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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에 조조할인으로 아내와 둘이서 정말 오랫만에 영화를 보러갔다. 아이들을 동생네에 1박 2일로 맡기고 한가한 오전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영화 한편에 7천원이 아닌 4천원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은 좋았다. 집가까운 복합영화관이 롯데시네마였는데, 연휴때문인지 초중고생들과 부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인터넷과 주변에서 다들 '놈놈놈(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단기간에 몇백만명이 본 영화라서, 다른 개봉영화들은 제쳐두고 일단 이 영화로 선택하게 되었다.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라서 오전에 조조로 본다고 해도 점심을 마칠때쯤 나오게 되었다. 입장을 하려니 의외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았다.
많아봐야 초등학교 4,5학년 아이들쯤으로 보이는 자녀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왔는데, 끔찍한 장면들이 좀 있어서 아이들 보기엔 좀 그런 장면들이 있었다. 영화는 15세 관람가이다. 고학년의 중학생이 되어야 볼 자격이나마 있다는건데...
어쨋든 저들도 소문듣고 영화보러 왔으리라 생각했다.
영화는 오랫만에 스크린으로 얼굴보인 송영창(불미스런 일로 대중으로부터 사라졌었던 탤런트)의 씬으로 시작되었다. 신비감을 주려했는지 처음부터 '(보물)지도'라는 주제를 관객들에게 던져주었다. 영화는 이 지도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 말이다.
송영창과 오달수는 조연으로 자주 나올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중간에 죽고, 끝부분에만 나오는 조연 중에서도 비중이 약한 역할이었다. 조연으로 이청아와 특별출연으로 엄지원이 나오는데 역시 비중의 거의 없었다.
어쩌면 이들 비중없는 역할들은 영화를 포장하는데 관객을 향해 살짝 과시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었다.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이라는 탑스타급들이 주연을 맡다보니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조연들은 어느 정도 '인물'이 되어야 했을테니까.
잠깐 얼굴비치는 조연들과 달리 송강호의 짝패인 만길 역의 류승수(달마야 놀자의 침묵수행승 역할)와 건달로 자주 나오는 병춘역의 윤제문은 그나마 3인방 스타의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했다.
놈놈놈을 보고 나온 중년부부는 이 영화의 성격을 '서부영화'에 빗댔다. 권총과 장총이 난무하고 만주벌판 말달리는 것이 꼭 서부영화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영화를 풀어나가는 주제도 '보물지도'라는 것이었으니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서부영화와 닮아있다.
좋은 놈과 나쁜 놈이 있고, 중간에 이상한 놈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도 한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 쫓고 쫓기는 사이가 되었으며, 일제의 침략전쟁과 만주라는 배경은 그저 영화를 풀기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광복절 다음날에 보긴했지만, 광복과 관련된 어떤 메시지도 던져주지 않으며,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물론 그런 애국주의의 감상적인 이야기는 오히려 이 영화에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가끔 독립에 대해 언급하지만 실제는 영화와 거의 무관하다.
놈놈놈은 물량공세와 액션을 기본으로 송강호의 애드립같은 대사로 아무생각없이 그냥 즐기면 되는 영화다. 뭔가 메시지를 줄 것이라는 기대와 다른 재미를 찾으려 한다면 아마도 몇백만이 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을 것이다.
놈놈놈을 보고 나온 사람들의 반응이 대부분 비슷하다. 단순한 재미는 있지만, 특별히 뭔가 기억에 남고 훌륭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는... 뭐, 영화를 보는 목적이 여럿 있지만 아무생각없이 볼 수 있는 영화도 괜찮은 영화이긴 하다.
송강호 캐릭터라도 없었으면, 아니 이상한 놈이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을 것이다. 송강호의 웃기는 연기에 대부분의 관람객이 웃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웃었다. 나와 같은 성인들은 그저 '피식'하는 정도의 가벼운 웃음이 전부였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설때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마지막 부분 여러 무리들이 송강호를 쫓는 추격씬과 음악이 전부였다.
주인공들은 총을 쏴도 맞지 않고, 주인공들이 총쏘면 악당들은 쓰러지는, 정우성은 영웅의 모습으로, 이병헌은 절대악의 모습으로 영화를 이리 저리 휘집고 다닌다. 그 틈바구니에서 송강호는 웃음을 주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다.
지도의 정체가 그 시대 배경에는 존재의 중요성을 별로 알 수 없었던 '석유'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약소국인 우리나라를 은근히 씹는 분위기는 느껴진다. '조선놈'이라는 자기비하적인 발언이 곳곳에 등장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역사는 존재하지만 이야기의 허구와 재미라는 주제 앞에선 그런 모든 머리 아픈 발상들은 다 사라지기 마련이다.
보고나오면서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내리라고 누군가가 말했다면 난 이렇게 했을 것이다.
'돈 들였구나. 큰 재미는 없었지만, 잔잔하게 귀여운 재미는 있었다. 조조할인을 받아서 감동이 조금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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