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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서 남해로 가는 길은 그렇게 멀지 않다. 순천드라마촬영장을 나서 바로 옆동네 광양, 하동을 거치듯 남해고속도로만 타면 남해군 입구는 30분이면 도착한다. 광양은 제철소 중심의 공업도시이지만, 남해는 농어업 중심의 조용한 느낌을 받는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남해의 도로를 달리면서 서쪽 광양을 바라보면 공단의 플랜트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반면 남해 내륙을 바라보면 산과 들 그리고 남해 바다가 보이는 대조적인 모습이 펼쳐진다.
2018년 9월에 개통된 노량대교는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를 잇는 다리인데, 육지 하동과 섬인 남해를 이어주는 두 번째 대교다. 19번 국도가 잘 정비되어 있어 이제는 남해대교보다는 노량대교 이용차량이 훨씬 많다. 보리암이 있는 금산을 가기 위해서는 19번 국도를 따라 이동면까지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데, 가는 중간 남해군청 소재지인 남해읍을 지난다. 남해군은 중심 섬이라 할 수 있는 군소재지 남해도와 사천쪽에 가까운 창선도의 큰 두개의 섬과 작은 부속섬들로 구성된 지자체다.
남해는 멸치가 유명한데, 특히 죽방멸치가 유명하다. 남해도와 창선도 사이의 지족해협의 죽방멸치는 빠른 물살과 낮은 수심조건으로 죽방렴을 통해 잡히는 멸치를 말하는데, 오래된 우리 조상의 전통어업방식이다. 물론, 죽방렴에서 잡히지 않은 멸치도 죽방멸치라고 유통되는 것들도 많아서 사실상 구분은 어렵다고 한다.
남해군은 관광안내에는 상당히 소홀한 것 같다. 남해군청이 바로 근처에 있는 남해읍에서 관광안내소를 찾아가보니, 시설만 있고 아직 운영도 하고 있지 않았다. 새롭게 건물을 만들고 조성된 것 같은데도, 기존 관광안내소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관광 안내자료는 금산 보리암까지 가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남해의 죽방멸치도 남해보다는 바로 옆 사천시 삼천포에서 더 많이 팔린다. 창선도와 이어진 삼천포는 오래 전부터 수산물로 유명했고, 관광지로 명성이 나 있다 보니 자연스레 건어물과 같은 수산품도 남해보다 삼천포에서 더 구입하기 쉽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본가 처가에 멸치라도 사서 보낸다고 상설시장인 남해전통시장에 들렀다. 크지 않은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니 건어물 가게가 생각보다 몇 개 안되고, 그나마 1개 점포는 문을 닫아버렸다. 나머지는 대부분 일반 재래시장의 지역 특산물과 횟감이 주로 판매가 되고 있었다. 느낌이 조금 좋지는 않았지만, 건어물상 한 곳에 들러 볶음용과 국물용 멸치를 사서 바로 양가로 택배를 붙였다.
[금산 보리암]
남해읍에서 보리암이 있는 이동면과 상주면에 걸친 금산까지는 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20분이면 금방 도착한다. 복곡저수지가 바로 아래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 복곡주차장이다. 주차요금은 소형차 기준 5,000원이며 하루 동안 유효해서 주차장을 나갔다 와도 재입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복곡주차장이 아니라 보리암 매표소가 있는 복곡2주차장까지다.
보리암이 있는 금산 정상 높이가 해발 704m이다 보니 복곡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 구불구불한 산길로 3km 이상을 가야 하기 때문에 차량 이동은 필수다. 그래서 보통은 복곡주차장에서 주차하고 왕복 2,500원 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극성수기가 아닌 지금은 복곡2주차장에 빈자리를 노려보는 것이 좋다.
주차장 입구부터 복곡2주차장 올라갈 차량은 2열로 줄을 서서 대기하는데, 약 15분 정도 기다려 우리가 올라갈 차례를 만났다. 주차관리 요원의 안내에 따라 2주차장에서 내려오는 차량 숫자만큼 차를 올려 보냈는데, 한 번에 2~3대씩만 보냈다. 2주차장까지 올라가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올라가는 도로 폭도 좁고 구불구불해서 교행을 쉽게 할 수 없는 도로 사정이 영향이 크다.
입장권은 문화재관람료 성인 1인 1,000원이다. 보리암은 사실상 주차비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복곡탐방지원센터이며, 매표소인 이곳에도 남해 관광안내 자료나 보리암에 대한 자료는 하나도 없다. 이번 서해 남도 여행에서 이곳 남해만 관광안내도를 찾지 못했는데, 남해군 관광안내소는 공사중, 이곳 보리암 탐방소에도, 보리암 사찰에도 자료가 없다는 점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매표소에서 보리암까지는 약 800m 정도 되는데, 빠른 걸음으로는 15분 정도면 되지만 20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 시원하고 너른 숲길로 되어 있으니 천천히 가면서 깨끗한 공기 마시며 같이 가는 분들과 담소 나누면 좋다. 평지가 아니라 언덕이라는 점이 조금 힘들게 느껴진다.
