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최근 로우엔드 랩탑 시장에서 프로세서 싸움이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Intel의 Atom과 ARM Core 기반의 프로세서들이 주축이 된 저가의 저전력 랩탑들이 시장에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과 데스크탑의 서로 다른 영역에 머물던 두 회사가 점점 영역을 겹쳐 경쟁하게 된 상황을 살펴보고, 향후 이들의 경쟁구도와 전망을 예상해 보고자 한다.

프로세서 아키텍처의 강자, Intel과 ARM

ARM과 Intel은 각자의 영역에서 프로세서라는 같은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은 기업들이다. ARM은 주로 PDA, 휴대폰 같은 저전력 소용량 데이터 처리용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디자인했고, Intel은 x86과 같은 개인용 컴퓨터와 서버용 프로세서를 만들어 왔다.


Intel은 처음부터 컴퓨터용 프로세서를 만들던 회사는 아니었다. 1968년 설립된 Intel은 산업용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메모리 등 다양한 반도체를 주로 개발 생산하다가 1990년대 들어서면서 PC용 프로세서 개발로 비약적인 성장을 한 기업이다.

IBM PC를 시장에 뿌리내리게 한 Intel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뿐만 아니라 UNIX 서버 프로세서 시장도 위협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PC 프로세서 제조기업이다.

ARM은 1990년 11월에 Acorn Computers와 Apple Computer의 조인트 벤처로 탄생한 회사이며, 나중에 VLSI Technology가 투자를 하고 첫 라이선스를 받았다. 3사중 가장 중심이 된 회사는 Acron Computers로 이미 RISC 프로세서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던 기업이었다. ARM의 원래 명칭은 'Advanced RISC Machines'였으나, RISC(risk)의 발음문제로 IPO를 진행하면서 현재의 ARM Holdings로 바뀌게 되었다.

Apple이 ARM의 대주주였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1998년 Apple의 PDA였던 Newton을 단종시키면서 재정적인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문제로 ARM의 지분을 모두 팔아치웠다. 그 후에 iPod 라인을 만들면서 다시 ARM 프로세서를 채용했지만 이미 그때는 끈끈한 주주관계가 끝난 후였다. Apple은 뒤늦게 2008년 4월에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프로세서를 개발하는 P.A. Semi를 인수했다.

ARM과 Intel 두 회사는 프로세서 개발이라는 분야에서 전문가집단이었지만, 모바일 디바이스와 데스크탑의 차이처럼 성능과 제품의 영역이 서로 다른, 각자의 세계에서 강자로 군림해 왔다. 그러면서 한동안 저전력 모바일 프로세서분야에서 협력자로 함께 하기도 했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두 회사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의 성장과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일시적인 우호관계는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200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Intel이 독자적으로 저가, 저전력 프로세서 분야에서 힘을 키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Intel도 2006년 6월에 ARM 아키텍쳐 기반의 PXA 프로세서 패밀리를 Marvell에 팔기전까지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저전력 모바일 프로세서를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PXA는 다양한 PDA 제품의 메인 프로세서로 사용되었다.

PXA 프로세서의 핵심 아키텍처인 XScale은 ARM 5세대를 기반으로 만든 Intel 자체의 모바일 프로세서였으나, 그 기반이 ARM에 있었다는 것으로 Intel 모바일 프로세서 한계의 상징이기도 했었다.

Intel이 ARM 아키텍처에 관심을 둔 것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뿐만 아니라 산업용 마이크로콘트롤러의 프로세서로 쓰기위한 목적도 있었다. XScale 개발 이전에 인수한 DEC의 StrongARM(ARM 4세대)을 마이크로콘트롤러 프로세서로 쓰고 있었다가 XScale로 대체하였다.

StrongARM 역시 좀 더 빠른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 필요성에 따라 DEC와 ARM이 공동으로 개발한 아키텍처이다. StrongARM은 주로 PDA나 셋탑박스의 프로세서로 사용되었다. 2000년에 StrongARM은 Intel에 인수된 DEC의 개발진과 함께 Intel의 기술을 녹여 XScale이라는 아키텍처로 변신하게 되었다.

Intel은 2006년 x86과 서버 프로세서에 매진하겠다는 의미로 PXA 프로세서 사업부를 Marvell에 넘겼다. 그러나 매각후 2007년에 가전용 프로세서인 CE2110은 XScale 아키텍처 기반으로 개발하여 불씨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올해초 CES에서 가전용 프로세서인 CE3100(Canmore)으로 명맥을 유지해 나갔다.

Intel Atom의 등장


Intel은 PXA 매각후 더이상 컴퓨팅 기기에 ARM 아키텍처를 채용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필요에 의해 x86 기반의 저전력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개발에 나섰고 결국 Atom 프로세서가 탄생되었다.

초기 Atom은 AMD의 마이크로 프로세서 SoC인 'Geode'에 맞서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을 위한 OLPC(One Laptop Per Child) 노트북 프로세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x86 아키텍처를 채용하여 자사의 PC용 CPU와 호환성을 갖추려던 노력에 의해 탄생한 프로세서다.

OLPC를 만들기 위해 개발하던 Atom은 방향을 약간 바꾸어 MID와 넷북이라는 영역을 개척하게 된다. 초기엔 넷북보다는 MID에 더 관심이 컸다. 그런데 대만의 ASUS가 Eee PC를 내놓으면서 폭발적인 시장반응을 접하게 되면서 넷북으로 영역이 넓어지게 되었다. 

Atom의 핵심코드는 바로 '저전력(Low Power)'과 '저비용(Low Cost)'이었다. 바로 이 부분은 ARM이 지난 18년간 지켜왔던 지향점과 동일한 것이었다. 결국 이는 ARM과의 경쟁을 예고하는 것과 같았다.

