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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야기, 군대 이야기는 여자들이 정말 듣기 싫어하는 대화주제라고들 한다. 아무래도 남자들만의 세계인 군대에 대한 이야기는 군대생활상을 잘 모르는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공감가는 부분들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무반 생활 등은 코메디 소재로도 사용되었고, 많이들 들어서 그나마 좀 알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소재들은 훈련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유격훈련, 행군, 화생방 훈련 등이 있을 것이고, 얼차려 이야기나 특이한 전우들에 대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힘들어서 그런지 제대하면 군대가 있는 방향으로 오줌도 누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물론 난 오히려 제대하고도 군생활한 곳으로 자주 놀러 갔었다. 이해를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군생활을 한 곳은 유명 관광지가 있는 지역이었다. 바로 설악산과 동해바다가 있는 강원도 고성이다.
내가 근무했던 부대는 해안경비를 맡으며 번갈아 가며 내륙으로 이동하여 보병의 임무를 하던 부대였다. 해안경비 지역은 곳곳에 해수욕장 같은 관광지들이 있고, 민간인들을 자주 볼 수 있으며 바다가 보여서 다른 지역보다 군생활에 부담이 덜 가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번갈아가며 내륙으로 들어가서 생활할 때는 온통 산으로 둘러쌓여있고, 민간인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상황이어서 잘 하면 정신수련(?)하기 정말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큰 고민거리가 하나 있으니 바로 '눈(snow)'을 치우는 제설작업이다.
내무반 생활 등은 코메디 소재로도 사용되었고, 많이들 들어서 그나마 좀 알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소재들은 훈련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유격훈련, 행군, 화생방 훈련 등이 있을 것이고, 얼차려 이야기나 특이한 전우들에 대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힘들어서 그런지 제대하면 군대가 있는 방향으로 오줌도 누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물론 난 오히려 제대하고도 군생활한 곳으로 자주 놀러 갔었다. 이해를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군생활을 한 곳은 유명 관광지가 있는 지역이었다. 바로 설악산과 동해바다가 있는 강원도 고성이다.
내가 근무했던 부대는 해안경비를 맡으며 번갈아 가며 내륙으로 이동하여 보병의 임무를 하던 부대였다. 해안경비 지역은 곳곳에 해수욕장 같은 관광지들이 있고, 민간인들을 자주 볼 수 있으며 바다가 보여서 다른 지역보다 군생활에 부담이 덜 가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번갈아가며 내륙으로 들어가서 생활할 때는 온통 산으로 둘러쌓여있고, 민간인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상황이어서 잘 하면 정신수련(?)하기 정말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큰 고민거리가 하나 있으니 바로 '눈(snow)'을 치우는 제설작업이다.
(뒤로 보이는 막사와 산 그리고 보급로에 쌓인 눈)
제설작업도 군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지긋지긋한 작업 중의 하나다. 특히 강원도 전방부대들은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지역이고, 험한 산악지역이어서 눈은 정말 위험하고 귀찮은 존재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눈이라는 존재는 낭만과 아름다움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군대에서의 눈은 곧 '고된 노동의 반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11월쯤부터 군대에서의 적설량은 사회와 또 다르다. 일반적으로 도심을 중심으로 하는 방송의 기상대 적설량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의 기준일 뿐이다. 부대가 있는 산악지역은 잘 들어맞지 않는다. 심지어 도심에는 햇볕이 쨍쨍하지만 산속에는 눈이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
보통 방송에서 눈이 좀 내리겠다는 이야기를 하면 부대는 비상근무체제로 돌아간다. 제일 중요한 전투력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비상상황이라도 발생하면 눈은 커다란 장애가 되기 때문에 전투준비를 위해서라도 결코 눈은 달갑지 않은 존재이다.
전투력과 함께 눈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보급로의 차단에 있다. 보급이라는 것은 장병들이 먹고 입고하는 원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이기 때문에 군대에서는 아주 중요하다. 많은 인원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먹고 입어야 하는 문제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런 연출사진은 당시 처절함과 전혀 상관없는 행동이었다 ^^)
두가지 반드시 지켜야할 준비때문에 눈이 오면 군인들은 바쁘다. 바로 제설작업에 나서야 한다. 눈 치우고 나면 또 눈이 쌓이는 날들이 한달 두달씩 반복되면 거의 눈만 보면 미칠 지경이 된다.
눈만 뜨면 온통 하얗게 변한 산들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오늘은 또 얼마나 치워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중대별로 구역을 정해서 눈을 치우지만 계속 내리는 눈을 보면 나중에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한두번 아니었다.
눈은 쌓이기 전에 치워야 한다. 안그러면 눈이 굳고 얼어서 나중에는 치우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비상시 병력의 이동이나 차량의 이동이 힘들거나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눈은 쌓이기 전에 치워야 한다.
