 휴게소 근처에 위성 안테나 무리를 만날 수 있다. KT 보은위성기지국이다. 탁트인 위치에 있어서 신호를 주고 받기에는 유리한 것 같다. 눈덮인 산과 하얀 접시 안테나도 제법 잘 어울린다.

 

속리산 IC에 내려 바로 좌회전 하면 장안면이다. 온통 눈밭이다. 도로 중앙선이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눈은 쌓여있었고, 제설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했는지 눈과 흙이 섞여 지나간 차들의 궤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서원리소나무 일명 정부인송이 있는 서원계곡을 지나는 것 까지는 어려움이 없었다. 비록 굽어있긴 했지만 평탄하기 때문인데, 그제서야 제설작업을 하는 차량을 보게 되었다. 법주사를 찾는 손님을 위한 배려였다. 삼가터널까지는 다닐만했다.

 

삼가터널을 빠져나오는 삼가삼거리부터 속리산으로 가는 입구인 갈목삼거리가 큰 문제였다. 내장처럼 구비구비 굽은 도로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곳은 제설이 아니라 미끄러지지 않도록 도로에 흙은 뿌려 놓은 것이 전부였다.

 

용감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트렁크에 체인이 있다는 사실만 믿고 우리 부부는 재를 넘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주오는 차량이 없어 어렵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다.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찬찬히 설경을 구경하며 한적한 도로를 전세낸 것처럼 지나갔다.

 

 

정이품송

 

갈목삼거리에서 본격적으로 속리산 국립공원쪽으로 차를 몰았다. 이곳부터는 어느 정도 제설이 되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위험해 보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중간에 정이품송 소나무도 지나면서 봤다. 800년 수령의 소나무치고는 여전히 정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정이품송을 지나 조금만 더 달려가면 식당과 상가가 모여있는 집단지구에 도착하게 된다. 승용차는 달천을 넘어가지 못한다. 달천 입구 왼쪽으로 소형차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하루 4천원, 1시간을 있다가 가도 4천원 하루 종일 있어도 4천원이다.

 

레이크힐스 관광호텔 앞

 

걸어들어가는 내내 칼바람이 옷속으로 스며들었다. 오후 3시가 넘은 시각 하늘은 맑고 푸르렀지만, 공기는 차갑기도 하고 매서웠다. 법주사로 가는 길은 속리산오리숲이라는 이름을 가진 숲길을 지나야 한다. 법주사까지 약 1Km의 길은 완전히 눈덮인 설국의 길이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무에는 흰 눈이 옷처럼 걸쳐져 있다. 크림을 발라 놓은 듯 가지에 눈에 얹어져 있고, 소나무에선 연신 눈가루가 떨어졌다. 바람도 조금씩 불어 사방에 눈이 모래처럼 날렸다.

 

 

숲길 중간에 매표소가 있다. 성인 4천원, 두 사람이 8천원을 내고 들어갔다. 조금 더 걸어가면 사찰의 입구라는 표시인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법주사로 가든, 아니면 문장대나 천왕봉으로 가든 일단 일주문을 지나야 한다.

 

법주사 일주문

 

일주문 양옆으로는 길이 넓혀져 있는데, 법주사를 오가는 차량을 위한 길이다. 일주문 바로 전에 차량이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을 구분해 두었다. 달천을 사이에 두고 차량과 사람이 다니는 길을 나눠놨고, 일주문부터는 잠시 차량과 사람이 같이 다니는 길이 이어진다.

 

법주사 입구와 등산로로 갈라지는 길

 

다시 조금만 더 가면 사람이 다니는 숲길과 차도로 나눠지는데, 법주사 입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법주사 입구에서 우측으로는 문장대와 천왕봉 등으로 나 있는 등산로가 이어진다.

