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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신궁에서 야사카신사(八坂神寺)까지는 몇 정거장만 가면 되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야사카신사는 기온거리와 동쪽 주요 명소들인 지은원, 고대사, 청수사 등을 연결하는 입구에 있는 신사다.
신사특유의 붉은색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야사카신사는 이어지는 마루야마공원과 함께 24시간 개방이 되기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도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장소다.
앞쪽으로 시조대교와 가와라마치, 가라스마로 이어지는 시조대로
야사카신사 입구 계단에서 기온거리 방향으로 본 모습니다. 교토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중 한 곳이다. 교토 동쪽지역의 남북을 잇는 히가시오지 거리의 중간지점이자, 가장 번화한 거리인 시조거리를 'ㅓ'모양으로 잇는 중요한 스팟이다.
기온의 중심에 있는 야사카신사 입구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만남의 장소같은 곳이다. 연말과 새해가 되면 이곳과 남쪽의 후시미이나리 신사는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곳이라고 한다. 특히 12월 31일 밤에 엄청난 인파가 모인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24시간 개방되는 명소이기 때문이다.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에 보면 가마쿠라시대의 대표 사찰은 지은원(知恩院,지온인)과 건인사(建仁寺,겐닌지)이며, 지금도 게이샤가 등장하는 하나미소로 남쪽에 건인사, 그리고 야사카신사쪽 방향에 지은원이 있다.
야사카신사 자체는 별로 볼거리가 없다. 일본인들에게 신사라는 것 자체가가 소원을 비는 장소여서 신사건물은 단초롭다. 일요일 오후여서 그런지 외지인들 외에 현지 일본인들도 많았다. 검도 동호회인듯한 한 무리의 사람들은 목검과 복장을 갖추고 모여있는 모습도 보였다.
사람들을 따라 발길을 옮기면 마루야마(圓山,원산)공원이 나타난다. 1886년 문을 연 이 곳은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라고 한다. 작은 연못이 있고 광장같은 공간이 나타나는 그 공간이 공원의 중앙이다. 연못 중간으로는 도로처럼 길이 나 있어서 마치 연못이 두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요일 오후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어서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절정에 달한 모습이었다. 들국화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공원에서 야사카신사 방향(서쪽)으로 보면 버로 중앙에 서 있는 수양벚꽃나무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에 공원을 대표하는 많은 사진이 올라오는 그 주인공인데,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은 그냥 신령스런 자태만 남아 있다.
잠시 공원을 둘러보고 왼쪽(북쪽)으로 이어진 지은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은원 삼문(三門)
지은원하면 삼문(三門)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교토의 여러 사찰에 삼문들이 있지만, 손꼽히는 삼문 중 하나가 바로 지은원 삼문이다. 정면으로 5칸, 측면으로 3칸의 형식을 가진 이 문은 지은원을 상징하는 대표 건축물이다. 높이 24미터, 폭 50미터로 일본 삼문 중 가장 큰 규모로 기억하면 된다. 세워진 시기는 1621년.
삼문은 삼해탈문(三解脫門)의 준말로 불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해탈에 도달하는 세 가지 법문(法門)을 뜻한다. 공 해탈, 무상 해탈, 무원 해탈을 이른다고 한다.(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선종사찰의 7당(七堂) 가람 체제는 삼문, 법당, 방장, 고리, 선당, 동사, 욕실 등 7개 건물을 말한다. 삼문은 2층의 복층 구조인데, 2층에 불단이 설치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 불당은 아무 때나 들어가볼 수 없다.
가는 날은 개방되어 있지 않아서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보관석가여래와 16나한상이 모셔져 있고, '지은원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백목관(白木棺)이 있다고 한다. 삼문의 공사책임자가 건설비용이 초과된 데 책임지고 부인과 함께 자살하여 한쌍의 관과 조각상을 모셔놓은 것이라고 한다.
사실, '지은원 7대 불가사의'라는 호기심 자극하는 소재는 여행 스토리텔링으로는 제격이다. 백목관(시라키노히츠기) 외에도 악마를 쫓기위해 놔둔 잃어버린 우산(와스레카사), 회랑의 새소리 나는 마루바닥(우구이스바리노로카), 만인을 구한다는 큰 주걱(오샤쿠시), 어느 방향에서 봐도 정면으로 보이는 고양이 그림(삼포쇼멘마무키노네코), 참새를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 살아 날아갔다는 그림(누케스즈메), 하룻밤사이 오이가 자랐다는 비석(우류세키)인데, 일부는 공개, 일부는 미공개라 다 찾아내겠다는 미션은 불가할 것이다.
어쨋거나, 지은원은 삼문과 7대 불가사의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참고로, 사찰인데 '사(寺)'가 아니라 '원(院)'인 이유는 법당에 해당하는 어영당에 불상이 아닌 승려를 모셨기 때문이다. 일본 정토종을 일으킨 법연(호넨)스님을 모신 곳이어서 지은사가 아닌 지은원으로 불린다. 그래서 사찰 곳곳엔 법연 스님을 기리는 것들이 많이 보인다.