어떨 때는 밤에 눈이 내리면 잠도 못자고 눈을 치워야 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일부 병력은 잠을 재우고, 또 일부는 야간제설작업을 하는 사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트럭 전조등 불빛으로 앞을 밝히고 제설작업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도 야속한 눈은 계속 내렸다. 잠시 휴식시간에 담배를 피우며 추운 날씨에 손을 비비며 하늘을 원망하지만 그래도 눈은 계속 내렸다. 오랫동안 작업하면 군화나 윗옷의 소매 등에 묻은 눈이 녹아서 몸이 젖는 경우도 많았다. 또 작업을 하면 땀이 나기 때문에 땀이 식으면서 감기가 걸리거나 약한 동상을 입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고된 제설작업으로 근육통에 피부 트러블에 제설작업 후엔 많은 후유증들이 따라 다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우들 모두, 그러니까 서로들 힘든줄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작업을 하기 일수였다. 눈 치우면서 선임병들이 후임병들을 아끼는 모습을 여러번 봤던 그때의 기억이 많이 난다. 물론 독하고 못된 고참들도 있었지만, 눈 앞에서는 모두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에 평소에 독한 고참들도 후임병들에게 잘 해줄 때가 바로 그때였다.
이렇게 눈을 치워도 내리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는 부대가 아예 고립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영외 생활을 하는 하사관들도 아예 퇴근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나가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들어오는 것 역시 불가능해진다.
제일 큰 타격은 바로 먹는 재료들인 부식차량이 못 들어오는 경우가 심각했다. 쌀과 물 등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비축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부식은 오래 보관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부식차량들이 다니게 되어 있었다.
부식차량이 눈때문에 들어오지 못하면 며칠동안은 거의 김치를 반찬으로 식사를 때웠던 일도 있었다. 이럴 때 PX의 고추장은 거의 동이 난다. 가끔은 비축된 훈련용 컵라면으로 식사를 떼우는 일도 발생한다.
어떤 때는 최대 약 열흘 가량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외부에서 오는 우편물도 못 받고, PX 물품은 물론, 면회도 불가능해진다. 정말 완전히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경험한다. 물론 통신망만 간신히 열려 있었다. 이때는 공중전화에 줄 서 있는 부대원들이 많았다.
눈이 내리면 대부분의 야외활동은 제약을 받는다. 훈련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동성이 있는 야외훈련은 못한다. 대신 정비시간을 갖거나 체력단련(태권도... 만만치 않게 짜증나는 훈련이다^^)시간, 정신교육(가끔은 비디오 감상^^)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물론 중간 중간에 제설작업을 나가야 한다.
이렇게 강원도 군생활은 눈과 원수지간이 되도록 만든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눈은 어느새 그리움의 존재가 되었다. 사회에 나와서 생활해보니 그때처럼 눈쌓인 풍경도 볼 수 없고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모습도 잘 보기 힘들었다.
눈 내리면 제설차가 다니면서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리고, 사람들의 활동때문에 도시에서의 눈은 빠르게 사라진다. 하지만, 눈에 의해 압도되어 감히 모두 치워버리지 못하는 군대는 보급로와 작전로만 뚫는 수준에서 눈과 타협을 했었다.
아마 지금도 내가 있었던 지역에 주둔중인 부대는 열심히 눈을 치우고 있을 것이다. 하루 하루 내리는 눈을 저주하며 제설작업으로 젖은 전투화와 전투복을 말리며 담배를 물고 물끄러미 하늘을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사진 몇장을 보면서 지금은 웃으면서 눈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당시엔 절망적이었다. 하루 종일 눈치우고 침상에 골아떨어진 전우들을 보면서, 우리가 나라지키러 온건지 눈치우러 온건지 구분이 안되는 당시의 상황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지금 애인이나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자분들... 첫 눈 내린다고 또는 눈내리니까 아름다운 추억이 생각난다고, 눈이야기로 메일이나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생각해 보고 보내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 당시 근무했던 17~18년 전과 다르게 병영생활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눈은 군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시, 제설작업을 독려하기 위한 우리 중대장의 말이 지금 생각해도 가관이었다.
'제군들은 오늘 눈과 전투를 하는 것이다. 눈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마음으로 제설작업에 임하기를 바란다. 멋지게 싸워서 이기도록 하자'
당시 초겨울부터 시작된 마좌리의 제설작업은 3월이 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전우들이 보고싶다. 모두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눈만 뜨면 온통 하얗게 변한 산들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오늘은 또 얼마나 치워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중대별로 구역을 정해서 눈을 치우지만 계속 내리는 눈을 보면 나중에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한두번 아니었다.
눈은 쌓이기 전에 치워야 한다. 안그러면 눈이 굳고 얼어서 나중에는 치우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비상시 병력의 이동이나 차량의 이동이 힘들거나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눈은 쌓이기 전에 치워야 한다.
