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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출처 : wikipedia)
학창시절 고대전설이나 미스터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집트, 특히 피라미드와 관련된 이야기들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최근엔 관련 SF 영화도 즐겨 보았는데, 특히 '미이라' 시리즈 같은 이집트와 미이라, 고대 이집트 등을 소재로 한 영화는 꼭 봐야하는 영화였다.
미이라와 이집트 문명 이야기가 나오면 반드시 같이 연상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파라오 '투탕카멘'이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출처 : wikipedia)
투탕카멘(Tutankamun)은 고대 이집트 신왕조라고 불리는 18왕조의 자손으로 기원전 1341년에 태어나서 기원전 1323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파라오(Paraoh, 이집트의 왕)이다. 투탕카멘은 'Amun의 현신'이라는 뜻이다. Amun은 태양신 Ra와 관계된 신이다. Tut(King Tut)라고도 불린다.
투탕카멘왕은 8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11년 후인 19살의 나이로 죽었다. 그 시대의 관습으로 인해 파라오는 미이라의 형태로 영생을 위해 피라미드에 안치되었다.
(KV62 입구의 모습, 출처 : wikipedia)
투탕카멘왕은 그가 숨진지 3245년이 지난 1922년 11월 26일 왕가의 계곡(Valley of Kings)으로 알려진 대규모 무덤군(群)에서 영국인 이집트학 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하워드 카터는 영국의 카나본 경(Lord Canarvon)이 고용한 사람이었다.
당시 투탕카멘의 무덤은 람세스 4세 고분의 입구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한 날은 11월 4일, 미이라가 들어있는 석관을 열어 투탕카멘왕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이듬해인 1923년 2월 16일이었다.
발굴번호에 따라 KV62 고분(古墳)으로도 불린다.
(발견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출처 : wikipedia)
투탕카멘 고분의 발견은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사건이었다. 이집트 고대 문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황금마스크의 주인이 바로 투탕카멘왕이며, 많은 보물들이 이 무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3천년이 지나도 거의 손상없이 발견된 덕분에 무덤속의 많은 소장품들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으며, 고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발굴은 또 다른 이야기로 유명하다. 바로 파라오의 저주 또는 투탕카멘의 저주라고 불리는 미스터리한 죽음들 때문이다. 발굴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카나본 경, 출처 : wikipedia)
제일 첫번째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피라미드의 발굴을 기획하고 자본을 지원했던 카나본 경의 죽음이다. 호텔에서 숨진채로 발견된 그는 질병균을 가진 감염된 모기에 물렸고, 면도하다가 날에 베였는데 이때문에 병원균에 감염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57세의 나이였다.
그가 이집트 카이로에서 죽던 날 카이로 전체에 정전이 일어났으며, 그날 영국에 있던 그의 기르던 개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았다는 보도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저주의 연관성을 위한 추측기사로 보이는데, 근거는 없다.
카나본 경이 죽은 뒤 5개월 뒤에 그의 동생이 돌연사 했고, 하워드 카터가 기르던 카나리아는 무덤을 열던 날 코브라에 잡혀 먹었다. 코브라는 파라오를 지키는 존재로 알려져 있어서, 소문을 더욱 신빙성 있게 만들었다.
그 뒤에도 발굴 또는 무덤의 방문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이유없이 죽거나 자살하는 일들이 벌어졌으며, 그로 인해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당시 카나본 경이 발굴과 관련된 모든 기사를 영국 Times지(紙)에만 독점적으로 줬는데, 기사의 소스가 Times 한 곳 뿐이어서, 당시 다른 언론사들은 관련 기사를 모두 타임즈에서 받아야 했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카나본 경의 죽음을 맞이하자 이를 경쟁 언론사들이 '저주'라는 흥밋거리를 가미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또한 셜록 홈즈의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은 카나본 경의 죽음이 미이라의 저주와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쳐서 이 소문이 더욱 확대 생산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워드 카터, 출처 : wikipedia)
그러나 정작 발굴을 지휘하던 하워드 카터는 발굴 18년이 지난 1939년 64세의 나이로 림프종을 앓다가 숨졌다. 저주보다는 일반적인 삶을 살다가 죽은 것이었다.
어떤 연구에서 당시 발굴과 관계된 사람들의 상태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는데, 전체 58명 중에 12년 안에 단지 8명만 죽었다는 결과가 나왔었다. 특히 당시 투탕카멘의 시신을 부검했던 의사는 75세까지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카나본 경의 딸이며 발견 초기에 무덤에 같이 들어갔던 이블린 헐버트는 79세인 1980년에 죽었으며, 무덤의 주요 사진을 촬영했던 기사인 해리버튼은 1940년에 죽었다.
파라오의 저주라고 불리는 투탕카멘의 무덤과 관련된 이야기는 영화와 재밌거리로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3천년이나 넘은 고대 문명을 바라보는 시각을 '미스터리'와 '저주'라는 것으로 풀이한 과정에서 나온 일종의 미신일 뿐이다.
(투탕카멘의 실제 시신, 출처 : nationalgeographic.com)
투탕카멘은 최근에 다시 관심을 받고 있는데,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이 발견 후 거의 85년만에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시는 박물관에서 하지 않고 왕가의 계곡이 있는 룩소르 투탕카멘 무덤에서 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 투탕카멘 미라 맨 얼굴 일반에 첫 공개
그러나, 일반 공개와 전시 투어 등에 대해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세계적인 유물인 미이라의 보호보다는 전시 등으로 인한 수입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문화일보 : “투탕카멘 팔아 돈벌이 말라”
파라오의 저주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가끔씩 투탕카멘과 관련된 외신들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나우뉴스 : 투탕카멘의 저주?…한 여인의 잇따른 악재
노컷뉴스 : '파라오의 저주?' 고대유물 훔친 뒤 시름시름 앓다 사망
그나저나, 내년 8월엔 미이라 3(The Mummy 3, Tomb of the Dragon Emperor)가 영화로 다시 우리곁을 찾는다고 한다. 미이라 전편의 주인공인 브랜든 프레이져와 중국배우인 이연걸이 나온다고 한다.
내게 있어서 이집트와 고대문명, 미이라, 그리고 파라오의 저주는 떼어놓을 수 없는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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