 

법주사 금강문

 

달천을 넘는 수정교를 지나면 바로 본격적인 법주사 입구에 해당하는 금강문을 만나게 된다. 보통 금강문은 인왕상으로 불리는 두 명의 금강역사가 건물 내 양쪽에 있어서 인왕문이라고도 부르는데, 금강역사는 잡신과 악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

 

법주사 금강문에는 2위의 금강역사와 사자를 탄 문수보살,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법주사 사천왕문

 

금강문을 들어서면 법주사 경내가 한 눈에 펼쳐지는데, 키 큰 전나무 두 그루를 앞에 둔 사천왕문을 다시 만나게 된다. 사천왕문은 칼을 들고 있는 동방지국천왕,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는 서방광목천왕, 용과 여의보주를 들고 있는 남방증장천왕, 비파를 들고 있는 북방다문천왕을 모시고 있다. 동서남북 방향에서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0123

 

사천왕은 인도 토속 신앙에서 나오는 귀신의 왕인데, 금강문는 달리 인간사의 착한 일과 나쁜 일을 판단해서 상과 벌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 잡귀를 몰아내는 역할도 한다. 절을 신성한 도량으로 만들기 위해 세운 건물이 바로 사천왕문이다.

 

법주사 팔상전

 

사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만날 수 있는 건축물은 바로 팔상전이다. 국보 55호인 팔상전은 '탑'이다. 내부에 들어갈 수 있어서 탑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탑이다. 처음에 탑은 나무로 만들어졌다가 점점 돌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팔상전은 원래 신라 진흥왕 14년인 553년에 지어졌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었다. 이를 다시 조선 인조 4년인 1626년에 재건한 것이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국내 유일한 최고 목조탑이 바로 팔상전이다. 팔상전 내부에는 석가여래의 일생을 8폭의 그림으로 나타낸 그림이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이소룡의 유작이 된 사망유희(Game of Death)의 마지막 결투 장소의 모티브가 된 것이 바로 법주사 팔상전이라고 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이소룡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각인된 노란색 바탕의 검은줄 트레이닝복을 입고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층마다 악당을 물리치고 한 층씩 올라간다는 콘셉트가 팔상전을 보고 만든 씬이라고 한다.

 

사망유희는 이소룡이 마지막 격투씬을 제일 먼저 찍어두었다가 용쟁호투를 찍고 나서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한 영화였다. 우리나라 배우를 대역으로 하여 영화를 완성시켜 제작 5년 뒤인 1978년에 개봉된 영화다. 유명한 농구선수인 압둘 자바와 노란색 트레이닝복의 이소룡이 사찰로 보이는 건물안에서 싸우는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다. 그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건물 콘셉트가 바로 팔상전이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팔상전 서편에 위치한 금동미륵대불은 1990년에 세워진 것이다. 원래 법주사에 세워졌던 대불상은 신라 혜공왕 때 승려 진표에 의해 만들어진 청동미륵대불이었는데, 흥선대원군이 당백전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훼손하였다가 1939년 우리나라의 근대 조각가인 김복진에 의해 시멘트로 미륵대불이 세워졌었다.

 

당시 세계 최대의 미륵대불로 인정받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찾았었다. 현재 40대 이후 세대는 수학여행지에서 시멘트로 만든 미륵대불을 관람했을 것이다. 1987년부터 3년간 작업끝에 1990년 지금의 청동대불이 완성되어 모셔졌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대불이 용접부위가 부식되면서 손상을 입자 지난 2000년부터 개금불사(改金佛事) 공사가 시작되어 2002년 6월 끝났다. 천년이 훨씬 지난 지금, 기술이 더 뛰어난 현대인들이 만든 불상이 우리 조상들이 만든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은 신기하고도 놀랍기만 하다.

 

법주사 쌍사자석등

 

팔상전과 대웅보전 사이에는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이 있다. 통일신라시대(720년)에 제작된 석등으로 사자를 조각한 유물 가운데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석등과 달리 기둥(간주석)이 두 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특이한 경우다.

 

쌍사자석등은 법주사 외에 전남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도 있다. 사자는 백수의 왕으로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며 불상의 대좌로도 묘사되기도 한다. 석등은 8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등불을 피워 빛을 밝히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부처의 진리의 빛을 상징한다.