어떨 때는 밤에 눈이 내리면 잠도 못자고 눈을 치워야 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일부 병력은 잠을 재우고, 또 일부는 야간제설작업을 하는 사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트럭 전조등 불빛으로 앞을 밝히고 제설작업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도 야속한 눈은 계속 내렸다. 잠시 휴식시간에 담배를 피우며 추운 날씨에 손을 비비며 하늘을 원망하지만 그래도 눈은 계속 내렸다. 오랫동안 작업하면 군화나 윗옷의 소매 등에 묻은 눈이 녹아서 몸이 젖는 경우도 많았다. 또 작업을 하면 땀이 나기 때문에 땀이 식으면서 감기가 걸리거나 약한 동상을 입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고된 제설작업으로 근육통에 피부 트러블에 제설작업 후엔 많은 후유증들이 따라 다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우들 모두, 그러니까 서로들 힘든줄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작업을 하기 일수였다. 눈 치우면서 선임병들이 후임병들을 아끼는 모습을 여러번 봤던 그때의 기억이 많이 난다. 물론 독하고 못된 고참들도 있었지만, 눈 앞에서는 모두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에 평소에 독한 고참들도 후임병들에게 잘 해줄 때가 바로 그때였다.
이렇게 눈을 치워도 내리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는 부대가 아예 고립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영외 생활을 하는 하사관들도 아예 퇴근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나가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들어오는 것 역시 불가능해진다.
제일 큰 타격은 바로 먹는 재료들인 부식차량이 못 들어오는 경우가 심각했다. 쌀과 물 등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비축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부식은 오래 보관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부식차량들이 다니게 되어 있었다.
부식차량이 눈때문에 들어오지 못하면 며칠동안은 거의 김치를 반찬으로 식사를 때웠던 일도 있었다. 이럴 때 PX의 고추장은 거의 동이 난다. 가끔은 비축된 훈련용 컵라면으로 식사를 떼우는 일도 발생한다.
어떤 때는 최대 약 열흘 가량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외부에서 오는 우편물도 못 받고, PX 물품은 물론, 면회도 불가능해진다. 정말 완전히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경험한다. 물론 통신망만 간신히 열려 있었다. 이때는 공중전화에 줄 서 있는 부대원들이 많았다.
눈이 내리면 대부분의 야외활동은 제약을 받는다. 훈련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동성이 있는 야외훈련은 못한다. 대신 정비시간을 갖거나 체력단련(태권도... 만만치 않게 짜증나는 훈련이다^^)시간, 정신교육(가끔은 비디오 감상^^)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물론 중간 중간에 제설작업을 나가야 한다.
이렇게 강원도 군생활은 눈과 원수지간이 되도록 만든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눈은 어느새 그리움의 존재가 되었다. 사회에 나와서 생활해보니 그때처럼 눈쌓인 풍경도 볼 수 없고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모습도 잘 보기 힘들었다.
눈 내리면 제설차가 다니면서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리고, 사람들의 활동때문에 도시에서의 눈은 빠르게 사라진다. 하지만, 눈에 의해 압도되어 감히 모두 치워버리지 못하는 군대는 보급로와 작전로만 뚫는 수준에서 눈과 타협을 했었다.
아마 지금도 내가 있었던 지역에 주둔중인 부대는 열심히 눈을 치우고 있을 것이다. 하루 하루 내리는 눈을 저주하며 제설작업으로 젖은 전투화와 전투복을 말리며 담배를 물고 물끄러미 하늘을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사진 몇장을 보면서 지금은 웃으면서 눈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당시엔 절망적이었다. 하루 종일 눈치우고 침상에 골아떨어진 전우들을 보면서, 우리가 나라지키러 온건지 눈치우러 온건지 구분이 안되는 당시의 상황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지금 애인이나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자분들... 첫 눈 내린다고 또는 눈내리니까 아름다운 추억이 생각난다고, 눈이야기로 메일이나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생각해 보고 보내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 당시 근무했던 17~18년 전과 다르게 병영생활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눈은 군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시, 제설작업을 독려하기 위한 우리 중대장의 말이 지금 생각해도 가관이었다.
'제군들은 오늘 눈과 전투를 하는 것이다. 눈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마음으로 제설작업에 임하기를 바란다. 멋지게 싸워서 이기도록 하자'
당시 초겨울부터 시작된 마좌리의 제설작업은 3월이 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전우들이 보고싶다. 모두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 마좌리... 22사단에서 근무했었고, 53연대 해안과 내륙을 번갈아 오갔다면 한번쯤은 가봤을 곳이다. 마좌리 부대 언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승과 저승의 고개처럼 높고 힘들었던 마좌리 언덕,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멈추지 않았고, 제대했다. 힘내시라, 전우들이여!
2006/06/04 - [킬크로그] - '스티브 승준 유'를 보며 생각난 나의 군생활(1)
2006/06/04 - [킬크로그] - '스티브 승준 유'를 보며 생각난 나의 군생활(2)
2006/06/04 - [킬크로그] - '스티브 승준 유'를 보며 생각난 나의 군생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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