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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三國)은 잘 알고 있지만, 고령을 중심으로 하여 나중에 신라로 병합된 대가야(大加耶)의 존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대가야는 역사시간에 희미하게만 기억하고 있는 고대국가였을 뿐이다. 

서기 42년부터 562년 신라 진흥왕의 공격으로 멸망할 때까지 520년간 지속되었던 대가야는 전성기때 지금의 경북 고령을 중심(동쪽)으로 북쪽으로는 전북 무주, 서쪽으로는 전남 순창 남쪽으로는 전남 여수, 경남 의령까지 세력이 미치는 국가였다.

대가야 세력도


가야는 대가야 외에도 김해의 금관가야, 고성의 소가야, 상주의 고녕가야 등 총 7개의 가야문화권을 형성하며 500여년간 서부경남과 동부전남 지역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때는 백제와 왜와 함께 신라를 공격할만큼 힘도 있었고, 중국 남제와 왜와 교역을 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존재를 알리고 있었던 국가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가 정착되고 함참 신라와 백제가 경쟁을 할 때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

500여년간 지속되었던 대가야의 흔적을 모아놓은 곳이 바로 고령읍 지산리에 세워진 대가야박물관이다. 대가야박물관은 당시 왕릉들이 모여있던 지산리 고분군터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 박물관과 왕릉전시관이 있다.

대가야박물관 입구


고령 IC에서 나와서 고령군청 방향으로 약 10여분을 달리면 가야대학교를 지나 고령읍내로 들어가는 언덕에 지산리 고분군이 있는 주산(主山)의 기슭에 대가야박물관과 왕릉전시관이 들어서 있다.

주차는 박물관 입구쪽에 약 40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과 길건너편에 아주 넓은 대형주차장이 있다. 박물관 길건너편에는 대가야 테마파크가 들어서 있는데, 테마파크는 주로 토기, 가야금, 입체영상관람 등의 체험관 위주로 운영되는 곳이다.


대가야박물관 본관은 야외전시장과 강당 등을 지나 제일 안쪽에 위치해 있다. 매표는 박물관입구에서 자동판매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을 받는다.

매표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 빠르게 입장이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신종플루의 영향으로 입구쪽엔 열감지 카메라가 설치되어 방문객들의 체온을 감시하고 있다.

여기서 발권한 티켓은 대가야박물관과 옆에 있는 왕릉전시실 그리고 고령읍쪽에서 가까운 쾌빈리 우륵박물관까지 입장할 수 있다. 따라서 박물관을 나오면서 티켓을 버리면 안된다.

전시실은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으며, 1층 기획전시실 오른쪽엔 어린이체험학습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박물관 주요 관람객들은 학생들이 많다. 주말에는 부모님과 함께 찾은 어린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전시실을 둘러볼 때는 반드시 입구쪽에 안내 팜프렛을 챙기도록 하는 것이 좋다. 미리 한번 읽어보고 입장하여 관람하면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대가야박물관의 주요 테마는 왕릉과 거기서 출토된 토기와 각종 철기 유물, 복식을 포함한 당시의 생활상이라는 것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몇 종류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둘러보다 보면 의외로 많은 전시물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고령지역을 중심으로 서쪽 방향쪽으로는 철광석이 많아서 철과 관련된 유물들이 많다. 철은 무기와 농기구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재료로 대가야의 성장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갑옷과 함께 착용하던 철로 만든 당시의 투구


박물관에도 토기와 더불어 철과 관련된 유물들이 많다. 왕릉 발굴시에도 상당 부분 철과 관련된 유물들이 발굴되어 당시의 생활상과 시대 상황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대가야는 독자적인 토기문화로도 유명하다. 토기 기술은 가까운 신라와 일본(왜)으로까지도 전수되었다. 왕릉에서 출토된 토기뿐만 아니라 지역의 곳곳에서 토기가마터가 발견되어 이곳이 토기를 생산하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전시관 유물 상당 부분은 왕릉에서 나온 것이다. 원형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는 여건이 무덤이었기에 망정이지 사람의 손이 닿는 곳에 보관되었더라면 1,6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대가야토기는 백제나 신라의 그것과는 구분이 뚜렷하여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특히 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 그릇받침 등 대가야만의 독특한 모양의 토기들은 인상적이다. 이런 대가야토기들은 곡선미와 안정감이 특징인데, 투박하지만 당시의 토기제작기술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