 

 

법주사 석등

 

대웅보전 바로 앞에는석등이 하나 더 있다. 그러나 다른 석등과 달리 석등의 면에 사천왕상이 부조되어 있다. 부조는 상당히 역동적이며 아름답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예술적 완성도도 높은 편이다. 어떻게 그 시절에 이런 조각을 했는지 경이롭기만 하다. 목탑은 불타 없어졌지만 석등은 천년의 세월을 견뎌내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법주사 대웅보전

  

법주사 대웅보전은 비로자나 삼신불을 모시고 있다. 대웅보전이라는 이름보다는 대적광전이라고 해야 옳다. 삼국통일 후 처음으로 세워졌으며 인조 2년인 1624년에 중건되었다. 2층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팔상전이 마당 앞에 있고, 미륵대불이 위치해 있는 만큼 대웅보전의 크기도 2층으로 만든 것 같다.

 

대웅보전에 모셔진 비로자나불은 법신불로 진리와 법을 인격화하여 표현한 부처다. 비로자나불은 지권인이라는 손모양으로 구분이 되는데, 왼손 집게손가락을 펴서 오른손으로 살짝 감싸고 있는 모양으로, 중생의 번뇌를 부처의 지혜로 감싸고 있음을 상징한다.

 

 

법주사 대웅보전 주위에는 약사전과 삼성각, 명부전, 조사각이 차례로 위치해 있다. 그리고 팔상전과 대웅보전 사이 서쪽엔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원통보전이 위치해 있다. 일반적으로 관음전이라고 하지만 사찰의 중심 법당이 되거나 격을 높일 때 원통보전이라고 부른다. 법주사 원통보전은 2.8미터 크기의 목조 관세음보살상을 모셨다.

 

 

법주사 희견보살상

 

원통보전 바로 옆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보살상이 있다. 희견보살상이라고 부르는 석상이 있는데, 희견보살은 법화경을 공양하기 위해 스스로 몸와 팔을 불태워 소신 공양을 올렸다는 보살이다. 법주사는 보물급 불교문화재가 많은 사찰이다.

 

법주사 당간지주

 

법주사 당간지주는 철당간지주다. 불화를 그린 당을 걸었던 것을 말하는데, 일종의 깃대와 같은 것이다. 당을 메다는 당간을 세우기 위해 쌍으로 된 지주석이 있으며, 일반적인 사찰엔 나무를 당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당간지주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법주사 당간지주는 고려 초 목종 9년 (1006년)에 조성되었으나 흥선대원군 때 당백전 발행명목으로 청동대불과 함께 징발되었다. 현재의 당간지주는 1910년에 조성된 것이다. 높이 22미터로 모든 것이 높이 솟은 법주사에 잘 어울린다.

 

 

사천왕문 오른쪽엔 철로 만든 큰 솥이 있다. '철확'이라고 부르는 이 솥은 밥을 하거나 장국을 끓이는데 사용하였는데, 높이 1.2미터, 지름 2.7미터 둘레, 10.8미터로 국내 최대 규모의 무쇠솥이다. 원래 냇가에 있던 것을 옮겨 둔 것이라고 한다.

 

법주사 철확이 이처럼 큰 것으로  얼마나 많은 승려가 이곳에서 머무르며 정진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대략 3천명 정도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 쇠솥은 흥선대원군의 당백전 주조에 사용되지 않아 아직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법주사 경내를 한폭에 담을 수 없을까 고민 끝에 iPhone을 꺼냈다. 넓은 법주사 경내를 담는 데는 파노라마 기능이 제격이었다.

 

늦은 일요일 오후의 햇살과 눈 덮인 경내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빠르게 찾아온 저녁 기운이 법주사에 퍼지는 모습이 잘 담긴 것 같다.

 

12월 30일. 2012년을 하루 앞 둔 일요일 오후의 법주사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있어서 더욱 눈부셨고, 차가웠으며 또한 한편으로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온 세상이 하얗게 바뀐 사찰의 고즈넉한 모습은 지친 일상을 위로해 주는 훌륭한 치료제 역할을 했다.

 

 

 

 

 

 

 

 

 

온통 눈에 덮여 있어서 더 좋았던 일요일 오후의 법주사 방문은 모두 6시간의 여행으로 마무리 되었다. 대구에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 피곤한 일상을 뒤로하고 잠시 쉴 수 있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