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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가 반가운 계절이 왔다.
덥고 습한 여름날 생각나는 것 중 하나는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된 맥주 한잔이다. 이젠 몇 개 안 되는 거기서 거기인 맛만 나는 국산 병맥주가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맥주나, 혹은 똑같은 맛은 거의 찾기 어려운 국내 수제맥주도 쉽게 마실 수 있는 시절에 살고 있다.
4캔에 1만 원, 6캔에 1만 원 맥주는 편의점 인기상품이었다. 이젠 4캔이 1만 1천 원으로 올라 아쉽긴 하지만, 맛있는 맥주 500ml 4캔을 마음껏 고를 수 있는 지금이다.
세상 맥주는 모두 같은 맛만 나고, 좀 더 알콜 도수가 높고, 낮은 것만으로 구분하는 줄 알았는데, 15년 전 유럽 출장을 다녀와서 맥주가 이렇게 다양한지 처음 알았던 내게는 카스, 하이트, OB맥주는 이제 저 세상 맥주가 되어 버렸다. 어느덧 국내 생산 맥주는 회식자리 공식 칵테일이 되어버린 '쏘맥'이 재료로만 보일 뿐이다.
올해 초 나는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IPA 맥주를 만나게 되었다. 세상 맥주는 모두 같은 종류인 줄 알았던 필스너는 이제 어쩌다 마시는 맥주가 되었고, 주로 에일 맥주, 그것도 도수가 좀 더 높고 쓴 맛이 더 강한 Indian Pale Ale(IPA)를 더 즐긴다. 배고플 때 마시는 흑맥주가 아닌 경우 내가 고르는 맥주는 대부분 IPA가 되었다. 또한 목넘김 부드러운 밀맥주는 이상하게도 더 손이 가지 않더라.
그러던 어느날 문득 편의점에서 만난 IPA가 있었으니, 바로 Lagunitas IPA다. '라구니타스'라고 읽는데, 맥주캔에는 친절하게도 'lah goo knee tuss'라고 말하라고 적혀있다. 발성대로 하자면 '라-구-니-투스'가 되겠지만, '라구니타스'라고 읽는 것이 정답.
Lagunitas IPA는 미국맥주이며, 하이네켄이 지분 인수한 회사다. 그래서 하이네켄코리아가 수입해서 유통하고 있다. 내게 이 Lagunitas라는 맥주에 대한 첫 기억은 몇 년 전 어느 맥주펍에서였다. 파인트(Pint) 잔에 진한 갈색을 자랑하며 나왔을 때 한 잔의 가격이 무려 1만 원이었다. 세상에 무슨 맥주가 이리 비싸냐며, 맥주 이름이라도 알아야겠다 싶어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지금도 '라구니타스'라는 이름은 낯설고 부르기 힘들다.
이 맥주를 만드는 회사는 'Lagunitas Brewing Company'이며, 미국 캘리포니아 작은 도시인 페탈루마(Petaluma,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있다. 맥주 이름이 Lagunitas인 이유는 1993년 회사가 문을 연 곳 지명이 Lagunitas였기 때문이고, 창립 1년만에 현재의 페탈루마로 옮겼다 한다.
2015년 하이네켄이 지분 50%를 매입하면서 독립 양조장 체제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한 맥주회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국내에도 입소문을 타고 일부 수입이 되었을 때 이미 이 회사는 미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맥주회사가 되었다고 한다.
맥주 맛은 IPA에 걸맞은 향과 맛을 지니고 있다. 6.2%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알코올 도수에 적당한 홉의 향과 적당히 쓴 맛이 아주 잘 어우러져 있다. 여기에 단 맛이 좀 더 가미되어, 누구의 입맛에도 딱 맞다는 느낌이 든다. IPA 중에서도 과일향을 강조하거나, 너무 쓴 홉향을 가진 것도 있는데, Lagunitas는 적당하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묵직함을 나타내는 바디감은 약한 편이다. 오히려 약간 라거같은 느낌도 드는데 그만큼 마시기에는 만만하다고 볼 수 있다.