일명 남판(男阪,오토코자카)으로 불리는 계단길이다. 삼문을 지나 본당으로 가는 길이 두 개가 있는데, 가파른 계단으로 만들어진 길과 오른쪽에 완만한 돌길이 있는데, 여판(女阪,온나자카)이 있다. 남녀를 구분한 언덕길이라는 뜻은 설명 안해도 이해가 될 것이다. 성별로 꼭 그렇게 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남녀의 성정을 생각하면 오르는 길도 자연의 섭리라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 질 것이다.
경내 안내도는 남판이 아닌 여판을 권장하고 있으나, 삼문을 곧장 지나 계단으로 오르는 남판을 추천한다. 라스트 사무라이, 이준기 주연의 첫눈이라는 영화의 배경으로도 쓰였다하니, 우리에게는 단순한 삼문 이상의 가치로 느껴진다.
남판계단을 오르자마자 보이는 어영당은 공사중이다. 2011년부터 시작되었으며, 8년간 한다고 예고했다니 내년 또는 그 후년에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위 사진의 경내도에도 붉은색으로 공사구역을 표시해놨다.
어영당(御影堂,고에이도)은 초대 주지인 법연 상인(上人,덕이 높은 승려)의 초상(어영)을 모신 곳인데, 스님은 엄격한 규율이나 의식을 따르지 않아도 부처의 세계를 믿는 마음만으로 구제될 수 있다는 민중신앙으로 정토종을 만들었다. 그래서 지은원은 정토종의 총본산이 되었다.
어영당 서쪽에 2층 건물은 '아미타당'이다. 정토종에서 본존으로 모시는 아미타 부처를 모신 곳이다.
그런데, 그 앞 벚꽃으로 보이는 나무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하얀 꽃이 피어있다니, 초겨울에? 혹시 조화가 아닌가 하여 가까이 가서 보니 생화가 맞다. 계절을 잊은 나무가 꽃을 피운 것이다. 아미타부처의 신령함 때문일까? 사람들은 나처럼 신기해 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아미타당에서 북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오른쪽으로 무가문입구(武家門入口)를 통해 법연상인어당(집회당)이 나오고, 대방장을 통해 방장정원을 구경할 수 있다. 방장정원은 입장료 300엔으로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하지만, 시간관계상 들어가 보진 않았다.
다시 그 옆 신현문 입구도 지나치며 후문이라 할 수 있는 흑문(黑門,구로몬)으로 향했다. 흑문으로 향하는 작은 돌계단 길가에는 아직 완전히 지지않은 단풍들이 고운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굽이치는 돌계단을 내려가면 중간 중간에 사람들이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다. 삼문이 아닌 흑문으로 이르는 길은 지은원의 또 다른 매력이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길을 내려오면 지은원의 또 다른 입구인 흑문이 보인다. 입구부터 출구인 흑문까지 길이 참 아름다웠던 지은원. 다음에 어영당이 공개되면 다시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곳이다. 7대 불가사의도 찾아본다면 아마도 지은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뜻밖의 이야기거리가 있었던 지은원이었다.
사실, 지은원과 함께 근처의 가볼만한 곳은 건인사(겐닌지)이지만, 4시를 넘긴 시간이었고, 고대사(고다이지), 청수사(기요미즈데라)를 잇달아 방문할 예정이어서 포기했다. 정망 교토는 최소 3번은 방문해야 왠만한 곳은 다 가볼 수 있을 것 같다.
고대사(高台寺,고다이지)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풍신수길)는 우리에겐 임진왜란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우리나라에는 큰 상처를 남긴 인물이지만 일본과 교토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인물이자 오늘의 교토에 많은 흔적을 남긴 인물이다.
네네 상(출처:고대사 홈페이지)
그의 부인 네네 기타노만도코로(北政所,관백의 정실부인 작호)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그를 위해 만든 사찰이 고대사다. 관백의 정실부인들은 보통 북쪽 방에 기거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나, 일반적으로 관백이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가리키는 것처럼 기타노만도코로는 네네를 칭하는 말로 통하고 있다.
홈페이지 : http://www.kodaiji.com
이처럼 고대사는 다른 사찰과 달리 여성이 만든 절로 부드러움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사찰이다. 또한 임제종 계열의 사찰이어서 역시 선종사찰로 정원을 가진 곳인데, 저녁에 프로젝션 매핑으로 라이트업 이벤트를 여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일몰후부터 밤 10시까지 열리는 라이트업을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시 아쉽게도 다음 일정 때문에 보질 못했다. 입장료는 성인 1인 600엔.
좌선과 다도로도 유명해서, 다도체험을 신청하면 일본의 고유 다도(차)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철학의 길처럼 '네네의 길'로 명명된 소로도 있어서 들러볼만하다.
석정(石庭)은 여느 사찰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마지막 사진의 칙사문은 1월 1일에서 3일까지만 열어 방장쪽으로 참배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것을 감추고, 제한하는 일본의 사찰관람문화는 사람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는 요소인 것 같다.
지은원처럼 시간만 더 있었다면 라이트업을 꼭 보고 갔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은 곳이다. 시간에 쫓기면 600엔의 입장료가 아깝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곳. 다음에는 지은원과 함께 다시 찬찬히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
고대사까지 둘러보고 나온 시간은 4시. 너무나 급하게 고대사를 훑어보고 나온 것 같다. 이제 6시까지 개장하는 청수사(淸水寺,기요미즈데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