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봄이 와서 날이 따뜻해지면서 아파트 비둘기들의 활동이 전에 비해 왕성해졌다. 비둘기 습성상 무리 생활을 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먹이를 찾는 모습은 요즘 아파트들의 흔한 모습이다. 또 심심치 않게 중간층(5~10층)으로는 베란다 안전망이나 실외기에 자주 날아들어 쉬어가곤 한다.

그냥 이렇게 잠시 쉬어가는 것이야 뭐라고 하지 않지만, 문제는 이 아이들의 배설물이 문제다. 뒤처리는 오로지 사람의 몫이 되다 보니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웃이 아니라 싸지르고 도망가는 미운털 박힌 조류가 되었다. 가끔 확장된 베란다에서 바로 눈앞에서 서로 신경전 벌이는 일까지 있을 정도로 이 녀석들은 사람들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파트 중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건물 외벽 쪽으로 설계된 곳들이 많을 것이다. 오래된 아파트들은 베란다에 실외기를 따로 두는 공간이 없어서, 베란다 안쪽이나 아예 바깥쪽에 실외기 지지대를 조립해서 설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공간에 어느 날부터 비둘기들의 쉼터, 비둘기들의 공용화장실, 심지어 자기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짓을 해놓는다. 분변뿐만 아니라 집을 지으려고 가져다 놓은 각종 나뭇가지, 깃털 등등이 섞여 있으며, 따뜻한 날이면 냄새도 솔솔 부는 바람에 집으로 들어오기까지 한다. 그뿐인가? 이렇게 실외기에 실례를 해놓으니 미관상으로도 보기 좋지 않을뿐더러, 분변의 주요 성분은 산성이라 실외기 외장에 부식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 찜찜함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기로 했다. 다른 집들은 어떻게 하는지 밖을 내다보면 다 알 수 있다. 가장 많은 방법은 그물망을 설치하는 것이고, 돗자리로 막아둔 집, 고급스러운 아크릴판으로 막아둔 집도 있다. 아예 비둘기 접근 퇴치를 포기하거나 환영(?)하는 집들도 더러 보인다.

인터넷을 검색한다. '비둘기 퇴치'로 하면, 버드스트라이크(플라스틱을 뾰족한 막대기 모양으로 촘촘하게 구성한 제품), 조류 퇴치망 등등이 나온다. 플라스틱으로 망을 구성하는 PE(폴리에틸렌)망도 있고, 아예 투명한 아크릴로 막는 시공법도 있다. 재료뿐만 아니라 설치 서비스까지 함께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왜 아파트에는 그물망을 많이 설치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론은 비용과 설치의 간편함 때문으로 추정된다. 가장 만만한 방법 같다. 전문 시공인력을 섭외할 필요도 없고, 그물만 있다면 적당히 설치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래서 주문을 했다. 처음엔 조류퇴치용 그물망을 찾아봤으나, 너무 얇고, 투명한 제품들이 나오는데, 농사용이며, 잘못하다간 비둘기들이 망을 구분하지 못해서 끼어서 도망가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는 위험한 그물들이다. 비둘기들이 접근하지 못하면 되지, 거기에 걸려 생을 마감하도록 할 마음은 없으니까.

이럴 때는 '화물용 그물망, 화물용 안전망'이라고 검색하면 우리가 원하는 그물망이 나온다. 2m x 3m 정도가 1만 원 미만으로 가격이 형성되어 있고, 대부분 녹색 또는 검은색인데, 우리가 흔히 보는, 화물차 짐칸에 탑재물 떨어지는 것을 막는 그 그물망이 녹색이므로 그 색을 사면 된다. 비둘기들이 초록(녹색)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 안 된 사실이고...

그물망 사이는 2cm 정도면 무난하다. 당기면 늘어나는데, 너무 촘촘하면 비둘기들이 그대로 설 수 있기 때문에 적당히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일단 그물 설치 전에 배설물들은 깔끔하게 치워준다. 아파트 건물 외벽 쪽이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비둘기의 그것들을 정리해야 한다. 깃털 등도 섞여 있는데, 밖으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집에 들어온 짐승들 것이라 우리 집 쓰레기라는 점을 명심하고 치우도록 한다.

설치는 굳이 설명 안 해도 될 것이다. 대부분 실외기 안전펜스나 지지대가 있을 것이니, 그물망을 잘 펴서 덮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물망 경사다. 그냥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경사가 생기도록 설치하는 것이다. 비둘기들이 날아왔을 때 녀석들이 앉아서 다리를 지지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치해야 한다.

모서리들은 그물망이 팽팽하도록 당겨서 케이블타이 등으로 묶어주면 된다.  특히 비둘기들이 둥지를 트거나 걸어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꼭 막아줘야 한다. 모서리 아래쪽 등에서 들어올 수 없도록 공간을 막아줘야 한다. 이제 녀석들의 쉼터로는 더 이상 제공되지 않을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설치하고 나서 비둘기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처음엔 계속 오던 녀석들이 근처를 날다가 한 번씩 내려왔다. 근데,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아는지, 날아들어오다가 다른 곳으로 피한다. 그물망을 존재(뭔가 다른 것이 설치되어 있다)를 알게 된 거다.

그래도 용감한(또는 멍청한) 녀석들은 이렇게 시도해 본다. 그런데 뭔가 불편하지? 움직이면 발이 빠지고, 꼬리도 그물에 닿고, 찜찜하지? 녀석들은 이런 불편함을 기억한다. 사실 이런 학습효과가 그물망의 실질적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녀석들은 우리 집뿐만 아니라, 다른 집에 설치된 녹색 그물망에 대한 불편함이 학습되어 있다.

전에는 편하게 앉았다가 쉬어가는 실외기도 이젠 발 디딜 수 없게 되었고, 바람 쐬기 좋았던 실외기 자투리 공간도 이젠 접근 불가! 아! 이 집은 더 이상 안 되겠구나... 하고 포기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인다. 가끔씩 늘 찾아오던 녀석들은 근처로 날아오다가 갑자기 윗집으로 올라간다. 늘 오던 녀석들일 것이다.

사실 이 그물망 설치는 작년(20년 4월)에 설치한 것인데, 작년 가을까지 비둘기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계절에 찾아오던 빈도가 확 떨어졌다. 겨울에는 원래 활동이 뜸하기 때문에 보기 힘들었는데,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서 또다시 비둘기들이 아파트에 늘어났다. 그러나 그물망이 없는 다른 집 공간으로는 날아가도 우리 집 베란다로는 더 이상 날아오지 않는다.

4~5월쯤 되면 아파트 공지판에 위와 같은 외부 업체의 광고를 볼 수 있다. 시공 가격과 소독 비용 등을 해서 15~30만 원까지 제시되어 있는데, 1만 원과 조금의 노동력만 들이면 비둘기 퇴치가 가능하다. 

비둘기가 베란다로 날아와서 분변을 싸고 날아가서 위생도 문제지만, 이른 아침 단잠을 깨우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물망 하나로 불청객 비둘기 퇴치를 하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그래도 가끔 어떤 녀석들은 그물망이 없는 창문 베란다 안전봉에 앉아서 시위를 하다 간다. 눈싸움 한번 하고 못마땅해 보이지만 조심조심 뒤뚱뒤뚱 움직이는 걸 보니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내 집에 똥 싸지르고 도망가지는 못하니까.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