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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 주 토요일인 오늘 청도 운문사를 다녀왔습니다. 집이 있는 대구 성서에서 청도 운문사까지는 승용차로 이동하는데 대략 60km 정도를 이동해야 합니다.

월의 첫 주 토요일은 학생들이 등교를 하는 날이어서 조용한 분위기에서 방문하고 싶었고, 또 얼마전 구입한 DSLR 카메라 촬영을 위한 출사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운문사로 가는 길, 운문호 입구 도로


거리도 거리지만 국도를 통해서 이동해야 했기에 시간은 왕복 3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대구 도심을 지나 경산방향으로 나가면서 공기도 시원해지고 차량도 줄어, 한가로운 겨울 초입의 분위기를 느끼기엔 좋은 날씨였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지도 않고 햇살도 좋아 나들이 하기엔 정말 좋은 날씨였습니다. 이런 날일수록 유명한 관광명소엔 사람들로 붐비는 것이 정상이지만 운문사로 가는 길은 한가롭기만 했습니다.

운문호(운문댐)


청도와 대구 일부 지역의 식수원인 운문호(운문댐)는 상당히 넓습니다. 도시를 벗어난 곳이어서 그런지 공기도 싱그럽고 불쑥 불쑥 솟은 산봉우리들이 여행 기분을 더욱 띄웠습니다.

운문호를 지나 20여분을 달려 마침내 운문사가 있는 운문면 신원리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엔 먹거리촌이 길게 형성되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학생들이 학교에 가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뜸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착했지만 손님들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가게들은 활기를 잃은채 나른한 겨울 햇살만 받고 있었습니다.

운문사 입구 (매표소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


운문사 도량이 시작되는 입구에는 통행료[각주:1]를 받는 매표소가 있습니다. 승용차를 가지고 들어가면 주차료 2천원을 거두고, 문화재관람료를 성인 1명당 2천원씩 받습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로와 길가로 늘어선 노송숲은 어색한 조화를 이룹니다. 운문사가 비구니승을 교육하는 역할을 하다보니 버스나 통행 차량이 많을 것이고, 그러니 흙먼지 날리는 도로보다는 콘크리트 도로가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하긴 매표소에서 운문사까지는 약 1.6Km가 넘는 길이다보니 걸어서 이동하기보다는 차량 통행이 수월했을 겁니다. 그래도 사찰로 들어서는 길이 콘크리트로 덥혀 있으니 기분은 좀 다릅니다.

노송 사이로 난 도로


걸어서 들어간다면 별도의 인도가 옆으로 흐르는 운문천을 따라 가기때문에 산책로의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봤지만 걸어서 들어가는 방문객은 거의 없었습니다.

절입구에 다다르면 주차장이 있고, 사리암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의외로 운문사보다는 사리암으로 가는 차량들이 많더군요. 사리암은 기도도량으로 운문사에서 약 4Km 떨어진 산중턱에 위치해 있습니다.

저처럼 사찰을 문화재의 관점으로 방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심에 의지하여 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에게 사리암같은 기도도량은 엄숙한 곳입니다. 운문사 입구를 바람 날리며 지나가는 차량은 대부분 사리암으로 가는 불자들이었을 겁니다.

운문사는 절의 입구에 있는 일주문이 없습니다. 도량의 시작을 알리는 일주문이 없고, 잡귀를 쫓는 사천왕문(천왕문)이 없습니다. 사천왕상은 석주형태로 경내에 따로 모셔져 있습니다.

운문사 도량입구 범종루


운문사 경내 입구는 불전사물이 위치해 있는 범종각이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불전사물은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말합니다. 범종각 현판에는 호거산운문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운문사를 둘러싼 산이 호거산입니다.

운문사는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대구 동화사의 말사로 신라 진흥왕 시절에 창건된 절입니다. 후삼국시절 고려의 창건을 도운 보양이 중창했고, 고려 태조로부터 '운문선사'라 사액받은 절입니다. '운문사'라는 이름은 이때 생긴 것입니다. 원래 이름은 '대작갑사'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여러차례 중창되었다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조선 후기(19세기)때부터라고 합니다. 1842년에 중건한 금당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천연기념물 처진소나무


범종각을 통해 경내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된 처진소나무입니다. 소나무가 하늘로 치솟은 것이 아니라 옆으로 퍼진 희귀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장관입니다.

노송은 매년 봄(삼월 삼짓날)에 막걸리 12말과 물 12말을 타서 뿌려주는 행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승가대학에서 교육을 마친 비구니 스님들이 쇠약해진 노송에 막걸리 공양을 한다고 해서 더욱 유명합니다. 자랄수록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자세는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뜻에서 스님들의 존경을 받는다고 합니다.

만세루


처진소나무를 바로 앞으로 만세루가 있습니다. 일종의 강단입니다. 사방이 뚫린 마루가 있고 설법을 전하는 장소로 활용되는 곳입니다. 탱화가 비로전쪽으로 걸려있고, 법고가 처진소나무 방향에 놓여져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라 지붕의 처마를 처지지 않도록 지지하는 활주가 모퉁이마다 설치되어 있습니다. 팔작지붕은 우리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날듯이 가벼워 보이고 웅장해 보입니다. 