전에 소개했던 Goose IPA도 그렇고 Lagunitas IPA도 그렇고 용량이 473ml인데, 그 이유는 미국 맥주라는 공통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이 보다 작은 355ml의 작은 캔도 미국 음료 크기의 표준인데, 미국 무게(혹은 부피) 단위 12oz(온스)용량이기 때문이며, 473ml는 16온스다. 500ml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미터법 보다 여전히 야드파운드 법을 더 사용하는 미국 단위여서 그런 것이다.
흔히 파인트(Pint) 잔으로 불리는 맥주컵의 용량이 473ml인데, 가득 채워야 473ml(16온스)가 되지만 사실 사진처럼 저렇게 나오면 파인트 용량이 아니다. 그래서 수제맥주집에 가면 거품보다는 맥주가 넘쳐흐르기 직전까지 가득 채운 잔을 가져다주는 이유는 정량의 맥주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사실 거품은 탄산과 관련 있다 보니, 도수가 높은 IPA 맥주에는 별 도움 되지 않고, 맛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참고로, 파인트 단위는 미국과 영국이 다르며, 영국의 파인트가 더 용량이 크다.
Lagunitas IPA를 만나기 전에는 주로 Goose IPA나 제주펠롱에일을 즐겼다. 가끔 이들이 질릴 때는 광화문 IPA 아니면, IPA라는 이름을 단 새로운 맥주는 웬만하면 다 사서 먹어 봤다. 그냥 IPA 탈을 쓴 수제맥주가 너무 많다. 그리고 5% 이하 IPA 맥주는 IPA를 아는 사람은 구매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IPA가 아니다. 심지어 Lagunitas에서 만드는 Daytime IPA(4%)도 마찬가지.
여담이지만, 토스카드로 편의점 맥주를 자주 사다 보니, 토스는 내게 '편의점VIP'라는 태그를 달아줬다. 1만 1천 원이지만, 최근엔 주요 프랜차이즈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면 500원 캐시백 해준다. 지난달까지는 300원이었다. 500원 아낄 수 있는 방법이다 보니 토스카드는 거의 편의점 맥주용 결제수단이 되었다.
어제는 처음으로 AppleWatch를 통해 네이버페이 토스카드 결제를 해봤다. 최근 1.10.0 버전 앱 업데이트 이후 신용/체크 카드를 네이버페이 카드로 등록하면 주요 편의점에서는 QR결제가 지원된다. 오호 이거 좀 편리하다. 운동 또는 산책하러 나갔을 때 주머니에 폰만 가지고 있어도 편의점에서 간단한 것은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Lagunitas IPA로 넘어와서... 캔 바탕 디자인과 로고처럼 그려진 개(dog) 그림이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얘들을 이 회사에서는 'LaguPups(라구펍스)'라고 부른단다. 실제 맥주를 판매하여 생긴 수입 중 일부를 개들을 위한 단체에 기부한다고 하는데, 회사 사무실과 공장에는 임직원들이 키우는 반려견들이 함께 생활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정말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인가보다. 심지어 누구네 멍멍이라고 소개까지 한 페이지가 있다. 문구도 인상적이다. 'Beer Speaks. Dogs Drool' '맥주가 말을 하고, 개는 침을 흘린다'
스토리가 있는 맥주여서 그런지 알고 나니 더 맛있는 것 같다.
정말 맥주가 말을 하는 것 같다. '나 맛있는 맥주야!'
인생의 쓴맛일까, 편의점 세계맥주 Goose Island IPA (cusee.net)
Lagunitas IPA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GS편의점과 CU에서 볼 수 있었는데, 지점마다 취급하는 곳과 그렇지 않는 곳들이 있으며, 아예 이 맥주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편의점들이 몇 몇 있었다. 대형마트 중에서는 이마트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 역시 공급물량 때문인지 다음 번에 갔을 때 없는 경우도 있었다.
맥주 사러 갔다가 Lagunitas IPA 만나면 득템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공급을 조금 더 늘여줬으면 좋겠다.
IPA 좋아하시는 분들, 싱거운(?) 맥주에 식상하신 분들, 집 주변 편의점에 이 맥주 보이거든 얼른 집어서 결제 하시라. 이런 류의 맥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Goose IPA, 제주펠롱에일도 권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