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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는 글은 전원생활을 이야기 하는 수필이 아니다.
방금 MBC 다큐플렉스를 본 사람이라면... '아!' 하고 내가 무슨 얘길 하는 지 알 거다. 그렇다. MBC의 장수 주간 단막극 드라마였던 '전원일기'라는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이다. 양촌리, 김회장, 일용엄니, 응삼이, 영남이, 금동이, 복길이... 내게는 낯설지 않은 배역 이름들이 기억나는 농촌드라마다.
60대 초반. 지금으로 보면 한창인 나이에 간암으로 투병하시던 할아버지와 함께 살며 자랐던 나는, 할아버지께서 큰방에 누워 계시며 자주 하셨던 말씀을 기억한다. '오늘 전원일기 하냐?', 지금이라면 전원일기만 하루 종일 볼 수 있는 VOD라도 찾아 드렸겠지만, 그 당시 전원일기는 화요일 저녁에 하는 주간 드라마였다.
왜 할아버지는 전원일기 방송을 그렇게 기다리셨을까? 나는 그때 할아버지의 애타게 그 방송을 기다리는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군대를 제대한 그 시절까지 방송되었던 그 방송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나에게 전원일기는 할아버지가 가장 보고 싶어하던 드라마로 기억된다.
어쩌면 그 시절에 농촌에서 도시로 탈바꿈 하던 지방의 중소도시에 살았던 나는, 농촌도 도시의 맛도 알게 된 전환기에 살았고, 공단의 반듯한 아스팔트 도로와 매연냄새와 화학약품 냄새를 맡으며 학교를 다니던 내게도 어린 시절을 보낸 할아버지 댁은 쉼터였고 푸근한 고향이었다.
전원일기는 도시 사람들을 위한 드라마였다.
농촌드라마라고 하지만 도시인들을 위한 힐링 드라마였다.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왔고, 모든 것이 농촌을 발전이 덜 되고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 여기던, 그러나 잊지 못하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드라마였다. 양촌리라는 가상의 고향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상을 보여주는 드라마에 많은 사람들은 화요일 저녁을 기다렸다.
연기는 연기일 뿐이지만, 그 시절 그 드라마를 보며 시골의 정취와 그 작은 사회의 인간군상과 이야기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세대의 절망과 희망, 그리고 시대상을 함께 보여준 에피소드에 눈물 흘리고 웃기도 했다. 그래서 고맙고, 따뜻했던 드라마였다.
종영 20년이 넘었고, 20년간 방송되었던 이제는 40년의 역사를 가진 국민 드라마. 국민 아버지와 국민 어머니를 만들었던 드라마. 국내 최초의 농촌드라마. 그 사이 돌아가신 연기자들도 여럿 생겼고, 아역 배우가 성인 배우가 되었고, 연기자 부부는 실제 부부가 되었으며, 그 배역 이후 일반인의 삶으로 돌아와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는 배우도 생겼고, 배역 누구는 만인지상 장관의 자리도 지냈으며, 누구는 그 배역을 끝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드라마 이후에도 그야말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든 드라마였다.
그러나, 지금 '왜? 라는 의문이 생길 만한 기획이다. 왜 지금 '전원일기'인가? 왜 나는 이 다큐에 공감하고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일까?
여기엔 음모론은 없다. 작년 응삼이 박윤배 배우의 죽음도 조금의 영향은 있었겠고, 여전히 수사반장, 김회장 최불암의 연상 캐릭터도 있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중파 방송사의 그 옛날 그 시절의 파워에 대한 향수였을 것이다. 이제는 뒷전으로 물러난 그 시절의 '전성기' 주역들의 퇴장을 보여주면서, 어쩌면 지금의 공중파 방송사가 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지는 되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방송국은 그 부자연스러움을 이야기 하고 싶었겠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움에 오히려 난 놀랐다.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당시 매주 주제들은 그 시절을 살아가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감되었던 것들이었다. 방송 속의 주간 에피소드들은 그 시절을 살던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하는 이야기였으며, 때로는 내 생각과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고개 끄덕일 공감도 있었던 내용이었다. 따뜻한 정도 나누는 훈훈한 이야기부터, 때론 낯부끄러운 감추고 싶은 이야기, 어설픈 신파도 있었지만 결국 그 시절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한번쯤은 느끼고 공감했던 이야기여서 잊혀지지 않았다.
전원일기는 지금 살아가는 40대 중반 이상은 기억하는 드라마다. 그들에게 이번 다큐 시리즈는 감성팔이를 하려고 만든 것 같지는 않다. 종편의 옛 연예인 지금은 뭘 하고 살아가나... 같은 고정팬을 가진 옛 연예인 뒷담화도 아니다. 어쩌면, 왜 그 시절 '전원일기'는 (지금 생각해 보면) 국민 드라마였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는가를 함께 생각해 보자는 것 같이 보인다. 공중파 방송의 생존 다짐 같은 결의도 느껴 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산들만의 기억과 추억이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 중에는 울림이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모든 사연 하나하나가 울림이 있지는 않지만, 때로는 드라마속의 응삼이처럼, 드라마 속의 김회장처럼, 내가 저 위치에 있었더라면 어찌 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다면 드라마는 성공한 것이다. 그 성공의 공식을 다시 찾고 싶다는 방송사의 욕망이 보인다.
박수 칠 때 떠나라(1980년 10월 21일 첫 방송 제목이었다)는 말처럼,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은 그 마음 이해된다. 그래서 전원일기는 성공한 드라마로 남았다. 전원일기가 억지를 부리지 않고, 아니 억지스러워지려고 했을 때 그만 두었던 것은 더 이상 우리가 양촌리의 김회장 삶을 이해하고 동화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지금의 세대에겐 고향의 향수는 설과 추석만으로 충분하고, 농촌의 삶이 옛 기억이 아니라 이제는 추억으로만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의 자녀들에게는 고향이 더 이상 '시골' 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든 기억속의 내 고향은 이제 산과 개울, 논과 밭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섰고, 그 옛날 농사짓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안 계신다. 명절의 고향 나들이에는 더 이상 즐거움이 사라졌는데, 나도 늙었기 때문이다. 반겨줄 어머니도 안 계시기 때문에... 늙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그 시절의 향수는 그냥 추억일 뿐이다. 농촌에서 도시로 바뀌는 과도기에 과거를 살았던 우리는 모두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 세대에는 전원일기가 아닌, 그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일상의 소음과 공해가 함께 한 도시생활이 콘텐츠가 될 뿐이다. 지금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연은 우리가 기억하는 옛 스러움이 아닌 인간 본연의 호기심에 끌리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한 세대가 지나가는 거다. 왜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그 시절 '전원'을 그리워 했을까? 토막의 기억들을 '일기'라며 그 시절을 기억하고 싶었을까?
전원일기 다시 보기(무료) : http://playvod.imbc.com/templete/VodList?bid=10049361000001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