야광조개국자


전시물중에 야광조개국자는 대가야가 왜와 교류했던 중요한 증거로 인용된다. 당시 야광조개는 일본 오키나와쪽에서만 나오는 특이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또 일본의 많은 고대 유물중 가야의 철로 만든 갑옷과 장신구, 왕관 문양은 대가야 양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당시 왜와 대가야의 문화적 교류가 활발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대가야 유물중 눈에 띄는 것이 더 있는데, 바로 왕관이다. 삼국시대 왕관특히 신라시대 왕관은 얼마전 끝난 선덕여왕을 통해서도 봤지만,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의 관인데 비해, 대가야 왕관은 풀잎이나 꽃잎모양이다.

다른 가야지역에서는 출토되지 않기에 대가야가 있는 고령이 통치세력이 살았던 곳임을 짐작할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가야의 왕릉들은 도굴을 당해 일본이나 다른 박물관에서 대가야의 왕관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대가야 하면 또 하나 유명한 것은 바로 우륵과 가야금이다. 대가야 사람으로 대가야말기에 신라로 넘어간 우륵과 왕의 명령으로 만든 가야금은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우리 고유의 악기다. 우륵과 가야금에 대한 것은 박물관 외에 우륵박물관에 더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2층 상설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오면 중간에 포토존이 있다. 아마도 방문객들이 관람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도록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안쪽에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 세트가 마련되어 있다. 당시의 복장을 하고 배경을 넣어 찍을 수 있는 간이 스튜디오가 있다. 1천원의 사진인화비용을 받는다.


상설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다시 박물관 입구인 1층으로 내려오면 오른쪽에는 어린이체험 학습실이 있다.


토기를 이용한 퍼즐, 탁본 및 인쇄, 민속품 체험 등 많은 종류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할만한 체험도구들이 있다. 박물관 한켠에 이렇게 어린이체험 학습장을 만들어둔 것은 이곳이 어린 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를 대표하는 경주박물관이나 백제를 대표하는 부여박물관에 비해 전시규모나 유물규모 등은 작지만 대가야박물관은 철과 토기, 가야금으로 대표되는 대가야문화를 통해 나름대로 훌륭한 우리의 역사였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대가야 왕릉전시관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우측 언덕에 커다란 시설물 하나를 볼 수 있다. 마치 이글루처럼 보이지만 왕릉을 표현한 건축물이다. 바로 왕릉전시관이다.

대가야 왕릉전시관은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무덤인 지산리 44호분 내부를 원래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은 시설이다. 실물크기로 복원되어 있어서 순장무덤의 구조와 축조방식, 매장모습, 부장품 등을 직접 볼 수 있어서 당시 순장문화에 대해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순장(殉葬)은 고대사회에서 널리 퍼진 장례문화였다. 높은 사람, 특히 왕과 같은 최상위 지배층 인사가 죽었을때 다음 세상(來世)에도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생각에 평소 데리고 있던 사람들을 같이 무덤에 안치시키는 장례문화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비인간적인 처사지만 대가야를 비롯한 고대 삼국시대에는 널리 성행했다. 신라의 경우 문헌기록에 따르면 지증왕 3년(502년)에 순장풍습을 금지시켰다고 하니, 그 전까지는 이런 매장풍습이 유행했던 것 같다.


왕을 중심으로 그를 호휘하던 군사부터 각종 수발을 들던 시종까지 모두 죽여 둥근 모양으로 매장 위치를 정해 함께 묻었다. 이때 다양한 토기와 군사무기, 칼 등을 함께 매장하였기 때문에 지금의 전시유물들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고령 지산리고분군은 고령읍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수십개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줄지어 형성되어 있다. 당시 대가야 왕족들이나 귀족들의 대표적인 장지(葬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산 능선에 형성된 고분군


고분군이 밀집해 있는 지산리 주산은 고령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좋은 위치에 있다. 서남쪽으로는 가야대학교가 보이는 쌍림면 방향으로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보이지만 고령읍이 보이는 동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지산리 고분군은 사적 79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부분의 고분들이 일제시대때 도굴되었다고 하는데, 1,500여년간 지켜진 무덤이 불과 100여년 전에 사람들에 의해 마구 도굴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박물관 전시용과 사료로 사용되는 대부분의 유물들이 도굴로 남은 것들이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귀중한 유물들이 없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대가야의 유물들이 일본에서 전시되는 것도 있다고 하니 일제시대때 상당히 많은 도굴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산 중턱에서 바라본 고령읍


주산능선을 따라 올라갈 수 있도록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는데, 이곳에 오르면 고령읍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아주 뛰어난 전망을 자랑하기 때문에 박물관을 찾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번 꼭 방문해 보길 권한다.

