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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남자인 나는, 생활 반경이었던 경상남북도와 군생활을 했던 강원도를 많이 다녔었다. 생활권인 경상도는 당연히 여행코스 1순위로 다녀서, 경주, 포항, 안동, 청도를 비롯 남쪽으로는 부산, 마산, 창원, 고성, 사천 등으로 여러 번 다녀왔다. 대부분 당일 또는 1,2박 정도의 짧은 여행으로 부담 없이 갈 수 있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직장이 바뀌어 생활권이 수도권으로 옮기면서 고향인 경상도 지역으로의 여행은 줄었지만, 대신 군생활을 했던 강원도 고성, 속초를 비롯, 강릉, 평창, 영월, 춘천 등은 나름 수도권에서도 가까운 인기 관광지여서 자주 다녔었다. 하물며 서울의 서쪽인 인천, 강화쪽은 주말에 드라이브 다녀오는 수준으로 많이 다녔었다.
유독 내가 잘 안 가본 곳은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목포를 가 본 것도 지난 20년 여름이 처음이었으니, 업무차 방문했던 광주를 비롯한 전주, 익산 정도가 있었고, 몇 년 전엔 군산에 1박 2일 여행 다녀온 정도가 전라도 여행의 전부였다. 충청도는 업무나 고향 가기 위해 지나는 정도의 지역이어서 여행의 기억은 거의 없다.
그래서 결심했다. 여름이 오기 전에 잘 안 가본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 여행을 떠나보겠다고. 그것도 내륙보다는 바닷가인 서해와 남해쪽으로 가겠다는 계획으로 연차 3일을 포함, 주말 끼워 총 5일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아내와 단둘이 가는 여행이라 간단한 며칠치의 옷가지 챙기고, 며칠간 먹을 간단한 아침 식사 정도를 챙겨 토요일 새벽에 나섰다.
첫 여행지는 충남 태안 천리포로 결정했다. 수도권 서쪽인 광명에서 태안으로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가 최적의 여행길이다. 고속도로 정체만 없다면 2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리지만, 요즘 나들이가 많은 관계로 일찍 나서지 않으면 많은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게 된다. 그래서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로 가보기로 했다. 시간은 다소 더 걸리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동네 구경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였다.
5월 중순의 토요일은 성수기라, 숙소는 일주일 전에 잡았는데, 거리를 생각해서 서천의 춘장대해수욕장 근처에 잡았다. 토요일 하루 여행거리가 그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 잘 한 선택이었다. 또한 하루 250km 이동, 명소 2곳 정도를 트래킹하며, 구경하며 다니면 딱 적당하다는 결론.
[국내 최초의 민간 수목원 태안 천리포 수목원]
아침 6시 30분 광명을 나서서, 평택에서 아침 해장국을 사먹고 10시 30분경에 도착한 곳이 '천리포 수목원'이었다. 바로 아래 '만리포 해수욕장'이 더 유명하지만, 해수욕하러 온 것이 아니어서 천리포로 향했다. 천리포로 가려면 아래 쪽인 만리포를 지나 올라가야 하는데, 확실히 만리포가 관광지라는 느낌이 강했다. 여러 시설, 상가가 많이 보였다.
천리포 수목원 홈페이지 : http://www.chollipo.org
수목원 입구로 가면 크게 3개의 주차장이 있는데, 무료 주차 가능하다. 다만, 성수기에 사람들이 몰릴 때에는 주차가 조금 어려울 수 있을 거 같으나, 안내원이 따로 있어서 주차는 충분히 가능할 거 같다. 입장료는 3월~11월까지는 성인 1인 9,000원, 12월~2월까지는 6,000원이다. 지방의 수목원 치고는 비싼 느낌이 있다. 그래도 국내 민간 수목원 1호라 하니 의미는 있다.
관람 순서는 입구에 비치된 팸플릿에 설명되어 있으니 꼭 챙길 것. 수목원은 천리포 해변을 끼고 삼각형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입구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관람을 하면 된다. 넉넉한 시간 여유를 가지고 왔다면, 천천히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중간에 쉬면서 이동하는 것을 권한다. 관광지 핫스폿 훑듯이 지나가면 나중에 후회한다.
매표소와 안내소를 지나면 바로 앞에 '건생초지원', '남이섬수재원', '암석원'이라고 붙은 작은 관람포인트가 있다. 바로 이어 '큰연못정원'이 나오는데, 수목원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연못 맞은편엔 기념관 건물도 보인다.
연못 위쪽에는 '습지원'이 있고 석탑도 하나 있다. 이곳은 수목원을 다 둘러보고 들러보면 좋을 거 같다. 입구 포토존과는 다른 느낌이 나므로 입구쪽으로 사진 촬영하는 분들도 많다. 뒷 배경으로 연못이 나오는 풍광이 멋있다.
