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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 일요일. 교토여행 이틀째를 맞았다. 도착한 어제보다는 느긋한 아침을 맞았다. 호텔에서 어제 저녁 교토역 지하 이세탄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구입한 초밥과 장국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참고 : 2018/12/13 - [교토] 교토여행 코스에 대한 고찰

오늘은 교토의 동쪽을 훑어서 내려올 생각이다. 제일 많이 돌아다니는 날이므로 원데이버스패스를 구입했다. 그리고 바로 교토역 승강장으로 이동. 목적지는 은각사(긴카쿠지). D1 승강장으로 가면 은각사를 갈 수 있는 100번 버스가 온다. 제복을 입은 보조요원들이 질서유지를 위해 승객들에게 안내를 한다. 물론 일본어로.

100번을 타는 승객 상당수는 은각사행 이며, 외국인들이 많다. 오늘은 일요일이어서 일본인들도 많았다. 출발지이므로 좌석에는 앉아서 갈 수 있었다. 100번은 33간당,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야사카신사, 헤이안신궁을 거쳐 은각사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40여분.

앉아서 창밖구경을 하다보면 오늘 들를 곳들의 주요 명소들을 지나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은각사 구경을 마치면 100번 버스로 이동을 해도 주요 명소들을 지나게 되므로 100번 버스만 잘 타도 하루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다.

교토의 사찰들을 다녀보면 익숙한 풍경이지만, 사찰로 가기 전 골목은 먹을거리와 기념품 가게로 분주하다. 가면서, 오면서 입을 즐겁게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꺼리들이 많다.

은각사(긴카쿠지) 입구와 경내도인데, 생각보다 넓네? 하고 느낄 수도 있지만 막상 구경해 보면 여행객이 가봐야 할 곳은 그렇게 넓지는 않다.

은각사 즉 긴카쿠지는 14세기부터 시작된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세운 사찰로 원래는 주거를 목적으로 하는 별장이었다.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별장으로 지었다가 선종사찰로 바뀐 금각사를 본떠 은각(관음전)을 지은 것에 유래하여 은각사라 불리기 시작했다.

물론 은각(관음전)은 대표건물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히가시야마 지쇼지(東山 慈熙寺, 동산 자희사)가 정식명칭이다.

관음전(은각)

교토의 동쪽 산이라 하여 히가시야마(東山)의 대표적인 건물로 히가시야마도노(東山殿)로 불렸었다. 쇼군의 저택이었다가 주인이 사망하면서 유언으로 선종사찰로 바뀐 건물이다.

무로마치 시대 초기의 금각사가 북산(北山)문화를 이끌었다면, 은각사는 동산(東山)문화를 대표하는 사찰로 알려져 있다. 같은 문화적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조금의 시간적 차이로 변화가 생기면서 금각사와 은각사는 비교의 대상이 되곤한다.

입구는 조금 특이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나무숲처럼 생긴 길(울타리)을 따라가서 왼쪽으로 틀면 매표소와 실제 입구가 나타난다. 1인 500엔. 교토의 사찰입장료 중 가장 적절한 금액이라고 보여진다. 400엔이면 더 좋을 수 있겠지만, 600엔 가치를 못하는 사찰도 있으니...

돌, 대나무, 동백으로 만들어진 울타리 길

은각사의 입구는 돌과 대나무, 동백나무로 깔끔하게 정리된 50여미터의 울타리를 거쳐 들어가게 만들어놨다. 쇼군의 별장답게 적의 침입을 대비하여 만든 시설임을 직감할 수 있다. 초입에서 마당까지 이어진 길이다. 이 길의 끝에 사찰 내부 입구가 시작된다.

이름과 역사 때문에 여러모로 금각사와 비교를 하게 되는 것이 은각사의 운명인데, 대부분 규모도 더 작은 은각사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 눈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나 역시 금각사보다 은각사가 나아보였다.