가장 높은 주산정상까지는 약 30분 정도가 소요되므로 천천히 쉬어가면서 올라가면 된다.

우륵 박물관

우륵 박물관은 대가야박물관에서 고령읍을 지나서 만날 수 있다. 우륵은 가야금(大加琴)을 창제한 인물로 대가야 사람이다. 대가야말기 가야국의 가실왕때 가야금을 만들었는데, 가야가 혼란에 빠지자 신라로 망명했고, 신라 진흥왕의 관심과 배려로 신라 관료 세사람(계고, 법지, 만덕)에게 음악과 춤, 노래 등을 전수하여 신라의 궁중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우륵은 박연, 왕산악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악성으로 꼽히는 분이다.


청이 있는 고령읍내 서북쪽의 쾌빈리(정정골)위치해 있는데, 길이 약간 복잡하게 되어 있고, 멀리서 건물이 잘 보이지 않아 자칫 잘 알아보기가 힘들다. 내비게이션을 통해 겨우 찾았는데, 처음엔 갑자기 한적한 시골길로 가락고 해서 안내를 잘못하고 있는 줄로만 생각했다.

건물이 낮고 진입로 쪽에도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혹 근처를 찾아가서 잘 모른다면 대가야고등학교를 찾으면 멀지 않은 곳에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대가야박물관 입장권이 있다면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박물관은 가야금과 우륵이라는 인물을 주로 전시되어 있어서 크지는 않다. 다만, 국악기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둘러봐도 남는 것이 많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국악기를 가까이서 그리고 비교해가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특히 가야금과 거문고에 대해 차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참고로 가야금은 우륵이 만들었고, 오동나무를 울림통으로 누에고치로 12현을 만들어 소리가 가늘고 여성스럽다. 이에 반해 거문고는 고구려 왕산악이 만들었으며 6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술대라는 막대를 이용하여 소리를 낸다. 소리가 가야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굵고 남성적이다.

가야금 외에도 거문고, 아쟁, 해금, 단소, 피리 등의 우리 고유의 전통악기도 함께 전시되어 있고, 각 악기의 소리가 함께 어울려 만드는 국악도 잠시동안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 바깥 한쪽에는 가야금공방을 두어 가야금을 제작하거나 수리하는 일도 하고 있다. 우륵박물관은 한적한 시골 마을의 넓은 공간에 위치해 있으며, 쉼터와 연못이 함께 마련되어 있어 관람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좋은 곳이다.


가족과 함께 가볼만한 가야문화 체험

처음에 대가야박물관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경주중심의 신라문화에 대해서는 너무나 자주 찾아가고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밖의 지역에 대해 알아보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이 될 것 같아서 찾아본 곳이었다.

대구와 인접해 있어서 금방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이번 방문의 큰 이유중 하나였다. 지금 살고 있는 성서에서 박물관까지는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구마고속도로 진입에서 88고속도로 고령 IC까지는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도 시간이 더 있다면 가까운 합천 해인사도 둘러보려 했지만, 일찍 출발하지 못한 탓에 방문은 다음으로 미뤘다.

처음으로 가본 고령이라는 도시는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하우스재배 딸기산지로도 유명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여행지로도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이다. 돌아오는 길에 당도높은 딸기 한상자 사가지고 오면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다.

늘 신라와 백제, 고구려만이 있다고 생각했던 삼국시대 역사 이야기에 대가야라는 고대국가가 있었다는 점을 다시 새기게 된 좋은 계기였다. 비록 이미 도굴된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이지만 역사적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좋은 다양한 전시품들로 구성되어 있어 볼거리도 많았다.

순장문화와 토기, 철, 가야금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던 고령의 대가야문화 체험기였다.

대가야박물관 홈페이지 : http://www.daegay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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