약 18만평의 수목원엔 목련, 동백나무, 호랑가시나무, 무궁화, 단풍나무를 비롯하여 약 1만 7천 개 분류의 식물들이 있다고 안내되어 있는데,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즉, 다른 수목원들과 달리 아주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으니 참고할 것.
식물을 좋아하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흥미롭겠지만, 나같은 무심한 사람에게는 그냥 조용하고 예쁜 풍경만 눈에 들어온다. 유명 수목원, 식물원과는 다르게 자세한 식물에 대한 설명이 따로 없으므로 실망하지 말자. 멸종위기식물 전시온실도 규모나 크기가 작다.
둘러보는 중간중간에 숙소같은 집들이 나타나는데, '가든스테이(가든하우스)'라고 부르는 숙박 가능한 시설이다. 휴양림의 숙박시설처럼 예약이 가능하고, 후원자일 경우 할인(30%)이 되는데, 1박에 21만원(비수기), 27만원(성수기)의 요금을 받는다. 식물원안에서 가족과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시설이다. 자세한 것은 홈페이지에서 확인.
천리포 수목원의 장점은 바로 옆 천리포해안이 있다는 것이다. 서해 바다가 바로 앞에 있어서, 산책을 하기도 좋은 장소다. 물론 여기보다는 만리포 해수욕장이 먹고, 놀기에는 좋을 것 같다. 그냥 산책과 힐링이 필요하다면 천리포 해안이 조금 더 나을 거 같다.
바닷가 쪽 작은 섬은 '낭새섬'이고 조수간만의 차이로 하루 2번 길이 열린다고 한다. 낭새섬은 공식 명칭이 아니고, 지역민들은 '닭섬'이라 부르는데, 위에서 보면 모양이 수탉처럼 생겼다. 낭새섬은 수목원 땅이어서 수목원에서 관리한다. '낭새'는 '바다직박구리'의 다른 말이다. 갯벌체험이 가능하다고 한다.
수목원 중간에 기념관이 있는데, '민병갈 기념관'이라 되어 있어서, 수목원 설립자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분이 원래 한국사람이 아닌 미국인이었고, 귀화 한국인이다. 기념관 옆엔 흉상도 있는데, 왜 한국에 와서 수목원을 만들게 되었는지는 기념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명은 'Carl Ferris Miller'로 독일계 미국인이다.
우리나라가 해방될 때 미군 정보장교로 와서 귀화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문화, 자연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태안에서 부지를 매입하고 나무를 심어 수목원을 만들었다. 1962년에 부지 매입, 1970년에 수목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분이다. 2002년 81세에 돌아가셨고 한국땅에 묻혔다. 호는 '임산'이며, 기념관 2층에는 그의 생애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수목원 곳곳은 휴양림처럼 앉아서 쉬거나 산책할 수 있게 되어 있으나, 공중화장실은 기념관 뒷쪽과 입구 매표소 밖에 없으니 참고.
천리포 수목원은 국내 최초의 민간 수목원이라는 점과 다양한 식물이 식재되어 관리된다는 점에서 투박하지만 정겨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세련된 온실과 식물 표지, 안내자료가 없더라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쉬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이다.
블로그에 수목원 곳곳의 사진을 올리기 싫다. 그냥 수목원은 거기 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니까. 이 글을 읽는 분도 일반적인 내용만 참고하고 방문하면 도움이 될 거 같다.
아이들은 다소 지루해 할 수 있겠으나, 썰물 때 낭새섬으로 갯벌체험하러 간다면 좋아할 수도 있겠다. 수목원 다 돌고, 천리포해안을 거닐어 보는 것도 좋겠다. 낙조를 기다리기엔 시간이 애매할 수 있다. 지금처럼 일조시간이 길 때는 말이다. 그땐 가까운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가면 되겠지.
만리포 해수욕장은 길이 2.5km의 긴 해변으로 수심이 얕으며, 모래가 고와서 서해 3대 해수욕장(대천 해수욕장, 변산 해수욕장) 중 하나라고 한다. 방파제에선 낚시가 가능하고, 우리나라 서쪽 땅끝이라는 뜻의 '정서진' 이정표가 있다. 어르신이라면, 반야월의 '만리포사랑'이라는 노래로 지명을 기억하실 수도.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그러나, 우리는 만리포 해수욕장은 가지 않았다. 번잡한 것은 싫거든. 이제 안면도로 간다.
서해 남도 여행(2) 안면도자연휴양림, 안면도수목원 그리고 보령해저터널 (cuse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