계속 걷다 보면 고갯마루인듯한 언덕 같은 곳이 나오고 작은 전망대가 있는데, 바로 산 아래와 저 멀리 남해를 볼 수 있다. 아래 집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과 바다가 바로 상주은모래해수욕장이다. 이제 다 왔다.
보리암 입구를 알리는 입간판이다. 보리암은 기도 사찰로 해수관음상이 있다.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 네 곳이 우리나라 4대 해수관음 성지인데, 그중 하나다. 나는 보리암에 들르게 되면서 네 곳을 모두 방문해 본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보리암은 신라 원효대사가 처음 만들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태조 이성계가 100일 기도를 하고 조선을 건국했다는 기록이 있어 기도와 관련되어 유명한 곳이다. 부처가 아닌 관세음보살을 모시기에 대웅전은 없고, 보살을 모신 보광전이라는 중심 전각이 있다. 보리암은 하동 쌍계사의 말사 암자다.
입간판 설명에는 '부처님의 가피'를 잘 받는다고 쓰여 있는데, '가피(加被)'란 불교용어로 더할 가, 이불 피 자를 쓰는데, 부처님이나 여러 불보살들이 자비를 베풀어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힘을 말한다. 즉, 소원을 빌고 기도하면 잘 들어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보리암이 있는 금산은 탐방로로도 인기가 있는 지역인데, 부근의 자세한 트레킹 지점을 안내하고 있다.
이제 본격 보리암의 입구로 다가간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사찰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방문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포토존이 바로 극락전 모서리 부분이다. 남해를 배경으로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만큼 보리암의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보리암을 방문한 5.17(화) 낮은 먼지가 조금 끼긴 했지만 날은 맑아서 바다 풍광이 아주 좋았다. 특히 사찰 건물과 어우러져 바라보는 남해는 아름답고 푸르렀다.
해수관음상(해수관세음보살상)은 연화대 위해 왼손에 약병을 들고 남해를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이곳의 기도는 아픈 사람을 낫게 해 달라는 바람이 간절한 것이 아닐까. 1991년 한 기업가의 후원으로 세워졌으며, 육로 운반이 여의치 않아 헬기를 이용해 탑대(연화대)에 안치했다고 한다.
보리암전 3층 석탑은 가야 김수로왕의 허왕후(인도 출생)와의 인연이 있는 것이라 하는데, 허황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원래 김해 호계사에 봉안된 것을 옮긴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축조 양식은 고려시대의 것을 취하고 있어서 가야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한다.
원래 금산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이었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금산으로 이름을 바꾸고, 보광사였던 절 이름도 보리암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보리'라는 이름은 불교와 관련이 깊은데, 부처가 '보리수' 아래서 명상하고 설법했던 것을 생각하면 왜 이 사찰이 보리암으로 불리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다.
이성계와 관련이 있다 보니 극락전 아래는 이성계가 100일 기도를 했다는 선은전이 있다. 내려가서 올라오는 것이 두려워 내려가 보지는 않았다. 대신, 근처 금산 정산에 올랐다.
금산 정상은 보리암에서 가깝고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어서 가볼만하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을 바로 만날 수 있는데, 큰 바위 덩어리가 있어서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정상엔 봉수대가 있다. 이곳 남해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니 봉수대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저 아래 남해바다와 섬들이 보인다.
왼쪽 내륙 쪽으로는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보이는데, 하동, 사천 쪽이 보인다. 오른쪽은 광양이 바로 보인다.
남해를 찾는다면 대부분 여름휴가철 상주면에 있는 해수욕장을 찾거나, 창선도를 거쳐 삼천포 일대에서 수산물을 즐기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 이곳 금산 보리암인데, 한번 방문해 본 사람들은 주차의 어려움을 알고, 조금은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점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일단 와보면 너무나 잘 왔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다시 와도 늘 남해의 절경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해할 것이다.
오전 두 곳의 관광을 마치고 늦은 점심(오후 2시)을 맞았다. 아내가 남해에 가면 꼭 멸치쌈밥을 먹고 싶다고 해서,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가게를 찾아 나섰다. 남해도의 동쪽, 독일마을 뒷산 넘어에 있는 삼동면 '남해향촌'이라는 가게다.
난 어릴적부터 멸치를 좋아하지 않아서 잘 먹지 않는데, 더군다나 이렇게 큰 멸치를 찌개처럼 만들어 쌈을 싸 먹는다니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설득 끝에 처음으로 먹어봤는데, 비린내는 거의 나지 않았다. 비주얼을 따지면서 음식 가리는 내게 조금은 먹기 싫은 모양새였지만 맛은 좋았다.
그나저나 티맵은 최단거리로 설정하면 완전 시골산길로도 안내하는데, 산 하나를 오솔길로 넘을 뻔 했다. 왕복도 되지 않은 흙길을 안내하다니... 혹시나 궁금한 분들(운전 실력이 뛰어난 분 한정)은 보리암에서 남해향촌으로 티맵 최단거리 경로로 가보시길. 도착해서 아내의 등짝 스매싱을 맛 볼 수 있다.
남은 오후 시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소설 토지의 고향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으로 간다.
서해 남도 여행(10) 소설 토지의 고향,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