깔끔한 조경모습이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고 있다. 다시 구부러진 길(ㄹ모양)을 따라 들어가야 본당과 은각(관음전)이 보인다.

아침부터 정원사는 흐트러진 모래를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들의 이런 꼼꼼한 작업으로 흐트러짐 없는 일본식 정원의 풍광을 손님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방문객을 신경쓰지 않고 본인의 일만을 묵묵히 하는 모습에서 장인의 정신이 느껴진다.

관음전(은각)과 연못 옆 모래정원은 향월대로 유명하다. 다른 사찰 정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양의 모래탑(긴샤단, 銀沙灘, 은사탄)은 향월대(向月台, 고게츠다이)라 부른다.

멀리서 보면 우리나라의 밭에 이랑을 판 느낌으로 다가온다. 향월대는 바람불면 날아갈듯한 모습이나, 정원사들의 작업에 의해 계속 유지되는 것 같다. 인공적인 아름다움이지만, 예술품을 집앞 정원으로 꾸민다는 것은 많은 정성과 생각의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

정원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답다. 특히 잘 자란 노송과 단풍나무는 교토라는 지역의 느낌과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풍광을 뽐냈다. 늦가을 사찰 곳곳에  떨어진 단풍잎은 절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재료였다.

꽃과 나무, 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는 이끼도 잘 가꾸어져 있다. 이끼로 만들어진 정원도 감탄이 날만큼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질 정도다.

금각사가 먼 발치에서 보는 건물의 모습이 인상적이라면, 은각사는 정원의 아기자기함과 관리의 세심함에 놀라게 된다.

정원과 이어져 있는 작은 산길을 올라가면 언덕에서 교토의 서쪽 도심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나온다. 교토는 이처럼 중심지가 분지여서 조금만 산으로 올라가도 시내가 보인다. 천룡사 언덕에서 봤던 것처럼 말이다.

정원을 돌아 산길 언덕을 올라 내려오면 은각사의 짧은 여정은 끝난다. 은각사는 본당, 강당, 서원 같은 사찰건물은 그렇게 관심을 받지 못한 것 같다. 그냥 은각사는 정원을 구경하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사실 12월 2일 당일까지 본당과 동구당 등을 구경할 수 있는 특별기간으로 정해 있었으나, 1,000천엔을 주고 볼만큼 관심이 없어서 그냥 정원투어만 했다.

은각사 투어를 마치고 나오니 이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조금 일찍 둘러본 것이 다행이었다. 나가면서 빨리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입구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철학의 길로 간다.

 

철학의 길을 걷다

'철학의 길'이라 하여 뭐 대단한 그런 명소까지는 아니다. 은각사 앞으로 흐르는 작은 개천을 따라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개울 사이로 벚나무들과 단풍나무들이 가로수 역할을 하고 있어서 풍광이 좋은 길이기 때문이다.

봄과 가을에는 각각 벚꽃과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는 좋을 것 같고, 걸으면서 길가에 있는 카페에서 바깥풍경을 즐기기에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일본의 유명 철학자가 사색을 하는 산책로로 애용하면서 이 길에 이름이 붙었다 하는데, 건강을 위해 걷기를 좋아한다면 추천... 아니라면 조금 걷고 버스를 타고 다음 여정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

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호넨인(法然院, 법연원)과 안라쿠지(安樂寺, 안락사), 레이칸지(靈鑑寺, 영감사)가 왼쪽 산쪽으로 들어서 있다. 레이칸지 올라가는 반대편에서 철학의 길을 끝내고(사실 더 아래로도 이어져 있다) 헤이안 신궁으로 발길을 돌렸다.

철학의 길에서 헤이안신궁으로 걸어 가는 길

헤이안신궁까지는 걸어서 약 1km 정도 천천히 걸으면 25분, 빠르게 걸으면 15분이면 도착할 걸리여서 버스보다 걸어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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