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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쓴 맛에 익숙해지고, 쓴 맛을 안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나이테를 짐작케 하는 척도일 수도 있다. 소주가 그렇고 맥주가 그렇다. 쓰다. 저 쓴 것을 왜 마시는지 누구나 몰랐던 때가 있었다.

 

아니, 반대로 술이 달다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맛이 달아서 달 수도 있지만, 입에 딱 붙는다는 그 표현으로 술이 달다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술 중에는 당분이 들어 있어서 달기도 하다. 순전히 쓰기만 하다면 그게 술일까?

 

맥주에는 홉(hop)이라는 원료가 들어 있어서 쓴 맛을 낸다. 물과 맥아(malt), 홉 그리고 효모로 맥주를 만든다. 독일 맥주순수령에 따르면 물과 홉, 맥아만 들어간 것만 맥주로 정의하기도 한다.

 

쓴 맥주는 홉의 비율이 높다고 보면 된다. 맥아가 단맛을 내는 역할이라면, 홉은 쓴맛과 함께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한다. 또한 맥주의 향을 담당하는 것이 홉이다.

 

이야기가 길었다. 난 요즘 쓴 맥주를 주로 찾는다. 인생의 맛이 써서 그런지 모르지만, 쓴 맥주가 입에 붙는다. 쓰지 않으면 맥주같지 않다. 홉이 많이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높아진다. 덜 쓰면 도수도 낮다고 보면 거의 맞다.

 

라거 종류에만 익숙했던 우리나라 맥주시장에 외산 맥주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수제 맥주가 이곳저곳에서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선을 보이고 있다. 이제 그 옛날 OB, 크라운맥주만이 있던 시절이 아니다. 유럽 맥주, 미국 맥주, 중국 맥주, 일본 맥주, 동남아 맥주 등 세계맥주는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맥주에 대해 논하자면 끝도 없지만, 나는 홉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간 도수 높은 맥주인 IPA(Indian Pale Ale)를 좋아한다. 도수가 높으니 자연히 판매 가격도 높아서 한 병에 3,4천 원 이하에서는 구하기도 어렵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한 병에 3,4천 원 맥주는 일반 음식점에서 한 병 사 먹는 가격과 맞먹는다.

 

인디언 페일 에일(Indian Pale Ale)을 길게 설명하긴 그렇고,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절, 영국에서 인도로 맥주를 보내기 위해 알코올 도수를 높이고 썩지(상하지) 않도록 홉을 많이 넣어 만든 맥주의 종류가 바로 Indian 페일 에일(IPA)이었다.

 

영국에서 인도로 장시간 항해를 하려면 맥주가 상하면 안되기 때문에 태어난 맥주가 바로 IPA다. 페일에일의 한 종류라고 보면 되지만, 그 자체가 맥주의 종류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러나 IPA는 영국에서 시작했지만, 나중에 이를 발전시킨 것은 미국이었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바로 Goose Island IPA다. 시카고 Goose Island에 양조장을 둔 이 맥주는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캐머런 영국 총리에게 선물하면서 오바마 맥주로도 불린다.

 

Goose Island IPA 큰 캔이 473ml이고, 알콜도수는 5.9도, 홉과 시트러스(오렌지) 향이 가미된 마시기 좋은 IPA다. 쓴맛을 나타내는 IBU(International Bittering Units)는 55로, 쓴맛이 적은 라거가 보통 10 정도이며, 50 이상부터 쓰다고 생각하면 된다. 색상은 Dark Yellow.

 

만일 IPA에 입문해 보고 싶다면 가장 대중적인 맥주가 아닐까 생각된다. 수제맥주가게 IPA는 처음 접한 사람에게는 강하고 쓴 맥주로 기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통 IPA는 웬만해선 6도가 넘는다.

 

내가 요즘 맥주를 사면 거의 Goose Island IPA를 산다. GS25에 4캔에 1만원에 팔며, 롯데마트 같은 곳에서는 4캔에 9,400원 프로모션도 한다. 그런데 모든 GS25에 다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동네의 경우 총 4개의 GS25가 있는데, 한 곳에만 진열해놨다. 가끔 가보면 이것만 동이 나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같이 진열된 밀맥주 '312'는 IPA 취향이라면 실망한다. 무조건 벽돌 문양의 녹색 IPA를 살 것.

 

캔을 구입하기 전에 확인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캔 바닥을 보면 이런 숫자가 적혀있다. 유효기간인 EXP(Expiry Date)가 따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면, 품질유지기간(BBE 또는 BB : Best Before End)로, 캔에 맥주를 담은 날로부터 1년을 의미한다. 상미기한이라고도 한다.

 

아래의 경우 110819 이므로, '18년 8월 11일에 맥주를 주입했다고 보면 된다. 즉, 오늘 날짜로 본다면, 품질유지기간은 살짝 지났다. 그렇지만 유통기한과는 의미가 다르므로 마셔도 문제는 없지만, 원래의 풍미는 조금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 맥주를 살때마다 캔 바닥을 보곤 하는데, 대부분이 품질유지기간이 임박했거나, 넘은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수입업체가 싸게 들여오기 위해 판매사와 협상한 결과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제대로 된 IPA를 마시려면 역시나 양조장에서 바로 만든 (수제 맥주점) IPA나 마트에서 비싼 IPA를 사는 게 정답일 거 같다.

 

맥주의 쓴맛은 맥주탐미의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한다. IPA를 마시다 라거를 마시거나 에일맥주, 밀맥주를 마시면 싱겁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자리에서 여러 종류의 맥주를 마시게 된다면 IPA는 마지막에 마시는 것이 좋다.

 

도수도 높은 편이어서 취하는 것도 금방. 안주는 조금 느끼한 음식류가 좋고, 불고기 종류에도 잘 맞다. 물론 제일 좋은 안주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겠지만.

 

인생의 쓴맛 아니 쓴 맥주를 좋아한다면, Goose Island IPA를 권한다. 쓴맛만 나는 것은 아니니 마셔보고 결정하는 것도 좋겠다. 각종 첨가물과 홉의 볶음 정도, 숙성 정도에 따라 맛은 다 다르다. 하지만 입문용 IPA는 이것만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편의점에 판매하는 광화문 IPA, 경복궁 IPA도 입문용 IPA의 대안이 될 수는 있다. 또한 홉의 강한 맛을 내는 맥주를 마셔보고 싶다면 기네스에서 만든 라거맥주인 홉하우스13(Hop House 13)도 좋다.

 

 

* 약 10개월만에 글을 쓰는 것이 생경하기도 하지만, 글 쓰는 일이 이렇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나의 나태함에 반성도 했다. 뜬금없이 은하수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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