대웅보전


운문사에는 현판에 대웅보전이라는 글자를 달고 있는 건물이 두 개가 있습니다. 만세루 바로 앞으로 넓은 마당에 가장 큰 건물에는 비교적 최근에 지은듯한 대웅보전이 있고, 원래 있던 비로전에도 대웅보전이라 현액되어 있습니다.

신축된 대웅보전 앞에 탑이나 부도가 없다는 점에서 금당과 비로전이 대웅전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에도 대웅보전이라고 현판이 붙어 있으며, 스님들은 그곳에 더 많이 계셨습니다. 그러면 운문사엔 대웅전이 세 곳이나 된다는 것일까요?

아쉽게도 비로전과 탑은 사진촬영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범종루를 바로 지나서 본 경고문이 스님사진 촬영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어서 스님들 왕래가 많은 비로전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로전 앞으로는 금당이 위치해 있고, 만세루 앞에는 작압전, 관음전, 명부전, 칠성각, 비각 등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의 건물들이 자리해 있습니다.


산사는 다른 곳보다 겨울이 일찍 찾아 옵니다. 감로수 석대에 담긴 물은 얼어있었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있었지만 녹을 줄 모르고 바닥까지 투명하게 얼음을 담고 있었습니다.

감로수 석대


그러나 누군가 금방 떠서 마신 것으로 보이는 위쪽의 감로수 석대위엔 젖은 표주박이 놓여져 있었는데, 시리도록 차가울 것 같아 마시지는 못했습니다.

운문사는 비구니 스님들을 위한 승가대학이 있어서 도량의 상당 부분은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구역입니다. 도량내에는 신축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고, 비구니 스님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대웅보전옆 감나무


대웅보전 옆의 마당엔 감나무 한그루가 다 떨어지지 않은 감을 달고서 서 있습니다. 일부러 감을 따지도 않겠지만 감나무 아래는 감 떨어진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새들이 날아와서 먹을거리로 처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도가 감(반시)로 유명한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인데요, 나무에 달린 감을 본 건 운문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오는 길 내내 감이 달린 감나무는 한그루도 보질 못했고, 감말랭이 판다는 광고판만 여럿 보았습니다. 아마도 철이 지나서 그런 것이겠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초겨울 날씨에 절간은 정적이 맴돌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방문객이 몇 명되지 않았고, 이곳은 등산이 금지된 지역이라 등산객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가족끼리 온 방문객도 안보였고, 친구와 연인끼리 방문한 몇 몇 무리의 사람들만 고요한 산사의 절간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범종루 바로 옆에 있는 서점의 입구에는 풍경이 걸려 있었습니다. 바람도 불지않아서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들어 살짝 흔들어 보았습니다.

저는 산사의 고요함을 살며시 깨는 풍경소리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마저도 없다면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운문사엔 처마끝에 달린 풍경소리가 들리질 않았습니다.

사실 운문사에 뭔가 볼거리를 생각하고 갔더라면 실망할 것 같습니다. 도량의 절반 이상은 승가대학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출입금지 지역이 많습니다. 대신 정적을 벗삼아 번뇌를 떨쳐버리기엔 좋은 장소로 보입니다.

운문사를 둘러싼 암자를 보면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가지게 되고, 차소리 사람소리 들리지 않으니 참된 고요함과 안정을 얻게됩니다.

아예 차를 매표소 들어오기전 상가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서 운문사를 들어갔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설악산 국립공원처럼 말이죠. 

한시간 둘러보고는 바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오후가 되면 사람들이 몰릴 것 같아서 일찍 나섰는데, 나오다보니 빨리 나오길 잘 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어오는 차들이 조금씩 늘어나더군요.
 

온천골 소고기국밥


2007/10/20 - 가마솥한우국밥 대구 온천골

집으로 가는 길에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영남대 근처에 있는 소고기 국밥 전문점인 온천골 본점입니다. 사회인야구 덕분에 몇 번 찾게되었는데, 이번엔 유니폼을 입지않고 찾았습니다. 산사를 둘러보고 허기진 상태에서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찾은 운문사는 생각보다 먼 거리에 있었지만 다시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다음엔 매표소부터 걸어서 노송숲을 지나 운문천을 따라 걸어보고 싶습니다. 콘크리트 도로로 인해 살짝 아쉽지만 그래도 그 풍경은 다시 느껴보고 싶습니다.

참... 여행과 좋은 카메라는 잘 어울리는 동반자가 되더군요. 카메라가 여행을 불러왔으니 결국 카메라에 고마움을 표시해야 하겠군요. 다음엔 어디로 불려갈지 벌써부터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1. 운문사를 방문하지 않더라도 돈을 받으니 입장료 혹은 통행료라 부르는 것이 맞겠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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