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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에 이어 HP의 납품비리 사건으로 새삼 IT 장비업계에 가해지는 따가운 시선들을 바라보게 된다.
비단 HP만의 문제라고 꼬집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IT 업계의 이권과 관련된 비리이다.
서버 장비나 스토리지, 네트워크 장비, 그리고 이들을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들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만큼 비싸다. 서버 한 대에 몇 백 만원 정도도 있지만, 유닉스 서버나 메인 프레임 등의 장비들은 수천 만원에서 몇 억원까지 호가한다.
여기에 스토리지와 각종 어플리케이션, DBMS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장비 등 까지 합하면 그 금액은 웬만한 중소 IT 기업의 1년 매출과도 맞먹을 정도로 금액은 커진다.
특히, 대기업이나 관공서, 은행권 등의 전산장비 교체나 시스템 구축 사업의 경우 몇 십억에서 몇 백억원 단위까지 있으며, 심지어 어떤 사업은 구축 사업 전체를 포함하여 1천 억원이 넘어가는 사업도 있다. 이들 사업의 대부분 비용은 바로 장비가 차지하고 있다.
장비를 활용하여 목적한 시스템 구축이나 서비스 구축이 목적이지만, 실제 사업의 원가 측면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하드웨어, 장비 구매에 있다. 그 외에 소프트웨어와 이들을 개발하는 엔지니어의 인건비가 그 다음으로 많이 들어간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가장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장비구매의 경우, 장비 제조사에 의해 서버 장비 등의 가격이 결정되는데, 장비의 실제 원가 외에 기술료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실제 그런 기술에 따른 제품의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에 최종 납품가격은 제조사에 의해 결정된다. 그만큼 시장의 가격 개입논리가 약하고, 제조사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가격체계가 형성된다고 보면 된다.
X86 기반처럼 Intel에서 공급받는 CPU로 제작된 서버의 경우는 제조 기술이 어느 정도 공개되어 있는 상태여서 가격이 제조사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유닉스 서버의 경우 CPU를 비롯하여 시스템 아키텍처가 공개되어 있지 않고, 독특한 자사의 운영체제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에 외부에서 서버나 시스템의 가격을 결정하거나 예측할 수 없어지게 된다. 또한 이런 점을 제조사는 마케팅에 활용하기 때문에 해외 유수의 제조사들은 암묵적인 가격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다.
서버 제조 전문 업체의 서버나 네트워크 장비 가격은 고무줄 가격에 가깝다. 상대 경쟁사의 가격에 얼마든 맞추어 납품할 수 있는 것은 원래 책정된 가격 자체에 많은 이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비 납품비리는 바로 이런 제품의 고무줄 같은 가격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어느 제품이나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제품은 없다. 피치못해서 판매되는 경우는 있더라도 IT 장비업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원가 아래로 판매한다면 유지보수 비용이나 장비 운영 지원 자체가 불가할 수 있어서 구매자측에서도 꺼려하기 때문이다.
가격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서버 제조사들은 할인율 정책을 취하고 있다. 예를들면 A라는 서버 제품은 책정된 가격이 1억 원인데, 총판이나 그 아래 대리점들이 고객에게 영업할 때는 할인율을 책정하여 50%, 60% 할인이 된 금액을 고객에게 제시하게 된다. 즉, 5천만 원, 4천만 원 등으로 고객에게 제시하게 된다.
이럴 경우 경쟁사는 비슷한 스펙의 장비를 역시 자사의 할인율룰에 따라 가격을 제시한다. 마찬가지로 책정된 가격을 기준으로 할인율로 경쟁을 하게 된다.
서버 판매 제조사의 경우(주로 외국계 기업), 특정 제품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할인율 적용과 인센티브를 제시하여 총판과 대리점의 영업을 지원한다.
이러다보니, 서버 가격이나 시스템 납품 가격 등은 고객에 따라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이런 와중에 특정 고객의 경우 외국 본사의 지침과 한국 지사의 정책에 따라 총판과 대리점이 행동에 나서게 된다.
총판과 대리점의 행동이 어떠했는 지는 이미 뉴스를 통해 밝혀졌다. 물론 이를 총판이나 대리점이 독자적으로 강행했거나, 일부 한국 지사의 임원이 개입되었다는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 되었다.
어느 언론의 비판처럼, IBM 사건 때도 그랬고, 이번 HP 사건 때도 마찬가지로 모든 책임을 총판 또는 대리점에 집중되어 있고, 원인의 제공처인 본사와 그들의 영업 방식에는 일절 손대지 않았다.
가격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격의 빈틈이 많다는 것이고, 이는 비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본사 측에서는 전략적으로 공략해야 할 고객의 경우 이윤을 줄이는 방식으로라도 고객을 잡아야 한다.
정해진 가격과 실제 이윤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금액들을 영업비용으로 활용하는데, 이런 금액들이 비자금이 되어 뇌물로 변하거나, 영업 사례금 등으로 바뀌는 것이다.
고객측에서도 구매를 담당하는 책임자의 경우, 이러한 구조적인 서버 제조사의 영업 문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유혹에 노출된다. 특히, 때마다 대형사업이 있는 금융업계의 경우 이런 비리는 많다.
영업사가 제공하는 호위(뇌물 또는 여러가지 편의)를 눈먼 돈 쯤으로 여길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위에 설명한 그런 이유들 때문이다.
IBM과 HP의 납품비리가 적발되었지만,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지 않다. 너무 심하게 드러나지 않게 더 조심할 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뒤엔 외국 서버 제조사들의 신뢰할 수 없는 가격체계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