ARM 7 세대의 등장


한편 ARM은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ARM 7과 9을 통해 모바일 기기, 특히 임베디드 기기와 휴대폰용 프로세서로 활용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AMD, Qualcomm, Broadcom, TI, Freescale, Renesas 등이 라이선스를 통해 칩을 생산하고 다양한 기기에 사용되면서 ARM 아키텍처의 점유율은 임베디드와 모바일 기기 분야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지존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러면서 프로세서 아키텍처는 계속 업그레이드 되어 ARM 11의 6세대를 거쳐 7세대인 Cortex 기반으로 변신하게 된다. ARM이 7세대로 넘어가면서 저전력을 유지하면서 고성능을 내는 프로세서로 탈바꿈하면서 점점 랩탑 컴퓨터 영역을 넘보게 되었다. 급기야 최근엔 2GHz로 동작하는 ARM 프로세서가 시장에 등장했다.

뿐만 아니다. Mali라는 GPU 플랫폼을 자체 개발하여 점점 늘어나는 그래픽 처리를 담당하는 전용 아키텍처를 개발하게 된다. 앞으로는 ARM Core와 함께 Mali GPU가 공급되는 형태로 나올 것이다. 역시 이 부분은 Intel의 PC용 프로세서 전략과 유사하다. 

ARM 아키텍처 제조 라이선스를 받은 협력사들은 한발 더 나가기 시작했다. Atom에 맞서 Qualcomm과 Nvidia 등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ARM Core 기반의 프로세서인 Snapdragon과 Tegra를 통해 자칭 '스마트북'시장을 만들기 위해 나섰다. 또한 Dell은 이미 Latitude Z라는 노트북 모델을 통해 보조 CPU로 ARM을 채용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로우엔드 랩탑 시장에서의 격돌

결국 Intel과 ARM은 저전력 로우엔드 랩탑 시장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Intel은 Atom으로 ARM은 Cortex로 명명된 아키텍처로 맞서게 되었다. 바로 그 경계점은 노트북의 형태를 한 로우엔드 랩탑 기기다. 각각 넷북과 스마트북이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두 회사는 각자의 영역을 위와 아래로 확장하면서도 상대의 영역을 제대로 침투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프로세서의 성능과 프로세서를 지원하는 운영체제(OS)가 가르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세서의 성능은 단일 비교가 힘들기 때문에 놔두더라도 운영체제는 프로세서의 아키텍처 특성상 확연히 구분이 된다. ARM 진영은 범 Linux 진영이 받치고 있으며, Intel 진영은 Microsoft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Microsoft는 Windows와 Win CE(Windows Embedded CE)로 Intel과 ARM Core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지만 향후 출시될 Windows 7 기반은 ARM 아키텍처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결국 또 다른 Wintel(Microsoft-Intel) 연대로 가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Microsoft의 결정이 ARM에게 결정타는 아니다. 이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Apple의 iPhone OS가 있고, 그에 못지않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Google Android가 든든한 우군이기 때문이다. 추락하고는 있지만 Nokia의 Symbian OS 역시 ARM 기반에서 동작하고 있다. 여기에 Google의 Chrome OS까지 ARM을 지원할 것으로 보여 Wintel 진영에 결코 만만치 않다.

또한 업계에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ARM과 Intel의 전쟁에서 의외의 사항이 발생할 수도 있다. Microsoft도 ARM 아키텍처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면 결국 Windows 7의 모바일 버전도 방향이 바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미 일각에서는 Microsoft가 ARM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Microsoft의 Zune HD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도 ARM Core 기반의 Tegra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과연 Microsoft가 계속 ARM을 외면할 수 있을지 판단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2008/12/04 - 스마트폰과 넷북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Intel과 ARM은 모바일 컴퓨팅 시장에서 서로의 영역을 사수할 것이다. 이름은 다르게 부르더라도 모빌리티를 강조하는 넷북 혹은 스마트북 시장에서 결전을 치르겠지만 상대의 깊숙한 영역으로의 침투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경쟁보다는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접전지역은 있지만 각자 프로세서의 영역을 지키면서 상대의 약한 부분에 보조하는 형태도 점쳐볼 수 있다. 하지만 Intel은 저전력 분야의 프로세서 시장에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시대의 흐름은 저전력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ARM의 Physical IP 사업부의 Simon Segars 부사장은 IDG와의 인터뷰에서 ARM이 로우엔드 랩탑 시장에 나서는 것은 Intel이 스마트폰 시장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라고 밝혔다. 일종의 완충지대를 설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서 앞으로 ARM의 행보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는 로우엔드 랩탑 프로세서는 ARM 전체 매출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며, 대부분의 매출이 모바일 기기에 사용되는 프로세서에서 나오며, 결국 더 큰 시장을 지키기 위한 방패막이로서의 랩탑 프로세서 출시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ARM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하이엔드 스마트폰 시장으로 Intel의 공습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전에 로우엔드 랩탑시장에서 Intel의 침공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ARM은 Intel과 경쟁할 목적으로 저전력 컴퓨터인 로우엔드 랩탑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Intel이 더이상 ARM의 고유시장에 뛰어들지 못하게 하겠다는 전략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기억해둬야할 부분이다.

스마트폰의 고성능화와 다양한 MID 등장, Atom의 등장으로 갑자기 성장한 넷북시장, 조만간 등장할 타블렛 PC 등은 Intel과 ARM의 프로세서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ARM은 프로세서 전쟁에서 자사의 영역인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입장이며, 그러기 위해 Intel의 로우엔드 랩탑 프로세서 시장에서 결전을 치러서 배수의 진을 치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